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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大 트레일을 연다 <7> 울진~후포(약 75㎞)

[창간 63주년 특집] 통일전망대 ~ 부산 650㎞

푸른 해풍 붉은 솔향에 숨이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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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발 광풍에 딱해진 삼척 월천리 솔섬
- '용의 꿈길' 죽변 대숲, 신라비 사적공원 노닐며 걷고
- '관동제일루' 망양정 옛 풍류같지 않으나 왕피천 하구의 바다-강 교섭 흔적은 모래톱에 고스란히
- 해질무렵 월송정 닿아 달을 즐겨도 좋을 터

삼척 월천리의 솔섬 주변 풍경. 솔섬은 걸어가며 각도 변화를 살펴야 진면목을 볼 수 있다.
울진으로 접어든다. 이제 경북 땅이다. 실은 어딜가도 내땅 네땅은 없다. 동해 트레일은 길이 있을 뿐, 그 어떤 물리적 심리적 경계를 허용하지 않는다. 통하니까 길인 것이다.

울진(蔚珍)은 욕심 많은 땅이다. "산림이 울창하고 진귀한 물산이 풍부하다"고 이른 신라 김유신의 말이 딱 맞다. 쭉쭉 뻗어오른 금강송 군락지와 한국 최고의 야생낙원인 왕피천, 관동팔경으로 꼽힌 망양정과 월송정까지 껴안았으니 부러울 게 없다. 그런데, 울진 걷기는 고역을 각오해야 한다. 해안 도보길에 아직 신경을 쓰지 않은 탓이다.

■솔섬의 딱한 운명

울진 죽변항의 대숲 오솔길.
잠깐, 삼척 월천리의 솔섬 이야기를 하고 가야겠다. 솔섬은 동해와 맞닿은 가곡천 하구의 모래톱이다. 동그마니 외따로 모여 앉은 소나무가 독특한 풍경을 연출한다. 큰고니떼 같은 철새도 제법 찾아든다.

솔섬은 지난 2007년 영국 사진작가인 마이클 케냐가 이곳을 찍어 퍼뜨린 후 사진 애호가들 사이에서 출사 1번지로 떠올랐다. 평범한 것도 다르게 보면 비범해진다던가. 가곡천을 따라 걸으면서 각도를 달리해 보니, 솔섬 주변의 시간과 공간이 경이롭게 다가왔다. 걷기가 주는 선물이다. '월천리 솔섬'이란 책에서 임채욱은 "조급하게 다가서면 솔섬은 마음을 열지 않는다"고 했다. 자연을 대하는 태도가 진중해야 한다는 얘기다.

한데, 이 솔섬의 운명이 풍전등화다. 인접한 호산항과 해수욕장에 삼척 LNG 생산기지가 들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LNG 공해를 뒤집어쓰고도 여전히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할 수 있을까. 마을 주민들로부터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죽변 대숲과 봉평 신라비

울진 망양정에서 바라본 왕피천 하구.
한 동네 2개 도(道)가 있는 고포마을을 벗어나 죽변항으로 향한다. 일부 구간은 7번 국도를 타야 한다. 차는 별로 없지만 지겹다. 하늘휴게소를 거쳐 나곡 교차로→망자산→신선휴게소→부구장터를 지나면 울진원자력발전소 앞이다. 울진원전 쪽은 해안길이 막혀 있다. 우회 국도를 따라 후정 해수욕장을 지나 죽변항으로 들어간다.

죽변은 어업기지지만 드라마 '폭풍 속으로' 촬영지로 더 유명하다. 얼마전엔 TV 예능프로그램인 '1박 2일'팀도 다녀갔다. 죽변 들머리부터 촬영지 홍보판이 요란하다. 촬영지 주변의 해안언덕을 돌아보다 대숲 오솔길을 찾았다. 운치 그득한 오솔길이 죽변등대까지 이어져 있다. 동행한 박정애 시인은 "이래서 죽변(竹邊)이구나, 해안이 용머리 같네!" 한다. 주민들에게 여쭤보니 죽변의 옛 지명은 용추곶(龍湫串)으로, 용이 노닐다가 승천을 꿈꾸어 꿈을 이룬 곳이라고 한다. 꿈을 이뤘다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인근 봉평에는 사료가치가 매우 높은 신라 비석이 있다. 국보 제242호인 봉평 신라비다. 1988년 울진군 죽변면 봉평리의 한 농부가 밭갈이 중 돌덩이 하나를 찾아냈다. 조사 결과, 제작연대는 524년(법흥왕 11)께로 밝혀졌고 당시의 율령 발표와 정치제도 등이 기록돼 있었다.

울진군은 봉평비 발견 지점에 53억 원을 투입해 사적공원을 조성 중이다. 지난달 중순 도보탐사팀이 방문했을 때 공사가 마무리 단계였다. 사적공원에는 광개토대왕비, 진흥왕 척경비, 단양적성비 등 전국의 각종 비석과 비문 34기가 실물 크기의 모형으로 전시돼 좋은 역사교육장이 될 것 같았다. 동해 트레일 노정에 반드시 포함시켜야 할 곳이다.

■왕피천과 망양정

울진 평해 월송정. 박창희 기자
봉평에서 망양정까지는 약 15km다. 연호공원→유영구 미술관→울진 상하수도 사업소→울진 해수욕장을 지나 울진 엑스포공원을 한바퀴 돌아나오면 왕피천 대교다. 다리를 건너 왕피천을 따라 하구 모퉁이를 돌면 망양정이다.

