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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복도로 리포트 <3-10> 영화 촬영지로 각광받는 산복도로

이야기 품은 골목은 살아있는 영화 세트장

산복도로에 살다

  • 배재한 기자 myway@kookje.co.kr
  •  |   입력 : 2010-03-29 20:14:19
  •  |   본지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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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한 해 동안 국내 장편영화 80편 중 28편 부산서 촬영
- 독특한 산동네 풍광, 대도시 모습과 공존…영화인들 감성 자극
- '친구'의 곽경택 감독 "부산은 영원한 내 영화의 무대"
- 상징적 촬영장소 지금부터라도 관리·보존 나서야

1년에 부산에서 촬영되는 영화는 몇 편이나 될까. 놀랍게도 2008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 장편극영화 80편 중 28편의 촬영장소가 부산이었다.

특히 부산의 산복도로 풍경은 영화로케의 현장으로 갈수록 각광받고 있다. 영화 '친구'의 무대가 범일동 초량동 등 산복도로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생결단', '히어로',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등 수많은 영화들이 골목과 계단, 보수동 헌책방, 국제시장, 용두산공원 등 산동네의 익숙한 풍경을 영화의 주요 배경으로 삼고 있다.

부산영상위원회 양성영 제작지원실장은 "부산영상위원회와 부산시의 지원, 서울을 빼닮은 거대도시이면서 산복도로 자갈치시장 등 차별화된 장면을 담을 수 있어 영화인들이 부산을 영화 촬영지로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영화, 친구의 거리에 선 곽경택 감독

   
지난 27일 곽경택 감독이 부산 동구 범일동 '영화, 친구의 거리' 표지판 앞에서 영화 '친구'의 제작과정을 털어놓고 있다. '영화, 친구의 거리'는 도로 확장 공사로 거의 사라지고 흔적만 남았다. 박수현 기자 parksh@kookje.co.kr
지난 27일 오후 1시 30분. 취재기자는 영화 '친구'의 곽경택 감독과 함께 '영화, 친구의 거리'를 찾았다. 부산 동구 범일동 현대백화점 옆으로 난 미로 같은 길을 따라 걸어가면 철로를 가로지르는 구름다리(철길육교)를 만나게 된다. 이 구름다리에서 보림극장 맞은 편 보행자 도로를 따라 옛 삼일극장까지가 '영화, 친구의 거리'다.

장동건(동수)과 유오성(준석) 등 함께 있으면 무서울 것이 없었다던 친구의 '패거리들'이 책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내달렸던 바로 그 철로변 골목길. 구름다리와 좁은 골목길은 영화의 그 모습 그대로다. 한국영화 흥행의 신화가 된 '친구'를 기념하는 표지판과 마주한 곽 감독은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영화 '친구'가 관객 500만 명을 돌파한 것을 기념해 부산시가 2001년 5월5일 세운 것입니다. 당시 친구는 한국영화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웠죠. 최단시간 100만 명, 500만 명, 연인원 820만 명이 관람해 한국영화사상 최다 관객 동원 기록을 세웠습니다.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이자 요즘처럼 복합상영관이 일반화되지 않던 시절의 820만 명이라 영화계에서는 비공식적으로 1000만 관객 영화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친구의 드라마 촬영 이후 1년 만에 '영화, 친구의 거리'를 다시 찾은 곽 감독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유년과 학창시절의 추억이 담긴 영도 범일동 철로변 산복도로 등 부산의 지역성을 전면에 내세운 점이 특히 부산사람들에게 강렬하게 각인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에 살고 있지만 부산에도 숙소를 두고 1년의 3분 1 이상을 부산에 머문다"면서 "지금까지 만든 영화 10편 중 8편을 부산에서 찍었을 정도로 부산은 내 영화의 영원한 무대"라고 말했다.

■'산복도로' 영화 만든 김희진 감독

   
독립영화 '산복도로에서 산복도를 읽다'를 제작한 김희진 감독이 작품의 무대인 부산 영주동 민주공원 입구 계단을 찾았다. 김성효 기자 kimsh@kookje.co.kr
'산복도로에서 산복도로를 읽다'라는 독립영화를 만든 김희진 감독. 산복도로를 무대로 한 수많은 영화 중 산복도로라는 제목을 단 최초의 영화로 기록된다. 왜 그는 산복도로라는 제목의 영화를 만들었을까.

"제가 고교시절 3년 동안 산복도로에 위치한 학교(금성고교)를 다니며 산복도로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영화제작자로 활동하면서 부산의 상징공간인 산복도로를 영화로 표현하고 싶었죠."

이 영화는 산복도로의 삶을 우회적으로 그렸다. 배우(양지웅)가 골목, 계단, 하늘 주차장, 낡은 아파트 등 산복도로의 상징공간에서 춤추고 걷고 배회하는 장면을 통해 산동네 사람들의 일상과 정겨움을 한껏 드러내고 있다.

