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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복도로 리포트 <3-8> 산복도로에 살다:최민식이 찍은 산복도로 풍경

반백년 넘게 `부산`과 `사람`을 파고 든 대가의 눈

1957년부터 부산의 풍경과 소외된 이들의 얼굴 카메라에 담아와

작품의 70%가 자갈치시장 배경 "영원한 현장이자 내 마음의 고향"

  • 배재한 기자 myway@kookje.co.kr
  •  |   입력 : 2010-03-15 21:11:51
  •  |   본지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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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사진은 1957년, 컬러 사진은 2010년 3월 9일 각각 최 작가가 촬영한 태극도 마을. 53년의 세월 만큼이나 달라진 모습이다.

최민식. 카메라는 물론 디카, 폰카 사진이 일상화된 요즘도 사진작가 최민식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지 않을까 싶다. 최민식은 한국을 대표하는 다큐멘터리(리얼리즘) 사진의 대가로 불린다.

최 작가와 산복도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최 작가 자신이 부산 동구 범일동 범곡교차로(옛 교통부 사거리) 입구에서 1957년부터 12년 가까이 살았다. 산복도로의 풍경을 담은 강렬한 사진도 여럿 남겼다. 누구보다도 산복도로의 삶을 잘 알고 있는 작가다. 기자는 이번 취재를 위해 모두 다섯 차례 최 작가를 만났다. 세 차례 만남은 부산 남구 대연동 최 작가의 집에서 이뤄졌고, 한 차례는 부산문화회관 인근 식당, 또 한 차례는 자갈치와 사하구 감천2동 태극도 마을 촬영 현장이었다.

■산동네 삶 담은 사진 깊은 울림으로

   
작가 최민식이 지난 9일 부산 사하구 감천2동 한 교회 옥상에서 태극도 마을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곽재훈 기자 kwakjh@kookje.co.kr
최 작가의 산복도로 사진 중 촬영연도가 가장 오래된 것은 1957년의 사하구 감천2동 '태극도 마을'이다. 최 작가가 일본에서 미술공부를 마치는 둥 마는 둥 하고 낡은 카메라와 사진집 몇 권을 사들고 국내로 돌아온 그 해 카메라에 담은 사진이다.

'태극도 마을'을 보자 취재기자는 묘한 호기심과 욕심이 발동했다. 1957년 촬영하던 그 현장에서 2010년의 태극도 마을을 담아 53년이라는 세월을 대비시키고 싶었다. 몇 번의 망설임 끝에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너무나 간단했다. "그러죠, 53년 전 촬영한 장소를 내가 알고 있으니 그 자리에 다시 가 봅시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비까지 내린 지난 9일 작가는 기자와 함께 태극도 마을을 찾았다. 사하구 감천2동 감정초등학교 입구의 53년 전 촬영 포인트에 섰지만 건물과 소나무가 앞을 가렸다. 비슷한 앵글을 잡을 수 있는 감정초등학교 입구 나라사랑교회 옥상으로 올라가 태극도 마을을 촬영할 수밖에 없었다.

53년의 흐른 세월 만큼이나 태극도 마을도 변했다. 53년 전 사진 속 판잣집 또는 슬레이트 주택은 대부분 콘크리트 슬래브로 바뀌었다. 군데군데 2층, 3층 집이 등장하면서 훤히 드러났던 골목길은 이제 건물 속에 가렸다.

최 작가가 1963년 카메라에 담은 '물동이 장사진'은 애잔하게 다가온다. 동구 범일동 고지대지역에서 수돗물을 받기 위해 길게 늘어선 물동이 행렬, 빈 물지게를 진 아낙의 모습도 보인다. 물동이는 모두 원형 또는 사각형의 양철이다. 아직 플라스틱 물통이 보급되지 않은 당시의 어려운 삶이 묻어난다. 이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영락없이 '그때를 아십니까'라는 말이 절로 터져 나올 법하다. 그리고 이내 고단했던 당시의 삶에 숙연해지게 된다.

■삶이 출렁이는 현장 자갈치

최 작가의 주요 작품 무대는 자갈치다. 어떤 사람은 이런 최 작가를 가리켜 '자갈치 아저씨'라고 부른다. 그의 작품들이 '자갈치 아지매'의 얼굴과 자갈치시장에 떠다니는 표정과 언어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최 작가의 영원한 촬영 현장인 자갈치에서 어리석은 질문을 던졌다. 최 작가의 작품 가운데 70%가량이 자갈치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자갈치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궁금했다.

"자갈치는 '출렁이는 삶의 현장'입니다. 자갈치시장에서는 가장 정직하고, 가장 겸손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비린내 물씬 나고 투박한 사투리가 뒤엉키는 자갈치는 우리들 생활의 현장이요, 우리 이웃의 진정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지요. 자갈치시장에서는 백화점 같은 곳에서 결코 만날 수 없는, 우리 이웃의 가식없는 얼굴을 만날 수 있어요. 나는 자갈치를 마음속 깊이 사랑하며, 나의 영원한 촬영 현장이자 마음의 고향입니다."

