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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大 트레일을 연다 <2> 거진항~속초 영랑호 (약 41㎞)

[창간 63주년 특집] 통일전망대 ~ 부산 650㎞

김득구의 고향 바다, 합쳐지지 못한 남북길… 발끝마다 이야기가 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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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똥개도 물고 다닌다던 거진항 명태 풍어 옛말
- 비운의 복서 김득구 반암리서 되살난 듯
- 분단의 아픔 합축교, 민물·짠물 만나는 '산소길' 송지호 호반
- 청간정 만경창파 싱거운 詩情 아쉬워

'강호에 병이 깊어 죽림에 누웠더니 관동 팔백 리 방면을 맡기시니…'.

한글 가사문학의 백미로 꼽히는 송강(松江) 정철(1536~1593)의 '관동별곡' 첫머리다. 송강이 나이 45세에 강원도 관찰사가 되어 동해안을 돌아보며 쓴 가사다. 단순히 읽히기만 했던 '관동별곡'이 400년만에 길 위에서 부활했다. '관동별곡 800리 길'이 등장하면서 송강이 다닌 길이 동해 트레일로 되살아났고, 문화체험 장소로 바뀌고 있다. 그 길을 따라 걷는다.

■명태는 어디가고

강원도 고성군 송지호의 아름다운 산책로. 강원도 '산소(O₂)길'이자 '관동별곡 800리 길'의 주요 코스다. 박창희 기자
이른 아침, 고성 거진항을 돌아본다. 거진항은 명태 주산지다. 한때 전국 명태 어획량의 60% 이상을 차지했고, "겨울철엔 똥개도 명태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것도 옛말. 무분별한 남획에다 지구 온난화 여파로 명태 어획량이 크게 줄어 고성명태축제에서조차 진짜 명태를 구경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명태만 그런 게 아냐. 임연수어, 꽁치, 털게도 안잡혀. 대신 오징어만 많아. 바닷물이 따뜻해져 그렇다네." 거진항을 걷던 중 만난 어민 최성호(68) 씨가 변화된 환경을 일러준다. 북한 한류의 영향을 받아 한류성 어족자원이 풍부한 강원 북부의 연안 해역 환경이 바뀌고 있다는 얘기다.

거진읍 사무소 뒤 거진1교를 건너 11리 해수욕장을 끼고 해변도로를 따라 나오자 다시 7번 국도다. 반암리로 접어든다.

■아, 김득구!

비운의 복서 김득구.
고성군 거진읍 반암리는 비운의 복서 김득구의 고향 마을이다. 마을 뒷산에 김득구의 무덤이 있고, 그의 형이 이 마을에 살고 있다. 궁벽진 동해안 바닷가 마을에서 김득구는 '가난은 나의 스승'이라고 외치며 소 먹이고 풀을 뜯으며 복서로서의 꿈을 키웠다.

김득구(당시 27세)는 1982년 11월 14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특설링에서 열린 세계권투협회(WBA) 라이트급 타이틀전 도중 챔피언인 미국 맨시니의 펀치를 맞고 쓰러져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김득구의 짧았지만 치열했던 삶은 국내외 많은 권투팬들의 심금을 울렸고, 그후 영화, 노래, 시로 되살아났다. 추모는 아직도 계속 된다. 지난 광복절에는 김득구를 추모하기 위한 스트로급 챔피언 박지현의 세계타이틀 7차 방어전이 고성에서 벌어졌다.

길 위에서는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이야기를 종종 만난다. (사)세계걷기운동본부 정준 사무총장은 "김득구는 우리 곁에 있다. 2002년 곽경택 감독이 영화 '챔피언'으로 부활시켰고, 2006년에는 미국의 인디그룹이 노래를 불러 주었으며, KBS 2TV '스펀지'에 나온 적도 있다"면서 "이런 것도 좋은 스토리텔링"이라고 했다.

■분단의 흔적, 합축교

반암리를 지나면 운치있는 해안 송림길이 이어지고, 7번 국도를 찾아 나오면 북천교를 만난다. 간성-거진을 잇는 다리다. 옛 북천교(폭 6m, 길이214m, 높이 5m)는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전체 17개 교각 중 남쪽에 있는 9개는 북한에서 1948년 6월에 착공, 건설도중 6·25동란으로 중단되었고, 북쪽의 8개는 육군 공병대가 1960년에 완공해 개통시켰다. 남과 북에서 건설한 부분이 완연히 다르다. 이때 남북이 합쳐져야 한다는 뜻에서 '합축교(合築橋)'라 이름했다. 북천교의 4차선 교량이 신설된 뒤 옛 다리는 인도로 쓰이고 있다.

시원하게 트인 북천강을 보며 합축교를 걸으니 분단의 아픔이 새삼 발 끝에 묻어났다. 들판에서 일하던 한 농부가 "늦가을이면 이곳에 은어와 연어가 올라온다"고 귀띔해준다.

북천교 앞 '관동별곡 길' 표지판을 따라갔다가 한참을 헤맸다. 화살표 방향이 엉뚱하게 표시돼 있었다. 공공 표지가 틀리면 공공이 애를 먹는다.

간성읍내를 지나 남천교에 이르자 '관동별곡 길' 제6코스가 시작된다.

