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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바닷속 세상이야기-그 곳에도 삶이 있다 <2> 바다동물의 위기탈출

변장술의 달인들 "삼십육계 줄행랑? 적 눈에 안띄는게 상책"

피부·몸 형태 바꾸는 씬벵이, 색소 뿜어내는 오징어·문어

창자 밀어내는 레오파드 해삼, 독 있는 먹이 먹는 복어까지

저서성 어류·연체동물들 유영 느려 도망치는 것 대신 몸색 바꾸는 등 생존 지혜 터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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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동물은 천적에 대한 방어 수단을 본능적으로 익히며 진화해왔다. 지구 상에 현존하는 동물들은 오랜 세월 주어진 환경에 성공적으로 적응하며 진화된 종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멸종한다는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에서 정리된다. 그렇다면 바다동물들은 어떤 방식으로 각종 위험에서 벗어날까.


■바다의 카멜레온들

바닥면에 납작 엎드린 광어가 바닥면의 색과 비슷하게 체색을 바꾸고 있다.
바다에도 주변 색에 따라 몸의 색을 바꾸는 카멜레온들이 있다. 아귀 넙치 가오리 등 저서성 어류와 연체동물에 속하는 오징어 문어 등이 대표적이다.

바닥에 납작하게 붙어 살아가는 저서성 어류들은 바닥면과 비슷한 색으로 몸의 색을 바꾼다. 경우에 따라서는 모래나 펄 속에 몸을 숨기기도 하는데 위장과 엄폐에 대한 자신감 때문인지 포식자가 가까이 다가가도 눈만 껌벅거릴 뿐 미동도 하지 않는다. 팽팽한 긴장의 막바지 무렵 더 이상 몸을 숨길 수 없다고 판단되면 순간적인 추진력으로 자리를 뜬다. 이들의 공통점은 순간적인 움직임은 빠르지만 평균 유영속도가 느리다는 점이다. 그래서 포식자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망 다니는 것보다는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몸의 색을 바꾸는 방식을 본능적으로 익혀왔다.

아열대 바다에서 발견되는 아귀목에 속하는 씬벵이는 위장의 귀재로 정평이 나 있다. 주변 환경에 따라 몸의 색을 변화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피부나 몸의 형태까지도 바꿀 수 있어 씬벵이를 찾아내기 힘들다.

조개껍데기를 머리에 이고 몸을 숨기고 있는 말똥성게.
오징어의 경우 위기에 처했을 때 몸의 색을 바꾸는 데 3~5초면 충분하다. 피부 밑에는 대개 적색, 황색, 갈색의 세 층으로 이루어진 색소 세포가 근섬유에 연결되어 있다. 오징어는 이들 근섬유를 수축하고 이완시키면서 주변 환경에 맞게 몸의 색을 변화시킨다. 호주 시드니 수중동굴에서 길이 1m에 이르는 대형 오징어와 맞닥뜨린 적이 있었다. 동굴 벽에 붙어 잠을 자던 오징어가 자신의 보금자리에 무단 침입한 불청객에게 화가 났는지 몸의 색을 점점 붉게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오징어의 채색변화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의사표현이자 경고의 메시지이다. 여차하면 불나방처럼 돌진할 태세였다. 좁은 동굴 속에서 오징어와 뒤엉키는 것은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뒷걸음치며 동굴을 빠져나오는 내내 오징어 눈치를 살펴야만 했다. 채색변화로도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오징어는 마지막 수단으로 먹물을 뿜어낸다. 문어가 연막 효과를 위해 먹물을 뿜는다면, 오징어는 자신의 형체를 닮은 먹물을 뿜어 포식자의 판단을 흐리게 만든다.

오징어나 문어 먹물처럼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같은 연체동물에 속하는 군소 또한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색소를 뿜어낸다. 군소가 뿜어내는 색소는 다소 혐오스러운 보라색 계열이다. 만약 군소에게 다가갔다가 꿀럭꿀럭 뿜어져 나오는 색소가 주변을 붉게 물들이는 것을 경험해본 포식자가 있다면 다시는 군소 근처에 가고 싶지 않을 것이다.


■몸의 일부까지 포기

자기 다리를 끊어낸 채 도망가고 있는 거미불가사리.
극피동물은 몸의 일부가 떨어져나가더라도 재생이 가능하다. 이 같은 특성은 위기를 맞은 극피동물들이 자기 몸을 잘라내고 도망가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극피동물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불가사리의 경우 팔이나 신체 일부가 잘려나가면 팔이 잘린 원래의 몸에는 새로운 팔이 생겨나고 잘려나간 팔은 또 다른 개체가 된다.

부산 앞바다에서 야간 다이빙 도중 흔하게 만나는 뱀거미불가사리는 건드리기만 해도 스스로 팔을 잘라내고 도망치는데 잘린 팔도 그 자리를 벗어나려는 듯 꿈틀거린다. 아마 한동안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잘려나간 팔이 또 하나의 뱀거미불가사리로 재생될 것이다.

