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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大 트레일을 연다 <4> 강릉 바우길 (약 40.3㎞)

[창간 63주년 특집] 통일전망대 ~ 부산 650㎞

송정해변 숲길 솔향기 솔~솔, 경포대엔 다섯개의 달 속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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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개 코스 총 150㎞ 바다 호숫길 등 3개, 동해 트레일과 겹쳐
- 5구간 강문~남항진, 허균·허난설헌의 길, 남대천 솔바람다리 일출·월출 새 명소
- 8구간 '바닷길' 동해 일망무제…산 오른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
- 9구간 '헌화로' 신라 절세미인 수로부인 향한 연가

강릉은 솔향을 품은 도시다. '솔향강릉'. 이는 강릉시가 내세운 도시 브랜드인데, 볼수록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입속에 은은한 솔향이 번지는 것 같다. 이곳 출신인 허난설헌과 허균, 신사임당이 있어선지 강릉의 향기는 다르다.

솔향이 강릉의 이미지라면, 바우길은 강릉의 걷고 싶은 길 브랜드다. 길에 '미친' 감자바우(강원도 사람)들이 개척했는데, 불과 1년만에 전국적 유명세를 타고 있다.

■감자바우들이 낸 길

강릉 송정해변의 푹신한 해송 숲길. 동해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에도 은은한 솔향이 묻어 있는 것 같다. 박창희 기자
강릉 바우길은 백두대간에서 경포와 정동진까지의 산과 바다, 호수의 옛길과 새길을 따라 걷는 총연장 150㎞의 긴 도보길이다. 1구간 '선자령 풍차길'에서부터 11구간 '신사임당길'까지 11개의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철저하게 자연친화·인간친화를 지향하는 트레킹 코스다.

5구간인 바다 호숫길(17km), 8구간인 산우에 바닷길(9.3km), 9구간인 헌화로 산책길(14km)은 동해 트레일과 상당부분이 겹친다. 동해 트레일이 바우길을 탈 수 있다는 얘기다.

5구간을 걷는다. 출발점인 사천진 해안공원에 바우길 안내 리본이 보인다. 곳곳이 백사장이고 솔밭이다. 솔밭 사이로 목재 덱을 놓아 산책로를 만든 곳도 있다. 2시간 쯤 걷자 동해안 최대 해수욕장인 경포 해변이다. 길은 경포호수로 들어가 허난설헌 유적지를 돌아서 강문-안목-죽도봉-남항진으로 이어진다.

송정해변의 해송 숲길(4㎞)은 은밀히 숨겨 두고 걷고 싶은 길이다. 아마 국내에서 가장 길고 울창한 해변 솔밭길일 것 같다. 걷기카페 사람들이 걸어보고 '강추'를 연발한 곳이다.

■허균·허난설헌이 꿈꾼 세상

"허난설헌 생가는 경포호반인데, 허균의 생가는 어디 있죠?"

"…."

도보탐사팀을 맞아 길을 안내하던 바우길 이기호(51) 탐사대장이 순간 멈칫 한다. "허허, 넌센스 퀴즈겠죠." 허균과 허난설헌이 남매라는 사실을 넌지시 환기시키는 말이다.

조선시대 허균(許筠·1569~1618)을 우리는 흔히 최초의 한글 소설 '홍길동전'을 쓴 문학가 정도로만 알지만, 그는 시대를 변혁하기 위해 혁명을 꿈꾸던 사상가였다. 역모죄에 연루돼 비록 죽음을 맞았지만, 그가 꿈꾼 새로운 세계는 오늘 우리가 꿈꾸는 이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허균의 누나인 허난설헌(許蘭雪軒·1563∼1589)은 조선의 천재 여류시인이었다. 본명은 초희(楚姬). 난설헌은 난초와 눈의 청순한 이미지를 따서 지은 호다. 15세에 혼인하였으나 부부간·고부간의 불화를 겪어야 했고, 친정집의 옥사까지 겹쳤다. 게다가 자녀 둘을 일찍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 그는 책과 먹으로 고뇌를 달래며 문학혼을 불태웠다. 그 속을 다 태웠음인지, 그는 27세에 요절했다.

'안개랄까 봄비에 어리운 버들/ 해마다 가지 꺾어 가는 임 주었네/ 봄 바람은 이별의 한 모르는듯/ 낮은 가지 휘두르며 길만 쓰나니'. 허난설헌의 '양류지사(楊柳枝詞)'란 시는 그가 걸었던 삶을 연상시킨다.

경포호반의 허난설현 유적지를 둘러보면 불여세합(不與世合), 즉 세상과 더불어 화합하지 못한 두 예술가에 대한 상념이 솟는다. 이들이 걸어간 길이 깊은 여운을 남기고 있음이다.

경포대(鏡浦臺)를 보지 않을 수 없다. 관동팔경의 한곳. 경포대에서는 다섯 개의 달이 뜬다고 한다. 하늘에 뜬 달이 하나요, 바다에 하나, 호수에 하나, 술잔에 하나, 그리고 님의 눈에 비친 달이다.

■솔바람다리

강릉 남대천 하구의 솔바람다리. 강과 바다의 은밀한 만남을 구경할 수 있다.
5구간은 죽도봉→남대천 솔바람다리를 지나 남항진에서 끝난다. 죽도봉은 남대천의 하류에 자리한 작은 봉우리. 죽도봉 산책로(약 250m)를 돌아 총총 내려가면 남대천 하구다. 동해안엔 이름이 같은 남대천(南大川)이 많다. 양양, 강릉, 울진 평해, 그리고 북한에도 두어 곳이 있다.