■송지호 산책길

가진항-공현진항을 지나 북방식 전통가옥 보존지구인 왕곡마을을 돌아나오자 송지호가 나타난다. 왕곡마을~송지호 2.2㎞는 강원도에서 명명한 '산소(O₂)길'이다. 송지호는 둘레가 6.5km인 석호로, 갯터짐을 통해 민물과 짠물이 만나기 때문에 도미, 숭어, 황어, 잉어, 가물치 등이 함께 산다. 짠물이 섞여 겨울에도 잘 얼지 않고, 먹잇감이 많아 고니 등 희귀 철새들도 온다. 송지호 호반은 해질 무렵이 특히 아름답다.

송지호 입구에 철새관망타워가 있는데 건물이 너무 크고 요란하다는 지적이 따랐다. 게다가 입장료(어른 1000원)를 받아 입장을 곤란하게 했다.

송지호 해수욕장 옆의 오토캠핑장에는 차가 넘쳐났다. 야영 덱 97곳과 주차장 100대 공간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는데, 지난 여름 내내 예약 풀이었다고 한다. 이들에게 걷기는 남의 나라 이야기일까. 도보탐사단을 본 '오토족'들이 신기한 눈길을 보낸다.

■청간정의 만경창파

관동팔경 중 한 곳인 청간정.
동해는 사실 명소 아닌 곳이 없고, 절경 아닌 곳이 없다. 송지호에서 봉수대-삼포-자작도-백도-교암-아야진까지 다붓다붓 이어진 해수욕장들은 하나같이 예쁘다.

교암 해변에는 고성 8경 중 한곳인 천학정(天鶴亭)이 있다. 규모는 작지만 정자가 갖추어야 할 조건들을 두루 갖췄다. 고성군이 일출 명소로 자랑하는 곳이다.

아야진 해변 끝자락 철책을 끼고 목재 덱을 따라가자 산자락 위에 청간정(淸澗亭)이 나타난다. 관동팔경의 하나요 강원도 유형문화재 32호다. 설악산 골짜기에서 발원한 청간천이 동해로 흘러드는 하구 언저리에 팔작지붕을 얹은 정자가 늠름하게 앉아 있다. 동해의 만경창파가 시심을 자극한다.

일세의 문장가들이 앞 다투어 청간정을 칭송했으나, 송강은 '관동별곡'에서 스쳐지나듯 은밀하게 다루었다. 하고 보니, 청간정에 문장가들의 시구 하나 걸려 있지 않은 게 이상하다. 풍광에 놀라 모두 입을 다문 것인가!

이곳에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 현판과 1981년 최규하 전 대통령이 정자를 보수하면서 남긴 한시가 걸려 있다. '과시관동수일경(果是關東秀逸景·과연 관동의 빼어난 경치로구나)'. 다소 싱겁다는 느낌으로 만경창파를 굽어보는데, 서늘한 바람 한줄기가 등짝을 파고든다. '이 시대의 풍류와 시정이 고작 이 정도인가'하고 묻는 듯 하다.

고성지역 '관동별곡 800리 길'(54.2㎞)은 토성면 켄싱턴리조트 앞 해당화 공원에서 끝난다. 발길은 속초로 접어든다.


# 정준 (사)세계걷기운동본부 사무총장

- "관동별곡 800리와부산 갈맷길 이어 걷기 관광명소로"

국토 최북단의 동해안 길을 안내해준 (사)세계걷기운동본부 정준(54·사진) 사무총장은 '관동별곡 800리' 프로젝트를 현실화한 주역이다. 지난해 그는 한국관광공사와 함께 '관동별곡 800리 세계 슬로 걷기축제'를 기획해 진행했고, 올해는 강원도 고성군과 '관동팔경 800리 문화축전'(8월 13~15일)을 개최했다.

올해 성과에 대해 그는 "3일간 약 5000명이 참가했으며 특히 서울에서 연예인·미술인 등이 수십 명 왔다. 자발적인 걷기 마니아들의 참가가 많은 것도 특징"이라고 소개했다.

군 생활을 고성 화진포에서 하면서 송강의 '관동별곡'을 다시 보게 되었다는 정 총장은 "동해안의 아름다움을 홍보하는 데 이만한 역사 자료가 없다. 송강이 곧 강원도 홍보대사인 셈"이라고 말한다. 그는 지난해 6월 서울과 강원도의 기초단체장, 정치인 등이 참여하는 '송강포럼'을 발족시키고 여기서도 사무총장을 맡았다.

정 총장은 작가이자 축제기획 전문가다. 지난 1997년 전남 해남의 '땅끝'에서 고산 윤선도의 발길을 찾아가는 걷기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2001년 소설 '나비처럼 날다'를 발표, 제3회 함평나비축제 홍보대사를 맡기도 했다. 2007년에는 박세직 전 88올림픽 조직위원장과 함께 '세계 걷기의 날'(11월 11일 오전 11시)을 선포해 주목을 끌었고, 이듬해에는 반기문 UN사무총장을 만나 세계화를 논의했다.

"제가 부산 출신입니다. 중학교까지 부산서 다녔어요. 부산 갈맷길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습니다. 강원도 고성이 출발지가 되고 부산이 도착지가 되는 동해안 트레일 개척을 위해 서로 힘을 보탭시다."

정 총장의 서글서글한 눈매에 기운이 느껴졌다. (사)세계걷기운동본부와 (사)걷고싶은부산이 좋은 걷기 파트너가 될 것이란 예감이 번쩍 스쳤다.


※ 국제신문 · (사)걷고싶은부산 공동기획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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