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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의 혼 사람의 길을 묻다 <5> 택견 예능보유자 정경화씨

이크! 에크! 흐느적흐느적…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깬다

초대 택견 예능보유자인 故 신한승 선생 문하생으로 입문

공격보다 방어, 직선보다 곡선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온후하고 낭만적인 전통무예

요즘 아이들 체력 갈수록 허약, 택견으로 기개·호연지기 키웠으면…

  • 강춘진 기자 choonjin@kookje.co.kr
  •  |   입력 : 2010-06-17 20:26:56
  •  |   본지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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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인 정경화(56) 씨의 명함에는 '택견인간문화재'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그렇다. 그는 국가에서 인정하는 명인이다. 한국의 수많은 무예인 가운데 유일한 국가지정 무형문화재의 예능보유자인 것이다. 택견은 중요무형문화재 제76호.

충북 충주시에서 택견전수관을 운영하고 있는 정 씨는 "자연스러운 여유와 멋을 강조하는 택견은 곡선적인 무술"이라고 말했다. 2000여 년 전 고구려를 지켜온 민족무예 택견은 온후하고 낭만적인 민족무예다.

일반인들은 무술이라고 하면 으레 강하고 날카로움을 연상한다. 반면 택견은 부드러움을 강조한다. 몸동작에는 흐느적거림이 많다. 때로는 우쭐거리기도 한다. 그래서 택견 시범을 보는 사람 중에는 "무술이라기보다 마치 장난치는 것 같다"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굼실굼실 능청거리다가 상대방을 확 낚아채는 순간동작은 재빠르다. 상대방의 힘을 역이용하는 택견은 "여느 무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럽지만 가장 격렬한 운동"이라는 것이 '인간문화재' 정 씨의 주장이다.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생활무예

고구려인들의 기상이 담긴 택견은 조선시대까지 우리 민족을 지켜온 호국무예였다. 그러나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일본제국의 우리 문화 말살정책으로 사장되다시피 했다. 어떻게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는 등 다시 빛을 보게 되었을까.

"스승님의 끈질긴 노력으로 민족무예 택견의 원형을 보존하고 전승할 수 있었지요." 그의 스승은 초대 택견 예능보유자인 신한승(1928~1987) 선생. 그는 아무도 돌보지 않고 진흙 속에 묻힌 택견을 정리하고 체계화한 뒤 각종 문헌 자료 검증을 거쳐 1983년 6월 1일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로 자리 잡도록 했다.

"국내의 900여 개 무술 가운데 택견이 최초로 문화재가 됐다는 소식을 접한 순간 천하을 다 얻은 기분이었지요." 지정 당시 충주교육청에 근무하고 있었던 정 씨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스승을 찾아가 큰절을 올렸다고 한다.

1954년 충주 태생인 정 씨는 1975년부터 신한승 선생의 문하생으로 택견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어느덧 35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는 1995년 40대 초반의 '어린 나이'로 예능보유자로 등록했다. 당시 문화재보호법으로는 50대 이상이 되어야 예능보유자로 등록될 수 있었지만 격렬한 신체활동이 따르는 무술의 특성을 감안해 국가에서 그를 가장 젊은 나이의 '인간문화재'로 인정한 것이다. 스승이 세상을 떠난 뒤 택견 이수자가 되고 전수교육조교를 거쳐 1990년 보유자 후보로 선정돼 5년 만에 '인간문화재'로 공식 인정을 받은 것이다.

"희소성과 역사성 학술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택견의 특징을 알아봤다. 단지 상대방을 어르고 흐느적거리는 동작이 전부는 아니다. 그는 품밟기, 활개짓, 발질 등 세 가지 수련체계를 강조했다. 삼각보법이라 하는 품밟기와 손기술인 활개짓이 있어 공격의 표적을 분산시키며 전후좌우 어느 방향에도 구애받지 않아 자유자재로 공격술과 방어술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발질 등 유연한 몸놀림으로 긴장과 경직됨이 없이 상대방과 힘을 겨룰 수 있는 자연스러운 무예라고 한다.

택견은 "리듬을 타는 운동"이라고 말했다. 근본 원리를 유연성과 음악적 리듬에 두고 부드러운 관절과 탄력적인 근육의 발달에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건강한 체력을 유지시켜줄 뿐만 아니라 미용에도 탁월한 기능을 갖고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생활무예"라고 한다. 무술은 남자의 소유물이자 젊은 사람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을 깨뜨린다. 그만큼 생명력이 길다는 뜻이다.

"부드러운 몸의 움직임을 통해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원활한 대처능력을 키워주지요." 그리고 그는 "최선의 공격이 최선의 방어이며 최선의 방어가 최선의 공격이 된다"고 강조했다.

"반짝 인기를 누린 적이 있습니다." 택견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뒤 많은 사람들이 "큰 보배를 찾았다"며 배우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오래가지 않았다고 한다. 시대흐름에 따라 일반인들의 발길이 멀어지는 여느 무술과 마찬가지로 택견도 같은 신세를 면하기 어려웠다. 다행히 전국의 많은 무예인들이 중요문화재 택견을 접하면서 그나마 빛을 내고 있다. 1990년 후반부터 전국에서 전수관이 하나둘씩 생기면서 지금은 문화재청 등록 전수관 100여 곳을 비롯해 400여 곳의 전수관이 운영되고 있다. 택견 인구는 5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기개와 호연지기를 키우는 무예

그렇다면 '택견인간문화재' 정경화는 무엇 때문에 무예인의 길을 선택했을까.

