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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언 교수의 `건축, 시로 쓰다` <30> 에필로그- 살아 숨쉬는 건축을 지향한다

고정화의 욕망을 버리는 것이 새로운 건축의 시작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02-15 20:32:43
  •  |   본지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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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습관화된 건축, 규칙에 의존하고 타성화되면서 매너리즘에 빠져
- 예술가 마르셀 뒤샹, 변기를 떼와 전시…'낯설게 하기'로 오래된 새로움 얻어
- 반년 넘게 이어온 연재 속 건축물, 이 같은 원칙·생각 관통되며 해석돼
- 부산의 건축을 '무엇' 규정하는 순간 다른 것 되어 있어…정답은 있을 수 없어

황지우는 그의 시 '아이들은 먼 것을 보기를 좋아한다'에서 습관적인 행위는 인간을 기계처럼 만듦을 암시한다. 변화없는 반복적 행위는 인간을 습관화시킨다. 이 시는 TV를 쳐다보고만 있는 부처를 한 쪽에 두고 다른 한 쪽에는 TV를 둔 고 백남준 작품을 연상시킨다. 이 시에서도 TV 앞에서 어린 아이들이 몰두해있다. '그렇게 텔레비전을 못 보게 해도 / 그래서 스위치 꼭지를 빼어 감춰버렸는데도 / 아이들은 어느새 / 앉아서/ TV를 禪하고 있다. TELEVISION아이란 열혈신자'(시 1)

이 작품은 여러 가지 면을 상징한다. 세인들의 욕망에 의해 만들어진 우상, 물질문명에 장악되는 종교, 기술에 의하여 정교해지는 종교, 득도와 동심 등등. 종교가 이루 말할 수 없는 면을 지니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러한 상징들을 가로지르고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여러 가지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은 습관화된 종교에 대한 경계심과 종교를 도구로 대하는 기복신앙의 우려성 등이다. 습관화된 종교처럼 습관화된 건축도 규칙과 법칙에 의존한다. 그렇게 타성화한다. 일종의 매너리즘이다. 기복신앙이 종교를 대하는 것처럼 건축을 유용성의 측면에서 도구화시키는, 즉 기능화 및 기술화시키는 건축 역시 일종의 실용주의이다.

■낯설게 하기가 필요한 이유

부산 부산진구를 중심으로 한 대표적 도심지 일대의 야경. 수많은 건축물들이 산천과 조화를 이루도록 더 깊은 안목과 노력이 필요하다. 건축사진가 조명환 씨 제공
습관화된 건축이든 도구화된 건축이든 그 자체의 주위에 이상야릇한 침묵이 존재한다. 이 침묵은 뭘까? 습관적 맥락에서 보면 연필은 연필일 뿐이다. 습관에서 벗어나면 그것이 회초리, 흉기 등으로 작동한다. 습관적 맥락이 고정된 방식의 삶의 얼개로 작동한다면 습관화된 것은 그것 자체로 보이지 않는다.

맥락이 고정됨으로써 살아있는 부분으로 인식되지 못 한다. 맥락을 낯설게 하기가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연유에서이다. 예술가 마르셀 뒤샹이 20세기 초 변기를 화장실에서 떼어와 전시장에 갖다놓고 전시해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던 사건은 유명하다. 이는 '낯설게 하기'를 행함으로써 습관적 사물은 다시 낯설게 되고 자유롭게 새로운 만남을 통해 삶의 얼개를 재구축하면서 친밀함을 얻게 한다. 여기서 얻는 새로움이 오래된 새로움이다.

낯설게 하기는 사물과의 습관적 만남에서 벗어나, 고정화하려는 욕망을 버리고 새로운 만남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나중에는 결국 다시 친밀하게 되기를 거쳐 습관적 만남으로 되돌아 가더라도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차단적 만남→ 새로운 만남→ 친밀한 만남→ 습관적 만남→차단적 만남→… 순으로 순환적으로 만남이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차단적 만남이란 삶의 특정한 얼개 중 어느 한 연결고리가 봉쇄될 경우 삶의 얼개가 전혀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다. 즉 부분이 폐쇄될 경우, 삶의 얼개의 일부가 달라질 경우, 습관적인 야릇한 침묵은 깨어진다. 야릇한 침묵이 연극의 막이 바뀌는 것처럼 깨진다. 여기서 새로운 만남, 즉 재배열이 이루어진다.

■정현종과 황동규의 시

부산 해운대구 우동 부산시립미술관
차단적 만남이 형성되면, 새로운 만남을 통해 친밀한 만남이 이루어진다. 정현종은 그의 시, '맑은 날'을 보자. '날빛이 맑고 맑아 / 이마가 구름에 닿는다.// 바람결은 온몸에 / 무한을 살랑댄다 // 기쁨은 공기 중에 / 희망은 날빛 속에'(시 2)

맑은 날, 날빛, 이마, 구름, 바람결, 온몸, 기쁨, 공기 등이 처음에는 차단의 만남과 동시에 일상적, 즉 습관적 침묵을 벗어난다. 습관적 침묵을 깬다. 습관적 침묵 후에 각 연은 새로운 만남을 맺는다. 이 새로운 침묵과의 만남을 통해 삶은 배치를 새롭게 이룬다. 예를 들면 '이마가 구름에 닿는다'는 표현은 습관적 언어 혹은 일상어에서는 말이 되지 않는다. 이마와 구름은 '새로운 만남'이며 친밀한 만남으로 넘어간다. 결국 시 1과 시 2에서 습관적, 새로운, 친밀한 만남을 동시에 함으로써 우리는 오래된 새로움을 발견하게 된다.