강릉 남대천은 다른 남대천과 차별화 된다. 하구의 솔바람다리 때문이다. 강릉시가 지난해 47억 원을 들여 만든 솔바람다리는 자전거 및 걷기 전용으로, 길이 192m, 폭 7∼14m 규모의 아치 형태 교량이다. 동해 일출과 월출, 남대천 하구의 장엄한 경관을 함께 볼 수 있어 강릉의 새로운 명물로 떠오르고 있다. 다리 중간에는 공연이 가능한 광장도 마련돼 있다.

솔바람다리를 걷던 (사)걷고싶은부산 이성근 사무처장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자연 그대로의 만남을 보네요. 강과 바다가 아무 거리낌없이,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몸을 섞고 있잖아요. 낙동강 하구도 원래 저랬는데…." 노을이 엉기어 강물을 온통 황톳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산 우에 바닷길

남항진에서 안인리 쪽으로 가는 해안길은 공군비행장이 가로막고 있다. 할수 없이 청량동→(7번 국도)→안인신교→하시동리로 돌아간다. 안안리 해변에서 정동진 가는 길은 해안길, 산길 둘다 가능하다. 우리는 산길을 택했다. 원래 안보체험등산로가 나 있었는데, 바우길 개척팀이 '8구간, 산 우에 바닷길'로 개칭했다. 이름이 바뀌자 길의 속성이 확연히 드러났다.

산 우에 바닷길(9.3km)은 생각보다 가팔랐다. 이른 아침에 올랐는데 헐레벌떡 땀을 두어 바가지 흘리고 몇차례 다리쉼을 하고서야 전망대에 닿았다. 동해가 선사하는 일망무제는 산 우에 오른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다.

산길을 내려오면 강릉 통일공원과 함정전시관을 지나게 된다. 함정전시관에는 1996년 이곳에 잠입, 침투하다 잡힌 북한 잠수함과 우리의 바다를 누비다 퇴역한 전북함(길이 118m)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언제까지 저렇게 총을 겨룬 채 마주보고 있어야 하는지….

여기서 정동진까지는 지척이다. 정동진의 '모래시계'와 플랫폼 옆의 '고현정 소나무'는 여전히 건재했다.

정동진에서 옥계까지는 바우길 9구간 '헌화로 산책길'(14km)이다. 심곡~금진 간 기존의 '헌화로'(약 6㎞)를 연장해 만든 코스다. 신라의 절세미인 수로부인이 강릉태수로 부임하던 남편을 따라가다 바닷가 천길 벼랑에 곱게 핀 꽃을 보고 따고 싶어 했다. 그때 소를 타고 지나가던 노인이 올라가 꽃을 꺾어 바치며 부른 노래가 '헌화가'다. 하지만 장소는 짐작일 뿐이다. 강릉과 별개로 삼척시는 관동대로 삼척 구간을 '수로부인길'로 소개한다.

헌화로를 지나다 '합궁골'을 봤다. 계곡의 지형이 마치 여성의 음부를 연상시키고, 그 아래에 남근석이 벌떡 서 있는 기이한 모습이다. 금진항의 한 어민은 "비가 오면 계곡에 물이 흘러 더욱 신비한 느낌을 자아낸다"고 말했다. 수로부인이 이걸 봤다면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 이기호 바우길 탐사대장

- "걷기꾼이 달려들면 길 열려"

"좋은 길들은 서로 통하고 얘기하기를 좋아합니다. 제주 올레가 뜨니까 바우길도 잘 되고 부산 갈맷길도 잘 되는 것 아닙니까. 걷기꾼들이 '가 보자'하고 달려들면 금방 길이 나더라구요."

바우길 탐사대장 이기호(51·사진) 씨. 그는 원래 산악인이었다. 맹렬한 산꾼이었던 그가 소설가 이순원(52) 씨를 만난 건 '길'을 통해서였다. 강릉에도 좋은 길이 많은데 잠자고 있다는 사실이 길눈 밝은 산꾼을 자극했고, 글눈 밝은 이순원 씨가 감성을 입히면서 '바우길'이 탄생했다. '바우길'이란 이름은 이순원 씨가 지었다고 한다.

고향 선후배 사이인 이들은 '감자바우'들이 그렇듯, 뿌리를 뽑는다는 심정으로 걷는 길을 열어갔다. 흩어져 있던 후배들이 하나 둘 모여 봉사를 자청했다.

"바우길은 전체 150km 중 약 130km가 비포장도로예요. 그 중 70% 이상이 숲길과 그늘길이고요. 숲길은 바다로도 이어집니다. 전국 어느 길보다 경쟁력이 있다고 봐요."

이 탐사대장은 외지에서 방문객이 오면 자신의 '야전' 승합차를 몰고 나와 곧잘 안내를 해 준다. 본지 도보탐사팀도 그의 도움을 받았다.

바우길 개척팀은 얼마전 '심스테파노 길'을 찾아내기도 했다. 심스테파노는 강원도에서 신앙생활을 하다 병인교난(1866년)때 순교한 천주학자. 소문이 나면서 전국의 신부님, 수녀님들이 찾아와 이 길을 걷고 있다고 한다.

'보수가 있느냐'고 묻자 그는 식당 명함을 내밀며, "제가 옥천동에서 왕숫불갈비집을 합니다. 장사가 좀 됩니다. 길 닦는 이쁜 후배들에게 밥은 제가 사야죠. 소주 한잔 하러 오세요"라며 호방하게 웃었다.

바우길은 이달 초 사단법인으로 거듭났다. 이 탐사대장에게 확실히 할 일이 생겼다.


※ 공동기획: 국제신문·(사)걷고싶은부산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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