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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김동호의 세계 영화제 기행 <19> 멕시코 과달라하라국제영화제

데킬라처럼 독특한 라틴아메리카 영화의 모든 것

데킬라의 본고장… 고딕·바로크 건물, 세계적 벽화 대가들 자랑하는 도시

문화적 열정 바탕 1986년 영화제 창설… 멕시코 영화전 출범

중남미 지역 영화산업 주도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5-19 20:17:46
  •  |   본지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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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헤 산체스 소사 집행위원장(맨 왼쪽)과 영화제 게스트들이 관객들과의 만남 행사를 갖고 있다.
지난 2007년 3월 21일. 필자는 멕시코 과달라하라국제영화제의 초청을 받고 처음으로 멕시코 땅을 밟았다. LA에서 비행기를 바꿔 탄 지 3시간만이다. 과달라하라는 멕시코시티에서 북서쪽으로 480㎞ 떨어진 곳에 위치한 멕시코 제2의 도시이다. 할리스코 주의 주도이며, 인구는 400만 명이다. 해발 1567m 고지대에 있는 것이 지리적인 특징이지만 쾌적하고 온화한 기후로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오는 휴양지이기도 하다.

과달라하라는 1530년 스페인(에스파냐)의 식민지가 되면서 계획도시로 건설되었다. 직선으로 뻗은 넓은 도로, 바둑판처럼 들어앉은 건물, 무성한 가로수 그리고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성당과 바로크풍의 낮은 주택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도시를 아름답게 만든다. 과달라하라를 '서쪽의 진주' 또는 '장미의 도시'라고 부른다. 그러나 장미보다는 브라질이 원산지라는 보라색의 자카란다 꽃이 거리를 뒤덮고 있어 차라리 '자카란다의 도시'라고 부르고 싶다.

멕시코 과달라하라국제영화제 상영관.
과달라하라는 100년 전 멕시코 독립운동의 무대가 된 유서 깊은 도시이며 마야, 아즈텍, 톨테카 문명 등 아메리칸 인디오의 찬란한 문명을 이어받은 대도시답게 풍부한 문화유산을 자랑한다. 전통음악 마리아치, 솜브레로 카우보이 모자, 토날라 도자기는 이 고장의 대표적인 문화상품이다. 또한 전 세계 애주가들이 즐겨 마시는 데킬라야말로 과달라하라의 대표적인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과달라하라의 가장 큰 자랑은 이 지역에서 출생한 화가 호세 클레멘테 오로스코이다. 그는 멕시코 출신인 디에고 리베라와 함께 세계적인 벽화의 대가이다. 과달라하라 대학 옆 가장 오래된 성당에 들르면 벽과 천장에 오로스코와 리베라가 그린 담청색 벽화가 사람들을 압도한다. 작년 덕수궁 미술관에서 열렸던 '중남미회화 특별전'에서도 이 두 화가의 작품은 압권이었다. 10월이 되면 노래와 춤으로 온 도시가 출렁인다. 공예품 전시를 포함한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린다. 영화에 대한 시민들의 열정도 뜨겁다. 바로 이러한 열정이 수도 멕시코시티를 제쳐놓고 이곳에 과달라하라국제영화제를 탄생시킨 것이다.

과달라하라영화제는 1986년에 창설되었다. 처음에는 멕시코영화를 소개하는 '멕시코 영화전'으로 출범했으나 2005년을 전후해서 국제영화제로서의 규모를 키웠다. 올해로 25회를 맞은 과달라하라영화제는 그동안 기예르모 델 토로, 카를로스 카레라, 알폰소 쿠아론, 디에고 루나 등 세계적인 멕시코 감독들을 배출했다. 2003년에는 이베로 아메리칸 필름 마켓을, 2005년에는 이베로 아메리칸 공동제작 미팅을 창설하면서 중남미 지역의 영화산업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 호르헤 산체스 소사 집행위원장이 있다.

2006년에 부임한 소사 위원장은 멕시코 국립 오토노마대학에서 사회학을, 영화교육센터에서 영화를 전공했다. 그는 졸업 후 영화계에 입문하여 멕시코 독립영화 제작자협회(AMPI)를 창설했고, 이베로 아메리칸 영화제작자 연맹(FIPCA)의 창설을 이끌었다. 2001년부터 5년간 브라질 리오 데 자네이로 주재 멕시코 총영사를 지낸 외교관 출신답게 친화력과 추진력을 겸비했다. 그는 특히 도심에 있는 과달라하라 대학을 영화제의 든든한 후원자로 끌어들였다. 2007년도 영화제 예산 미화 210만 달러(약 24억 원) 중 70만 달러는 중앙정부와 주, 시정부의 지원을 받고 50만 달러를 대학에서 현금으로 지원받았다. 이밖에 영화제의 주 극장인 2500석의 '테아트로 디아나'를 포함하여 지하극장 전시장 버스 등 시설과 장비는 물론, 자원봉사자들까지 대학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소사 위원장은 17편의 영화를 만든 영화제작자이기도 하며 그중 몇 편은 칸영화제에서 소개되기도 했다.

