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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모의 한국미술과 부산 <12> 유일한 생계수단 -도기에 꿈을 그리다

피란 화가들 생계 위해 도기에 그림 그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11-14 20:00:13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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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중 대한도기에서 일하던 피란 화가들이 풍속도를 그려넣은 장식용 접시들.
6·25 당시 부산은 곧 대한민국이자 하나의 도시국가였다. 대한민국 인구의 대부분이 몰려들어 생존 문제를 해결해야 했던 부산은 국제시장 안에 있는 도시이자 온 도시가 국제시장이기도 했다. 당시 부산은 슈샤인 보이와 소매치기, 걸인의 거리였고 츄잉껌과 양담배, 깡통 천지였다. 군복과 군용차가 거리를 메웠고 판잣집, 천막촌, 바라크 집들이 도시 건축을 대신했다. 질서도 가치도 문화도 모든 것이 뒤범벅된 가운데 훤소(喧騷)와 잡답(雜沓), 사위(詐僞)와 무도(無道), 아귀다툼과 아비규환이 부산의 외형이자 내부였다.

이런 상황에서 화가들이 종군화가단 외에 유일무이한 일은 부산의 동양최대 도자회사를 자랑하던 대한경질도기주식회사(이하 '대한도기')에 얹혀 도자기 접시나 화병에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다. 당시 대한도기는 부산에 피란 와 있던 화가들을 고용해 초벌구이 제품에 그림을 그리게 했다. 당시 부산에 내려온 원로작가 김은호 변관식 장우성 김학수 이규옥 황염수 그리고 통영의 전혁림은 물론 당시 서울대에 재학 중이던 김세중 서세옥 박노수 등의 청년작가들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화가가 생계를 잇기 위해 이곳에서 일했다.

대한도기는 일제침략기 전반에 경질도기 생산을 위해 당시 부산시 영도목 영선정(현 영도구 봉래동)에 설립된 일본경질도기주식회사(이하 '일경')의 후신이다. 이 회사는 1917년 6월 교토에서 도자업에 종사하던 송풍가정이 설립을 주창해 12명의 출자자로 설립됐다. 그러나 실제 설립자는 이토 히로부미의 이복처남인 카시이 겐타로였다. 이 회사는 건립 초기부터 우수 기술자를 확보하기 위해 도쿄공대 교수를 기용했을 뿐 아니라 이들을 영국 웨지우드사에 파견시켜 견문을 넓히도록 했다. 100만 원의 자본금으로 35만 평의 부지에 동양에서 3번째로 큰 회사건물을 신축, 1917년 9월 9일에 정식 인가를 받았다.

1920년대 중반 품질이 향상돼 해외시장에서 큰 호응을 얻게 되면서 사세가 급격하게 확장됐다. 광복과 함께 이 회사는 적산 재산으로 분류돼 약 4년간 적산 관리인인 노병기가 운영하였다. 이때 회사명이 대한경질도기주식회사. 이후 1950년 11월 30일 지영진(후에 자유당 3, 4대 양산지역 국회의원)이 4억5000만 환에 불하받아, 1972년 폐업 당시까지 대한도기주식회사라는 이름으로 운영했다.

광복 후부터 6·25동란 중 이 공장은 부산 동구 조선방직과 함께 당시 부산에서 가장 규모가 컸다. 1000여 명의 직공이 근무했던 터라 퇴근 시간이면 인산인해를 이룬 사람들의 모습이 장관이었다고 한다. 당시 생산품으로는 양식기와 식당식기 그리고 장식용 접시와 타일 및 변기 등 도기가 주류를 이루었다. 따라서 장식용 접시는 그렇게 비중 있는 품목이 아니었지만 경영진의 뜻에 따라 작가들을 지원할 요량으로 장식용 접시와 화병에 그림 그리는 일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로써는 미군을 비롯한 부산지역의 군인과 외국인들에게 중요한 기념품이었다. 특히 소정 변관식은 관립 조선총독부 공업전습소 도기과에서 도화를 공부한 탓에 다른 작가들에 비해 숙련된 솜씨를 발휘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소정의 천거로 이당 김은호도 숙직실로 쓰던 온돌방을 내주었다. 이러한 대한도기시절을 이규옥은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처음에는 동구 초량 뒷골목 하수관 속에서 자기도 하고 별별 고생을 다했지요. 우연히 이당 선생이 부산에 계신다는 소문을 듣고 수소문 끝에 만났어요. 동구 수정동에 사셨는데 그 집도 대한도기 지영진 사장이 마련해 준 것이라고 하더군요. 이당 선생의 주선으로 대한도기에 나가게 됐죠. 도기에 주로 풍속도를 그렸는데 한 장을 그리면 얼마씩 받았어요. 빨리 그리는 사람은 수입도 그만큼 많았지요. 나중에는 화가가 너무 많아 추려내기도 했어요."

대한도기에서 기거할 수 있다는 것은 당시 화가들로선 최상의 생활이었다. 이외에는 미군들의 초상화를 그리거나 미군부대에서 페인트 칠하는 일, 미군식당에서 허드렛일 하기, '미 21 항만 사령부'내의 부산부두에서 군수물자를 하역하는 것 등이 고작이었다.

국민대 초빙교수·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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