어려서부터 싸움을 잘했다는 그의 꿈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해 군인이 되는 것이었다. 우리 전통문화에도 관심이 많았다. 국궁 승마도 했고 충주고등학교에 입학해 밴드부 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폐결핵을 앓고 학업을 중단해야 하는 아픔을 겪었다. 덩달아 '군인의 길'도 접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2차, 3차 투약도 소용이 없어 의사도 포기할 지경이었지요." 그는 결국 부모님께 하직인사를 하고 지금은 충주댐 건설로 수몰된 풍류산 개천사를 찾았다. "라디오 속에서 생식이 몸에 좋다는 말을 듣고" 산에 들어간 것이다. "절망의 세월이었지요." 새벽 2시면 기상. 그 고요한 곳에서 라디오를 듣는 재미가 없었다면 절망은 더 컸으리라. "어느 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신한승 선생의 이야기를 듣게 됐지요. 전통무예 택견의 중요성을 역설한 내용입니다." 신한승 선생은 정 씨와 같은 마을에 살았다. 그는 선생을 동네의 '무서운 할아버지'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전통문화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던 그에게 택견은 매력으로 다가왔다.

"새벽 2시에 일어나 법당 가운데서 좌선하는 시간을 매일 가졌습니다." 7개월가량을 그렇게 보낸 그는 다시 건강한 몸으로 돌아가고 싶은 희망으로 두려움을 이겨냈다. 매일 소리를 지르며 산을 뛰고, 피를 토하면서 또 산을 탔다. 정말 기적적인 일이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각혈을 하고 소리를 지르면 폐에 무리가 간다는 통념을 깨고 그는 갈수록 몸이 가벼워졌다고. 건강이 어느 정도 회복된 뒤 복학을 했지만 결국 고등학교 졸업은 하지 못했다고 한다. 대신 방송통신대학을 다니면서 학업을 계속했다.

"무예를 통해 건강을 지키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래서 1974년 청강생으로서 신한승 선생으로부터 무술을 배웠다. 그 이듬해 신한승 선생의 정식 제자가 되면서 택견은 그의 인생 전부가 된 것이다.

"왜 없었겠어요." 무예인인 그에게도 무용담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크게 자랑하지 않았다. 1977년 첫 직장인 울산 방어진의 한진중공업 근무 당시 경비원 8명과 한꺼번에 싸운 이야기를 슬쩍 흘렸다. "당연히 제압하는 방법은 알고 있었지요. 상대의 급소만 제대로 건드리면 되는데." 그는 당시 경비원들의 급소를 건드려 치명상을 입혔다면 "아마 감옥행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순간부터 자신의 인생 방향은 지금과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라고 한다. 택견의 매력이다. 상대를 다치지 않게 하면서 승부를 낼 수 있는 활수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급소를 쳐서 상대를 제압하는 살수 위주의 결련택견도 있다.

"어려움이 있어도 헤쳐나갈 힘이 있어야 하는데 요즘 아이들은 체력이 너무 많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그도 학문을 닦고 무예를 수련하는 등 문무를 겸비할 수 있는 학교 교육현장을 꿈꾸고 있다. 그 때문인지 서양 스포츠 위주로 진행되는 학교 체육 교과 프로그램에 대한 불만도 드러냈다.

"서로 겨룰 때 흥이 나는 무예는 택견밖에 없다"는 점을 여러 번 강조한 정 씨는 자라나는 아이들이 무예를 통해 기개와 호연지기를 키웠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리고 "택견만큼 매력적인 운동이 없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 택견전수관, 기술 향상·원형보존 업무 가장 중시

- 충주에 소재… 해외입양인 모국문화체험 등 다양한 활동

충북 충주시 호암동 호암공원에 위치한 택견전수관(사진)은 대지 6480㎡에 건평 961㎡ 1층 규모의 건물이다. 이 전수관에서는 택견 국가전수자들의 기술 향상과 원형 보존 업무를 가장 중시한다. 그리고 매년 10월이면 이곳에서 예능보유자의 공개발표회가 열리고 있으며, 택견을 통한 학사학위 취득과 평생교육에 필요한 학점은행제도 실시하고 있다.

택견전수관은 1973년 10월 충주시 교현동에 최초로 개설됐다. 이 전수관은 현재의 택견을 정립하고 옛 태견의 마지막 계승자라고 할 수 있는 신한승 선생이 1961년부터 전국을 돌며 원형 정리에 심혈을 기울인 뒤 개설한 것이다. 이후 충주시 문화동을 거쳐 용산동, 성남동, 성내동 관아공원 등으로 옮긴 뒤 지난 1996년 11월 현 위치에 자리 잡았다.

중요무형문화재 제76호 택견의 전승과 보급, 원형 보존을 위해 많은 활동을 펼치고 있는 택견전수관은 해외입양인을 위한 모국문화체험, 세계택견대회, 학술용역사업, 전국택견한마당대회, 상임시범단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정경화 씨가 딴죽과 무릎치기 등 발질과 손질로 택견의 다양한 동작을 시연하고 있다. 김동하 기자 kimdh@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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