황동규의 '허물'을 자세히 들여다 본다. '매미 허물 하나 / 터진 껍질처럼 나무에 붙어있다. / 여름 신록 싱그런 혀들 사방에서 날아와 / 몸 터진 껍질처럼 나무에 붙어 있다 / 여름 신록 싱그런 혀들 사방에서 날아와 / 몸 못 견디게 간질일 때 / 누군들 터지고 싶지 않았을까?/ 허물 벗는 꿈꾸지 않았을까/ 허물 벗기 매미의 몸/ 어떤 혀, 어떤 살아 있다는 간절한 느낌이 못 견디게 간질였을까?/ 이윽고 몸 안과 밖 가르던 막 찢어지고 / 드디어 허공 속으로 탈각(脫却)!/ 간지럼을 제대로 탔는가는 / 집이나 직장 혹은 주점 옷걸이에 어디엔가 / 걸려있는 제 허물 있는가 살펴보면 알 수 있으리./ 한 차례 온몸으로/ 대허(大虛)하고 소통했다는 감각이.'(시 3)

시 2, 시 3은 서로 다른 것임에도 일상적 침묵에서 새로운 침묵으로 향하는 지향 면에서는 똑같다. 시 2에서는 드러난 사물들의 상호관입에 의해 일상적 침묵과는 또 다른 새로운 침묵이 올라온다. 시 3은 안과 밖이 상호관입하여 역시 일상과는 다른 새로운 침묵을 드러낸다. 시 3은 오로지 매미가 허물을 벗을 때 일상과와의 단절을 뚫고, 새것과 옛것의 만남을 이룬다. 침묵을 통해 사물이 만나 옛 모습에서 새 모습으로 바뀐다.

■부산의 사례들

지난해 6월부터 매주 연재한 이 글에는 이 같은 원칙과 생각이 관통한다. 몇가지만 예를 들어보겠다. 요산생가와 요산문학관(주변과 소통하려는 습관적 관계 맺음과 동시에 낯섦도 가져옴. 새로운 침묵은 가져오지 않으나 새로운 모습을 가져옴), 부산 중구 청소년문화의 집(겨울 숲과 같은 비움을 지향), 부산글로벌빌리지(영어의 낯섦으로 인해 분리된 공간), 대연동 발도로프 사과나무학교(일상과 비일상을 가로지르는 공간), 금정세무서(습관적인 것과의 작별·생생함), 동서대운동장(습관적인 것 및 채움에 비움을 부가시킴), 동남권원자력의학원(기존 해송숲이라는 침묵에다 건물을 둘러쌈), 한국해양대 국제교류협력관(공허와 풍경이 한 몸), 부산대 인문관 (건물에다 침묵을 붙임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노림), 서면 플래닛빌딩(졸박미의 침묵이 기하학적 건축물과 결합), 수영강변 크리에이티브센터(안과 밖의 침묵에 대한 그리움), 태극도마을(침묵 속의 반복의 광채), 유엔묘지 정문(전통으로부터 솟아나온 새것), 디오센텀사옥(누드엘리베이터와 중정의 이미지 조각들 향연, 이미지 조각의 모음), 센텀시티(욕망의 시공간들로 변한 침묵 )….

적어도 필자가 추측하기로는 일상적 침묵이 무너지면서 바로 새것에 동반되는 새로운 침묵이 출현한다. 옛것이 배경이라면 새것은 전경이리라. 전경은 새로운 침묵을 수반한다. 예를 들어 일상과 비일상이 서로 교차되면서 배경과 그림이 교차로 온다. 일상적 침묵에서 새로운 침묵, 새로운 침묵에서 일상적 침묵으로, 건축물의 배후인 일상적 침묵의 막을 접어 올리면 새로운 침묵이 드러난다.

■다양함 속에 깃든 '공감' 찾아야

건축물에서 일어나는 일상적 침묵을 연극의 막처럼 들어 올릴 때 뒤에 있는 새로운 침묵이 드러난다. 새로운 침묵의 종류에는 전통으로서 침묵, 일상의 비일상적 침묵, 오래된 새로움의 침묵, 공유성과 유동성과 그것의 배경으로서 침묵, 반복 속에 숨어 있는 침묵, 기하학 뒤에 졸박미로서 침묵, 아트리움으로서 침묵 등이 있다

부산의 건축에 대한 정답은 결코 고정될 수 없다. 왜냐면 부산의 건축은 '무엇'라고 규정하는 순간에 이미 다른 것이 되어있다. 이 지역의 건축은 변화와 새로움 속에서 침묵의 지속이 이루어진다. 침묵의 지속은 아우라로부터 온다. 건축물의 변화와 새로움은 아우라의 새로운 변형이다. 아우라의 질(質)과 건축물의 질(質)을 합하여 부산성은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무수한 종류의 침묵들이 존재할 수 있고 그림도 무수하게 존재할 수 있다. 개인, 지역, 민족의 주관적 취향마다 느끼는 침묵도, 침묵의 색깔도 다르다. 침묵으로부터 나오는 건축물은 어린이들이 그리는 그림처럼 다양하다. 부산의 건축은 부산성 내에서 이렇게 다양하다.

건축을 어떻게 일반인에게 쉽게 전달할 것이냐 하는 것은 연재 내내 필자를 괴롭혔다. 이슈가 있을 법한, 감흥이 오는 건축을 가능하면 골랐다. 사진작가 조명환 씨와 지인들의 헌신에 크나큰 도움을 받았음을 밝힌다. -끝-

부산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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