그렇다면 이들 자갈치 사람들은 어디서 왔을까. "대부분 영주동 보수동 남부민동 초량 산동네 사람들이었어요. 영도 사람도 적지않고. 산동네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 바로 자갈치였어요. 새벽부터 장사에 나서야 하기에 자갈치 인근에 사는 사람들이 많았죠. 이들은 힘들게 장사를 했지만 자식 공부시키고, 시집 장가 보내고, 돈도 벌었습니다. 40년 넘게 장사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어요."

■"나를 키운 건 8할이 가난이야"

   
그는 1928년생이니 올해 여든세 살이다. 현역이라고 하기엔 결코 적지 않은 나이. 하지만 그는 여전히 현역이며, 평생의 주제인 '인간탐구'를 위해 오늘도 10㎏이 넘는 사진 가방을 메고 거리 곳곳을 누비고 있다. 그럴 때 최민식은 젊은이가 된다. 사진 현장에 서면 더욱 젊어진다.

다큐 작가인 그에게 돈은 늘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가르는 경계였다. 그는 평생 그 경계에서 외줄타기를 해왔다. 가난은 일평생 그의 곁을 맴돌았다. "창작에 필요한 경비를 항상 고민해야 했고, 쌀을 사 놓으면 연탄이 떨어지고 연탄을 들여놓으면 쌀이 떨어지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집도 팔아야 했기에 밤에만 수돗물이 나오는 산복도로 달동네에 오랫동안 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일까. 그가 카메라 셔터로 잡아내는 '인간'은 그와 똑같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앵글에 담았다.

그에게 가난은 어떤 의미일까. "가난은 신과 소통하는 길입니다. 마음이 가난해야 경건해지니까요. 기도할 때 모두 가난한 마음으로 하잖아요. 만약 내가 돈 많은 부잣집 자식 같았으면 이런 사진 안 찍었을 겁니다. 사진도 취미로, 벽에 걸어놓고 감상하기 좋은, 그림 예쁜 살롱 사진만 찍었겠지요."

사진으로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룬 여든셋의 '젊은 청년' 최민식은 가난했기 때문에 악착같이 작품활동을 했고, 다른 욕심 없이 사진에 미칠 수 있게 해 준 자신의 가난에 고마워한다. 역설적으로 가난은 오늘의 최민식을 세계적 거장으로 만든 것이다.


◇ 부산에선 만나기 힘든 최민식 선생의 작품들

- 자갈치시장 내 상설전시장 추진…부산시 공무원 반대로 무산돼
- 국가기록원, 컬렉션 마련 대조

#장면 1

지난해 가을, 사진작가 최민식 선생은 부산 자갈치시장 관계자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자갈치를 무대로 작품활동을 한 최 선생의 작품 중 일부를 자갈치시장에 상설 전시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최 선생은 자갈치시장을 직접 찾아 전시공간이 있는지 확인한 뒤 그 제의에 흔쾌히 응했다. 그러나 의외의 복병을 만났다. 최 선생은 "'자갈치시장에는 염분기가 있는 바닷바람이 불기 때문에 사진을 전시하면 훼손된다'는 부산시 관련 공무원의 반대로 무산됐다"며 안타까워 했다.

#장면 2

2008년 1월 국가기록원은 서민의 생활상을 사진에 담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사진작가 최 선생의 사진작품을 '민간 기증유물 1호'로 지정했다.

최 선생이 1957년부터 현재까지 남긴 사진작품은 서민의 생업 의복 풍습 생활공간 등 당시의 시대상을 생생히 엿볼 수 있으며,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아 이 같이 결정한 것이다. 국가기록원은 최 선생의 작품을 나라기록원 시청각서고에 영구보존하는 한편 '최민식 컬렉션'을 따로 만들어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국가기록원은 전직 대통령 관련 기록을 보관 전시한다. 국가기록원이 관련 기록을 관리하는 민간인은 지금까지 고 김수환 추기경과 최 선생 단 둘 뿐이다.

부산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아 1957년부터 53년 동안 작품활동을 해 온 최 선생의 작품을 정작 부산시민은 감상하기 어렵다. 가끔 열리는 전시회와 을숙도의 낙동강에코센터에서 최 선생의 작품을 만나는 게 고작이다.

자갈치시장에 최 선생의 작품을 전시하는 문화공간을 마련하고 싶다는 민의 아이디어를 관이 가로 막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는 상황을 '장면 1'은 생생히 보여준다. 부산을 대표하는 공간이자 국제적인 관광명소인 자갈치가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잃어버린 것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57년 동안 최 선생의 작품 무대였던 자갈치에 최 선생의 작품 전시공간이 마련된다면 자갈치는 '문화와 예술'이라는 날개를 새롭게 달게 될 것이다. 부산시가 내년 건립을 추진하는 '산복도로 문화관(가칭)'에 최 선생이 앵글에 담은 '산복도로 풍경'이 걸려야 한다. 그가 60년 가까이 카메라로 기록한 '부산의 어제와 오늘'을 부산 시민이 보고 읽을 수 있는 기념 공간은 이제 더는 미뤄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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