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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大 트레일을 연다 <1> 통일전망대~거진항 (22㎞)

[창간 63주년 특집] 통일전망대 ~ 부산 650㎞

철조망 너머 해금강 뒤로하고 해안길 따라 대장정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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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보 북방한계선인 대진리서 '관동별곡 800리 길' 따라 남하
- 명품 모래해변·석호·송림 풍광
- 걸으며 즐기며 화진포 벗어나니 '거진 등대길' 짧지만 운치 만점
- "북녘땅 걷는 날도 빨리 왔으면…"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통일전망대에 선다. 부산서 장장 8시간을 자동차로 달려왔다. 멀다. 한반도가 결코 작다고만 할 수 없다. 이곳 통일전망대에서 부산까지 걸어간다면 아마 20일쯤 소요될 것이다. 그땐 한반도가 더 크고 다채로운 땅이 될 테다.우리 국토의 최북단. 동해의 비경이 북녘으로 달음질친다. 눈시울이 떨린다. 아스라한 금강산과 손에 잡힐 듯한 해금강, 북녘으로 뻗어난 해변과 길. 태고의 숨결을 간직한 백사장에 철조망이 데굴데굴 굴러간다. 검푸른 동해를 물고 휴전선이 쳐져 있다. 망원경에 빨려든 철책 가시가 가슴을 찌른다.발길을 남쪽으로 돌린다. 언젠가 북녘땅도 밟으리라, 다짐하며.

■통일전망대는 자동차로만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녘의 해금강과 동해. 부산에서 통일전망대까지 이어지는 동해 트레일이 연장해야 할 코스다. 박창희 기자
아쉽다. 도보가 허용되는 최북단은 고성군 현내면 출입국관리소다. 통일전망대로 들어가려면 안보교육을 받고, 비표를 부착해 차로 이동하도록 돼 있다. 민통선 규칙이다. 저 규칙을 허물어야 길이 열린다.

민통선 내 명파리 먹을거리촌은 썰렁했다.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2008년 이후 관광객이 30%가량 줄었다고 한다. 지난해 6월 통일전망대 내에 'DMZ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또 하나의 안보 명물이 될 전망이다.

대진리 금강산 콘도에서 동해 트레일 대장정을 시작한다. 이곳이 사실상 걸을 수 있는 북방 한계선이다. (사)세계걷기운동본부가 개척한 '관동별곡 800리 길'도 여기서 출발한다. 철조망 사이로 동해가 넘실거린다. 마차진 해변과 대진항-초도항을 지난다. 대진항은 우리나라 최북단 등대가 있는 수채화 같은 어항이다. 등탑 위 전망대에 올라서면 남북한 경계가 지워진 동해의 장관을 만난다.

해안도로와 7번 국도를 들락날락하며 터벅터벅 걷다 보면 이내 화진포(花津浦)다.

■동해안 최대의 석호

화진포는 안보 관광지이자 해안 경승지(강원도기념물 제10호)다. 해수욕장과 연결된 석호(潟湖)가 있는데 자연풍광이 매혹적이다. 이 석호는 둘레가 16㎞에 이르며 철새도래지로도 유명하다.

화진포 해변의 모래 또한 명품이다. '모래가 눈같이 희고 밟으면 소리가 쟁쟁하여 마치 쇳소리와 같다'라며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극찬한 모래다. 오랜 세월 조개껍데기와 바위가 부서져 만들어진 모나즈 성분의 모래라고 하는데, 걸어보니 소리가 쟁쟁 울렸다. 여기서 지난 2000년 KBS 드라마 '가을동화'를 찍었다.

화진호 주변에는 송림과 함께 해당화가 지천이다. 화진의 꽃이 해당화임을 알려주는데, 꽃 진 자리에 빨간 봉오리들이 향수를 자극했다. 화진포 너머로 백두대간이 물결치듯 흘러간다.

이런 곳에 전설이 없을 수 없다. 옛날 이화진이란 부자가 살았는데, 시주를 청하는 스님을 박대했단다. 어느 날 시주 대신 두엄 더미를 스님의 바랑에 퍼붓자, 변고가 일어나 이화진의 집이 물에 잠겨 호수가 되었다고 한다. 스토리가 다소 싱겁다.