그에게 산복도로는 어떤 의미일까. "산복도로는 근대의 흔적들이 남아 있는 공간이죠. 근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풍경이 더없이 정겹고 또 살아있는 영화 세트장입니다."

그는 '산복도로' 영화 2탄을 만들 계획을 털어놓았다. 변함없는 그의 산복도로 사랑이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지 관심거리다.

■부산, 창조적 영화도시로 거듭나야

부산이 '일상적 영화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상징적 촬영장소의 보호에 나서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한국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영화이자 '부산영화'인 친구를 기념해 만든 '영화, 친구의 거리'는 3년 전 도로 확장으로 깨끗이 쓸려갔다. '영화, 친구의 거리' 표지판 2개 중 하나는 이미 지난해 연말 철거됐다. 남아 있는 표지판도 야간조명이 되지 않고 표지판 곳곳에 불법 부착물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등 관리가 엉망이었다.

영화 친구의 촬영무대이자 준석과 동수가 떼로 몰려드는 다른 학교 학생들과 혈전을 벌이던 무대였던 삼일극장은 5년 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TV드라마 '친구, 우리들의 전설' 촬영무대였던 삼성극장은 이미 사망선고를 받고 철거될 날 만을 기다리고 있다. 부산에서 수많은 영화가 촬영됐지만 영화 촬영 현장이었음을 알려주는 변변한 안내판 하나 붙어 있는 곳이 드물다. 수십 편의 영화가 촬영된 산복도로에 영화 로케현장이었음을 기억하게 하는 표지판이나 안내판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경성대 강동진 교수는 "영화, 친구의 거리가 어떻게 아무런 저항도 없이 사라질 수 있는가. 한국 영화의 기념비적 로케 현장을 없애면서 영화도시 부산을 부르짓는 것은 뭔가 앞 뒤가 맞지 않다"고 비판했다.


# 강동진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

- "부산 속 영화 로케장소…매력적인 관광자원될 것"

   
1999년 부산영상위원회 출범 이후 2008년까지 부산에서 촬영된 장편 극영화만 258편이고, TV프로그램과 광고까지 합치면 500편이 부산을 거쳐갔다. 2008년 한국장편극영화 제작편수 80편 중 28편이, 제작비 1억 원 이상의 순수 상업영화 45편 중 18편이 부산에서 촬영됐다. 부산지역 대부분이 영화의 배경이 됐고, 일상의 삶 자체가 로케의 대상이 된 것이다. 부산이 이처럼 영화로케도시로 각광받는 이유는 뭘까.

경성대 강동진(도시공학·사진) 교수는 "부산이 갖고 있는 바다풍경, 골목길과 계단, 오랜된 건축물 등 부산만이 가진 가치가 영화를 불러들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강 교수는 로케도시로서의 부산의 특성을 ▷근대성 ▷서민성 ▷해양성 ▷양면성 ▷현장성 등 다섯 가지로 정의하고 있다. 강 교수는 바다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곤고한 서민들의 삶이 도시 전체에 강하게 배어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 때 피란민들이 산복도로에 판자촌을 이룬 모습은 로케도시로서의 최적의 다양성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산이 진정한 영화로케도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상징적 촬영 장소(풍경) 보호에 나서야 합니다. 일본의 경우 1953년에 발표된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東京物語(도쿄모노가타리·도쿄이야기)'가 촬영된 항구도시인 '오노미찌'는 지금도 그대로입니다. 오노미찌는 영화로케장소와 풍경들을 도시관광의 핵심으로 육성하고 보존하려고 노력한 결과입니다." 그는 "부산에서 수백 편의 영화가 촬영됐음에도 기억할 수 있고 찾고 싶은 로케장소가 없다"고 아쉬워했다. 상징적인 촬영 장소(풍경)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부산 영화를 찍은 상징적 로케장소의 목록을 만들고 이를 이미지화할 것을 그는 제안해다.

"일본의 오노미찌에서 제가 들고 다녔던 정교한 로케 팸플릿을 부산에서는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로케장소와 시민, 방문객(관광객)을 연결하는 마음의 다리를 놓아 영화를 다시 느끼게 하고 감동 속에 몰입할 기회를 제공하게 되면 부산은 영화도시를 넘어 자연스럽게 지역재생의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

그는 부산 영화의 로케장소로 등장할 수 있는 가치를 지닌 곳으로 산복도로, 동·중·서·사하지역 정주지대, 하얄리아공원, 광복동과 남포동, 부산역과 초량일대 등을 꼽았다. 부산이라는 도시와 시민의 일상이 묻어 있는 공간들이다. 도시 전체가 영화의 터전이 돼야 진정한 '영화도시 부산'은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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