영화제 상영관인 '테아트로 디아나' 내부와 관객들.
처음 이 영화제에 참가했을 때 중남미 국가와 스페인에서 개최되는 크고 작은 영화제의 집행위원장들을 만날 수 있었다. 멕시코에서 새로 제작된 장·단편영화와 다큐멘터리 영화를 선보이고 있었고, 이베로 아메리칸의 장편과 단편 그리고 다큐멘터리영화가 별도의 섹션으로 상영되었다. '브라질영화 특별전'에서는 브라질에서 새로 제작된 영화와 고전영화를 함께 볼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많은 감독들을 만날 수 있었다. 세계적인 작가인 넬슨 페레이라와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 그리고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회고전도 열렸다. 특히 파리에서 두 차례 점심과 저녁을 함께 했던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을 과달라하라에서 다시 만나 며칠간 함께 지낼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그가 2009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온 것도 이런 인연 덕분이다.

소사 위원장은 특히 칸영화제와 제휴하여 이베로 아메리칸 공동제작미팅을 운영함으로써 칸영화제의 제롬 파이야르 마켓책임자, 로테르담영화제의 산드라 덴 하머 집행위원장과 후버트 발스 펀드 책임자, 예테보리영화제와 베를린영화제의 기금운영책임자들을 초청할 수 있었다. 이것 역시 그의 수완을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이곳은 중남미와 스페인 등 스페인어권의 모든 영화와 영화인이 모이는 장소라 할 수 있다. 또한 인상적인 것은 개막식뿐만 아니라 폐막식에도 멕시코 시티에서 많은 배우들이 찾아온다는 점이었다. 자국 영화제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다만 개·폐막식을 포함한 기자회견, 세미나, 관객과의 대화 등 대부분의 공식행사가 영어통역 없이 스페인어로 진행되고 있어 불편한 점도 없지 않다.

올해 제25회 영화제에서는 또 다른 도약을 보여준다. 멕시코 혁명 200주년과 멕시코 해방 100주년을 동시에 맞이한 올해 영화제에는 예년보다 자국영화를 많이 상영하였다. 멕시코 혁명과 독립을 주제로 한 1분 30초짜리 애니메이션 26개를 모은 공동작품을 주 극장인 테아트로 디아나에서 상영하면서 멕시코 관객들의 인기를 모았다. 또한 멕시코가 사랑하는 국민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가 지원하는 멕시코 단편 애니메이션 경쟁부문이 신설되어 9편의 영화가 상영되었다. 비경쟁 부문에서는 '제3세계'로 불리는 나라들의 영화가 많았고 브라질 '시네마 노보'의 전통으로 유명한 중남미 권에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회 참여적이고 정치적인 성향이 강한 영화들이 만들어져 상영되고 있었다.

올해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칠레, 엘살바도르 등에서도 독재와 내전의 상흔을 소재로 만든 수작들이 대거 선보였는데 그 중 내전으로 가족을 잃은 소녀의 시점으로 콜롬비아의 비극적 현실을 조망한 '거짓말의 바다, 그 초상'은 대상과 여우 주연상을 수상했다. 칠레의 노장 미구엘 리틴, 멕시코의 작가 감독 카를로스 카레라의 신작들도 자국의 정치사회적 현실에 메스를 들이대는 예리함을 보여 주었다. 이처럼 유럽을 필두로 멕시코와 중남미를 벗어난 다양한 국적의 영화들이 소개되었지만 안타깝게도 아시아영화의 비중은 미미했다. 총 250여 편 중 박찬욱 감독의 '박쥐'를 포함해 네 편 정도 밖에 눈에 띄지 않았다.

3년 전 첫 방문에서 과달라하라에 머무는 동안 나는 안내원 카를로스와 그의 친구 유고와 함께 북서쪽으로 48㎞에 있는 '아시엔다 산 호세' 데킬라공장에 들른 적이 있다. 데킬라는 용설란인 '아가베'로 주조된다. 과달라하라의 도심을 벗어나면 광활한 평원 곳곳에 녹색 또는 청색의 '아가베' 농장이 나타난다. 그 거대한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다. 필자는 항공편을 이용해 멕시코시티도 방문했다. 근교에 있는 피라미드와 시내에 있는 역사박물관, 국립미술관, 현대미술관, 루피노 토마요 미술관 등을 돌아보기 위해서였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멕시코의 옛날과 오늘의 문화를 섭렵할 수 있었던 것은 커다란 행운이었다.

처음 과달라하라국제영화제를 방문한 후 부산국제영화제와 프로그래머들을 서로 교환 초청하기 시작했고, 한국영화가 멕시코에 진출하는 길을 텄다. 앞으로 두 영화제간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한국영화가 중남미 지역에 널리 알려지고 중남미 영화들도 한국에 소개될 수 있게 되기 바란다.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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