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하다'는 말로는 조금 모자라는, 그 이상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것. 바로 복국이다. 복어는 우리나라 어느 바다에서나 잡힌다. 예로부터 동·남·서해안을 가리지 않고 어디서나 복국을 끓여 먹었을 터. 신석기시대 유적인 패총에서도 어김없이 복어 뼈가 나오니 복어 요리의 역사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복국을 식당에서 내놓은 것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원래 복국 좋아하기로 유명한 일본에서 건너와 한국식 맑은탕 형식의 복국이 부산에서 처음 자리를 잡았다.
■한일어업협정후 사라진 국산 은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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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뚝배기에 펄펄 끓여낸 복국. 미나리와 버섯 등 채소와 어우러진 복국 맛은 깊고도 시원하다. 김성효 기자 kimsh@kookje.co.kr |
흔히 복어로 통칭하지만 식용 복어는 종류만 30종이 넘는다. 부산지역 대부분 식당에서는 자주복(참복), 까치복, 검복(밀복)과 은복으로 불리는 은밀복·흑밀복 등 다섯 종을 내놓는다. 복어 식당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먹는 은복탕은 흰밀복으로도 불리는 은밀복과 검은밀복으로 불리는 흑밀복 두 종을 구분없이 사용한다.
은밀복과 흑밀복은 우리나라 남해와 일본 동중국해 등지에서 두루 잡힌다. 많은 수산물이 수입산, 특히 중국산으로 바뀐 것처럼 은복도 대부분 중국산을 쓴다. 원래 국산 복어로 끓이던 은복국이 수입산으로 대체된 건 1999년부터다. 1998년 11월 체결해 이듬해 1월 발효된 신한일어업협정 이후 이들 어종의 주 서식지역에서 우리나라 어선의 조업이 금지됐다. 그 여파로 요즘은 남중국해에서 잡은 중국산을 수입한다. 이전 국산과 어종의 차이는 없다. 그러나 아무래도 운송 기간이 길어 냉동해 들여오기에 맛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고급 어종인 자주복과 까치복은 양식한다. 부산에서 참복으로 부르는 자주복은 복어류 가운데 최고급 어종으로 특히 겨울철에 복 회와 수육, 지리에 이용한다. 다른 복어 종류보다 숙취에 효과가 크다고 한다. 등 쪽에는 짙은 청색 바탕색에 흰색 줄무늬가 있고 노란색 지느러미가 특징인 까치복은 담백한 맛으로 수육과 탕으로 큰 인기가 높다.
검복은 수컷의 정자인 이리가 많아 선호도가 높다. 우리나라 연안 등 동북아시아 해역에서 잡히는 흑밀복은 전혀 독성이 없어 복국집에서 가장 많이 이용한다. 부산 해운대 금수복국 여주환 주임은 "현재 복어요리점에 대량으로 공급되는 복어 중 자연산이자 국산인 어종은 밀복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밀복은 동해 남부 연안에서 겨울을 난다"며 "이때 잡은 것을 영하 27도에 냉동 보관하면서 연중 사용한다"고 덧붙였다.
■죽음과도 바꿀 맛 & 서시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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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운대 금수복국의 주방. 뚝배기에 금방 끓여내 예전엔 '즉석복국'으로 불렸다. |
복어를 즐기는 동북아시아의 한·중·일 세 나라는 오래전부터 복어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복어 하면 담백한 맛 못지않게 복어의 난소, 간장, 피부, 피 등에 든 맹독을 떠올리게 된다. 이는 옛날에도 다르지 않다.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는 기원전 2세기 전후에 발간된 '산해경'이 있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지리서인 이 책에 '폐어(肺魚), 이것을 먹으면 사람이 죽는다'는 복어 독 중독과 관련한 기록이 있다.
중국 송대의 시인 소동파가 복어를 두고 '죽음과도 바꿀만한 가치가 있는 맛'이라고 했듯 여러 시인이 복어를 상찬하는 시를 지었다. 중국 시인의 시에 나오는 복어는 하돈(河豚)이나 강돈(江豚)으로 부르는 황복이다. 황복은 특히 난소의 독성이 강하다. 이보다 더한 절창도 있다. 수컷 복어의 이리는 천하일미로 여겨진다. 오죽하면 춘추전국시대 월나라의 경국지색 서시(西施)에 빗대 '서시의 젖'이란 뜻의 서시유라 불렀을까.
지금과 같은 맑은탕 형태의 복국은 부산에서 발달했다. '복국 천국' 일본과 아무래도 지리적으로 가깝다 보니 맑은 국을 끓이는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다만 한국식은 콩나물, 무, 미나리에 파즙만을 더해 복어 특유의 시원하고 담백한 맛이 살아나도록 한다. 일본식은 고명이 많이 들어가고 우리 것보다 국물이 자작한 편이다. 확연히 드러나는 차이라면 한국에선 대부분 미나리를 넣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다는 점. 일본에선 미나리의 강한 향에 복어 본연의 맛이 숨어버리기에 피한다고 한다.