망양정(望洋亭)은 조망이 시원치 않다. '바다 밖은 하늘이니 하늘 밖은 무엇인고…' 하고 송강 정철이 노래하고, 숙종 임금이 '관동제일루'라는 현판을 내렸다 하는 데도 옛 풍류가 와닿질 않는다. 망양정은 원래 기성면 망양리에 있었으나 1883년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현 망양정 자리에는 울진대종과 함께 해맞이공원이 조성돼 있다. 이곳의 진짜 볼거리는 왕피천 하구다. 동해와 왕피천의 내밀한 교섭 흔적이 강 하구 모래톱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이곳으로 연어가 찾아온다.

망양 해수욕장에서 망양휴게소 사이 920번 해안도로(약 10㎞)는 바다와 길동무 한다. 자연과 어우러져 낮게 몸을 낮춰 사는 주민들의 모습에 목이 메이기도 하지만 돌아보면 그것도 풍경이다.

평해 월송정으로 가는 길에 구산항을 들러 '대풍헌(待風軒)을 본다. 19세기 말까지 구산포(항)는 육지에서 울릉도로 가는 가장 일반적인 항로였고, 삼척의 관리들은 이곳에서 순풍을 기다려 울릉도로 떠났다고 한다. 바람을 기다릴 줄 알았던 선인들의 지혜를 엿본다.

■월송정의 달

서산에서 해가 뉘엿거릴 무렵 평해 월송정에 닿았다. 달을 생각하고 갔는데, 현판의 한자가 '越松亭'(월송정)으로 되어 있다. 안내판을 보니 '신라의 화랑들이 이곳 송림의 달을 즐기며 선유하였다 하고, 중국 월(越)나라의 소나무를 가져와 심었다는 향전(鄕傳)도 있다. 월송정(月松亭)이라고도 쓴다'고 적혀 있다.

울진문화원 신상구 사무국장은 "월(越)이냐, 월(月)이냐를 놓고 조선 중기에도 논란이 있었던 모양"이라며 "상식적으로는 '월(月)'이 좋을 것 같은데, 전승이 그러니 월(越)자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했다.

월송정에서 나와 농로와 해안도로를 끼고 용정교, 등대산을 지나면 후포다. 후포항은 꽁치, 오징어, 대게 등 동해산 모든 어족의 집산지다. 원래 지명은 '후리포'. 육지에서 그물의 양끝을 끌어당겨 고기를 잡던 '후리그물질'이 성행한 포구라고 한다. '후포'하니 떠오르는 시가 있다.

'…그렇다. 부두에 매여 늘 출렁거리던 빈 배들도/ 옷자락 풀어놓고 어서 떠나라고/ 해지고 바람 불면 더욱 적막한 눈발로 재촉하던/ 저 헝클어진 고향의 목소리를 헤아리게라도 했을 것인가?/… 흐려지는 차창 너머로 보여주는 후포/ 이제는 눈물겨운 풀꽃 몇 송이로 겹쳐 보이는'(김명인의 '후포' 부분)

바닷가에 탯줄을 묻은 사람들은 삶과 죽음의 고리를 그 바다에 이어 놓고 산다. 바다가 원초적인 감수성을 자극하는 탓이다. 떠났다 해도, 산다 해도 고향은 눈물겹다.


# 금강소나무 숲길 1단계 개통

- 옛 보부상 굽어보던 쭉쭉뻗은 금강송, 13.5㎞ 솔향 속으로

"울진에는 걷기 좋은 길이 없나요?"

"왜 없겠어요. 금강소나무 숲길이 있는 걸요."

울진군청에 물으니 돌아온 대답이다. 금강소나무 숲길! 말만 들어도 솔향기가 몸에 번지는 것 같다. 200년 넘게 산 금강송만 8만 그루가 넘는다는 한국 최대의 금강소나무 군락지. 그 울창한 보물(蔚珍)을 보고 가지 않을 수 없다. 한데, 이 길은 동해 트레일에서는 제법 벗어나 있다. 차로 20~30분 정도 내륙을 파고들어야 한다. 그럼에도 소개하는 것은 크게 보면 동해안 길의 한가닥이요, 그 길이 추구하는 생태관광, 책임 여행의 의미가 소중하기 때문이다.

금강소나무 숲길은 조선시대에는 보부상 길로, 울진 북면 두천리에서 서면 소광2리까지 13.5㎞다. 산림청에서 관리하며 국내 숲길 중 유일하게 예약탐방제로 운영되고 있다. (사)울진숲길 이규봉 사무국장은 "지난 7월 20일 개장 후 하루 탐방인원을 80명으로 제한하고 있으며 주말에는 거의 꽉 찬다"면서 "숲길 가이드가 동행, 해설도 해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참가자들이 도시락을 주문하고 민박을 하는 등 도시와 산촌이 윈윈하는 효과도 얻고 있다"고 전했다.

바닷가인 울진 흥보장에서 산골인 봉화 춘양장까지는 대략 60㎞. 열두 고개를 넘는 3박4일의 여정이다. 1차로 개통한 13.5㎞는 전체 구간 중 바릿재와 샛재, 저진치, 너불한재까지 고개 네 개를 넘는다. 봉화로 연결되는 2구간은 조성 중에 있으며, 3구간과 4구간은 통고산과 왕피리로 향한다.

금강소나무 숲길을 걷는 내내 행복했다. 고갯길을 넘을 때 다소 숨이 찼으나 대부분 흙길인데다 청정한 기운이 넘쳐 최상의 트레킹 체험이었다. 문의: 사단법인 울진숲길(ulgintrail.or.kr, 070 -7718-2999)

국제신문·(사)걷고싶은부산공동기획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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