■김일성과 이승만

화진포에는 남북한 최고 권력자였던 김일성(화진포의 성)과 이승만의 별장이 묘하게 동거한다.

김일성은 1948년부터 50년까지 처 김정숙, 아들 김정일, 딸 김경희 등 가족과 함께 화진포 휴양지에서 쉬었다 가곤 했다. 1948년 8월 당시 6살이던 김정일이 소련군 정치사령관 레베제프 소장의 아들과 별장 입구에서 어깨동무하고 찍은 사진이 남아 있다. 이 별장은 한국전쟁 때 훼손됐으나 1964년 육군이 재건축하여 자료관으로 꾸몄다. 그런데 정작 '김일성'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별장 주변의 금강송이 힘이 넘친다. 이승만 별장은 이곳에서 3km 떨어진 화진호반에 자리한다. 1954년에 신축해 이승만 대통령이 한동안 사용하다 1961년 철거된 것을 1999년 육군에서 복원, 전시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화진포 해양박물관 앞 광장에는 '관동별곡 800리 답사 1번지'라는 기념비가 우뚝 서 있다. 지난해 10월 고성군에서 걷기축제를 개최하며 세운 것인데, 도보꾼들에게 이정표가 되고 있다. 화진포는 걸어가며 봐야 아름다운 속살을 제대로 보여준다. 화진호를 끼고 걸어 나오면 산 너머에 거진항 등대가 길마중을 한다.

■거진 등대길

(사)걷고싶은부산의 박재정(왼쪽) 상임이사와 (사)세계걷기운동본부 정준(왼쪽 두 번째) 사무총장 등 동해 트레일 탐사단이 통일전망대에서 발대식을 갖고 있다.
"꼭 가봐야 할 곳이 있어요. 걷기도 좋고 사진 찍기도 안성맞춤입니다. 놓치면 후회합니다."

(사)세계걷기운동본부 정준 사무총장의 말에 귀를 쫑긋 세우고 따라갔다. 화진포를 벗어나 해안길로 접어드는 곳에 위치한 '거진 등대길'(2.2㎞)이었다. 코스는 짧지만 운치 만점의 산책로였다. 갈림길마다 '관동별곡 800리 길'이란 팻말이 붙어 있어 길 잃을 염려도 없었다. 등대 모퉁이를 돌아 나오자 거진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찰칵! 사진 한컷.

거진항은 이름처럼 큰 포구였다. 명태 주산지로 '고성명태와 겨울바다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읍내에는 '거포'라는 간판이 눈에 띄었는데 알고 보니 '거진포구'의 준말이었다. 거진횟집에 들러 늦은 아침을 해결했다. 주인 이경희(여·51) 씨는 금강산 관광 중단을 몹시 아쉬워했다. "옛날엔 이곳도 북한 땅이라 안 그러요. 여기 주민들이 금강산에 가서 북한 안내원들과 얘기를 하니 말이 통한다 하더라구. 억양과 정서가 비슷한 게지. 닫힌 관광길이 빨리 다시 열려야 하는데…."

'자연산'을 강조하는 횟집 주인의 등쌀에 못 이겨 회 한 접시를 시켰는데, 혀끝에 자연의 맛이 고스란히 감겨왔다.

강원도 고성군은 금강산 관광 중단 이후 걷기를 '그린 관광상품'으로 개발하고 있었다. 고성군 신성장개발과 이주배 과장은 "최근 주민들이 참여하는 '갈래길 개척위원회'를 조직, 머무는 관광의 길을 찾고 있다"며 "7번 국도와 별도로 자전거도로를 겸한 보행 전용교량 2개를 만드는 등 관동별곡 코스 개척을 위해 2013년까지 200억 원을 투입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1차 탐사에 참가한 (사)걷고싶은부산 이성근 사무처장은 "각 지자체들의 도보길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 같다"며 "동해안 지자체들이 길 협의체를 구성해 큰 틀에서 동해 트레일을 논의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 국제신문 · (사)걷고싶은부산 공동기획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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