흔히 복국집에서는 '지리'라는 말을 쓴다. 지리는 물고기, 조개, 두부, 채소 등을 넣고 끓여 먹는 일본식 냄비 요리를 일컫는 말이다. 지리나베라고도 한다. 우리나라 매운탕처럼 고추장이나 고춧가루를 넣지 않아 시원한 맛이 살아난다. 여기에서 연유해 우리나라에서는 맵지 않게 끓인 생선탕을 지리라고 부른다.
■복국은 뚝배기에 제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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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뚝배기에 끓인 복국을 스테인리스스틸 그릇에 담아 내고 있다. |
뚝배기에 팔팔 끓여 내놓는 복국은 대부분 복국집에서 익숙한 풍경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복국을 끓일 때 뚝배기를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일단 솥에서 끓인 복국을 스테인리스스틸 그릇에 옮겨 담아 냈다. 복국을 뚝배기에 처음 끓여낸 곳은 해운대 금수복국으로 알려져 있다. 1970년 금수복국을 개점한 이봉덕(여·79)씨가 오래 뜨거운 국물을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당시 찌개 끓이는 용도로 쓰던 뚝배기를 복국에 도입했다고 한다.
"모친이 전주의 한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면서 뚝배기를 눈여겨 봐두었다고 합니다. 개업하면서 직접 전주에 가 뚝배기 1000개를 사서 싣고 왔습니다." 이 씨의 아들인 금수복국 유상용(49) 2대 사장은 "당시만 해도 '스텐' 그릇에 복국을 끓여냈지만 이때 이후로 다른 식당에서도 점차 뚝배기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금수복국에서는 복어의 머리 부위로 다시국물을 만든다. 검복으로 우려내는 국물이 가장 진하다고.
다른 복국집도 마찬가지겠지만 금수복국도 최근 탤런트 현석 씨의 복어 중독사건 이후 손님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현 씨는 전문 복 요리점이 아닌 일반 횟집에서 동네 주민이 조리한 복어를 먹고 쓰러졌고, 10일 만에 퇴원했다. 복국집을 찾는 손님들도 그 사건을 들며 안전한지 되묻는다고. 유 사장은 "복 요리를 가장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곳이 복 전문 음식점"이라며 "자격증이 있는 요리사가 조리를 하는 것은 물론 양식산, 자연산을 가리지 않고 철저하게 독을 제거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덧붙였다. 수입산 복어의 경우 검역 과정에서 샘플링 조사를 해 독 성분이 조금이라도 검출되면 전량 폐기처분 한다.
# 복어의 독과 영양
- 테트로도톡신, 열에 강한 맹독
- 단백질 많고 지방 거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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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어 |
최근 유명인의 중독사건으로 화제가 됐지만 사실 복어는 전문 조리사의 손길을 거치면 안전하게 즐길 수 있다. 독이 없는 복어도 있지만 대부분 복어엔 알·난소와 같은 생식기관과 간·창자와 같은 내장기관, 혈액 등에 맹독인 테트로도톡신이 들어 있다. 일부 복어엔 껍질에도 독이 있다. 테트로도톡신이라는 이름은 복어 종류의 학명에서 따온 것이다. 아직 해독제조차 없는 물질이다.
우리나라 속담에 '복어 한 마리에 물 서 말'이란 말이 있다. 복어 요리를 할 때 많은 양의 물로 피를 충분히 씻어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테트로도톡신은 미량으로도 치명적일 수 있다. 물에 잘 녹고 열에 강해 120도에서 1시간 이상 가열해도 파괴되지 않는다. 신경계에 작용하는 이 독은 먹으면 졸음이 오고 온몸이 저린다. 특히 요즘과 같은 복어 산란기에는 테트로도톡신이 더 많이 만들어지므로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그래서 복어 요리는 전문 조리사가 있는 복 전문점에서 먹는 게 안전하다. 요리 관련 자격증에는 한식과 일식, 양식, 중식 외에도 복어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복어 조리 기능사 제도는 1980년대 중반 도입됐다.
이런데도 복어를 찾는 이유는 단순 명쾌하다. 희고 맑은 살과 싱겁지 않으면서도 담백한 맛이 일품이기 때문이다. 복어 살엔 단백질은 많은 대신 지방은 거의 없어 씹는 질감이 쫄깃하다. 감칠맛을 내는 이노신산과 단맛을 내는 글리신, 알라닌, 타우린 성분 등이 더해져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한방에서는 복어가 사람의 정신을 맑게 하는 효능이 있다고 한다. 숙취로 어지러운 머리가 복국 한 그릇으로 맑아지니 과히 틀린 말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