퀴비에관을 뿜어내고 있는 레오파드 해삼.
열대바다에서 볼 수 있는 레오파드 해삼을 건드리면 항문으로 흰 국수 면발같이 생긴 퀴비에관을 뿜어낸다. 퀴비에관은 굉장히 끈적거려 해삼을 공격하는 포식자의 몸에 달라붙어 몸을 얽어맨다. 어떤 종은 퀴비에관에 독성 물질이 포함되어 있어 여기에 걸려드는 포식자에게 치명상을 입히기도 한다. 퀴비에관을 뿜어내고도 적을 제압하지 못하면 몸을 극도로 수축시켜 단단하게 만든다. 그러다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는 창자만 먹고 살려 달라는 듯 자신의 창자를 밀어낸다. 해삼은 불가사리와 같이 극피동물의 특성을 가지고 있어 뱉어낸 창자는 30~40일 정도 지나면 완벽히 재생된다. 퀴비에관은 레오파드 해삼 등 일부 종만이 가지는 특징이지만 창자를 내주고 위기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는 해삼들이 가지는 가장 일반적인 위기탈출 방식이다.


■생존을 위해 먹는 독

갯민숭달팽이는 연약해 보이지만 먹이로 섭취한 독을 몸에 축적하고 있어 만만하게 대할 수 없다.
연약하고 부드러운 몸이 외부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갯민숭달팽이는 작은 물고기라도 한입에 삼켜 버릴 정도의 만만한 크기이지만 다른 동물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갯민숭달팽이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산호나 히드라의 독이 있는 자포를 통째로 먹은 후 다른 동물로부터 위협받게 되면 자포를 발사해 몸을 지킨다.

자포는 촉수 속에 들어있는 작살과 같이 생긴 무기인데 이 작살 구조는 용수철처럼 감겨 있다가 자극을 받으면 튕겨나가듯 발사된다. 갯민숭달팽이에게 멋모르고 덤빈 포식자는 좋지 못한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가까이 다가갔다가 자포에 쏘이기도 하고 그냥 먹었다가 독성으로 피해를 보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포식자들은 본능적으로 갯민숭달팽이를 멀리하게 되었다. 그래서 다른 연약한 동물들이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숨기고 빠르게 도망치는 것과 달리 작고 연약해 보이는 갯민숭달팽이들은 오히려 몸을 화려하게 치장한 채 당당하게 노출하고 있다.

강력한 독을 지닌 복어는 포식자들의 경계대상이다.
독을 먹는 바다동물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복어이다. 복어는 불가사리 갑각류 납작벌레 등 자체에 독이 있는 먹이를 먹어 몸에 테트로도톡신이라는 맹독을 축적한다. 테트로도톡신은 색깔과 냄새, 맛이 없는 데다 끓여도 파괴되지 않는다. 어류학자인 정문기 박사는 '어류박물지'에서 이 독의 위력이 청산가리의 10배가 넘는다고 밝히고 있다. 복어의 독은 주로 난소나 간에 있지만 종류별로는 위와 장, 껍질, 정소에 맹독 성분이 있는 것도 있다. 종족 보존의 본능인지 복어의 독성은 난소가 커지는 3월 산란기 즈음에 가장 강하다. 복어를 공격했다가 독에 당해본 포식자들은 복어를 멀리할 것을 유전했을 것이다.


■도구를 이용해 위장

씬벵이 한 마리가 산호에 붙어 몸을 숨기고 있다. 씬벵이는 위장과 엄폐의 귀재라 할 만하다.
바다동물 중 자신의 몸을 숨기기 위해 도구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 연안에서 흔하게 발견할 수 있는 말똥성게의 경우 해조류 엽상체를 머리 위에 올려서 몸을 숨긴다. 마치 전투에 나선 군인이 철모에 풀을 꽂아 위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남극 세종과학기지 인근 해역을 수중탐사를 했을 당시 관찰한 남극 성게들도 해조류 엽상체를 머리에 이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와 같은 방식은 성게들이 가지는 공통적인 특성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해조류가 귀한 곳에서 성게들은 어떻게 몸을 숨길까. 갯녹음으로 해조류가 사라진 부산 남구 용호동 백운포 앞바다에서 조개껍데기나 쓰레기 조각 등을 머리에 이고 있는 성게를 발견하면서 그 의문이 풀렸다. 해조류를 찾는 데 실패한 성게들은 몸을 숨기기 위한 도구를 주변에서 찾아낼 수 있다.

집게의 경우 고둥껍데기를 도구로 사용한다. 이들의 배와 꼬리 부분은 갑각이 없어 부드러운 살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결국 말랑말랑한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딱딱한 보호막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바다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고둥껍데기를 이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고둥껍데기를 짊어지고 다니다가 몸집이 커지면 살던 집을 버리고 좀 더 큰 껍데기를 찾는다. 자신의 처지에 따라 적절한 도구를 이용하는 셈이다.


■보호색을 띤 어류들

위기를 느낀 군소가 붉은 색소를 뿜어내고 있다.
몸의 색을 바꾸는 위장술과는 다소 다른 개념으로 어류들은 보호색을 가지고 있다. 산호초지대에 서식하는 열대 물고기들이 화려한 색으로 몸을 치장하는 것은 화려한 색을 띠는 산호 속에 자신의 존재를 숨기기 위함이다.

고등어와 청어 정어리 전갱이 같은 등 푸른 어류들은 하늘에 떠다니는 새들이 내려다볼 때는 바다색과 비슷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등이 푸르게, 바닷속 포식자가 올려다볼 때는 수면의 색과 비슷하게 보이기 위해 배 부분은 흰빛이 나도록 진화했다.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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