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글래스 피시 치어들이 얕은 수심의 산호초 위를 소용돌이치며 지나고 있다. 이들은 이곳에서 성장한 후 보다 넓은 바다로 향할 것이다. |
- 하나의 거대한 개체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 덩치가 작은 물고기일수록 다같이 뭉쳐다니는 습성
- 무리 바깥은 끊임없이 안으로 연쇄적으로 전체가 움직이게
- 스스로를 지키려는 이기성이 모두를 안전하게 만드는 역설
냉혹한 생존의 각축장 바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는 포식자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방어 수단을 본능적으로 익혀왔다. 오랜 진화과정을 거친 이들은 몸의 형태, 색깔, 무늬 등을 변화시켜 포식자의 눈을 속이기도 하고 날카로운 이빨이나 독가시로 찌르는 등의 적극적인 방식으로 포식자에게 맞서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방어수단은 선택받은 종만이 누리는 혜택이다. 별다른 방어수단을 가지지 못한 종들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들이 오랜 시행착오 끝에 찾은 생존법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는 평범함이었다.
| |  |
| 무리를 이룬 어류는 수천 또는 수만 마리가 한데 엉겨있어 마치 하나의 큰 생물처럼 보인다. |
바다에는 2,000종이 넘는 어류들이 무리를 이루며 살아간다. 이들 중에는 태어나서 평생 무리를 이룬 채 사는 종이 있는가 하면 흩어져 살다가 산란기가 되면 모여드는 종도 있다. 무리를 이루는 어류들은 같은 시기에 태어나기에 비슷한 크기로 자라고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평행하게 움직인다. 이들의 방향전환이나 움직임은 일사불란하여 마치 거대한 하나의 개체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무리를 이루는 어류들은 안전을 위해 보다 크게 뭉치려고 한다. 무리를 이루어 다니기에 포식자에게 발견되기 쉽지만 무리를 이루는 것이 포식자의 공격을 막아내는데 유리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많은 바다동물들의 먹잇감이 되는 작은 어류인 정어리나 멸치의 경우를 보자. 수천 또는 수만 마리가 한데 엉겨 다니는 이들은 마치 하나의 큰 생물처럼 보인다. 이들의 움직임은 율동적인데다 규칙적이다. 적의 공격을 받으면 순간적으로 흩어졌다가 곧 다시 모여드는데 개체들은 포식자의 출현을 경계하는 파수꾼 역할을 한다.
| |  |
| 포식성 어류가 무리를 이룬 치어를 노리고 있다. |
무리를 이룬 물고기 떼는 수많은 눈을 가진 것과 마찬가지여서 어느 방향에서 포식자가 접근하든 누군가에게는 발각되고 만다. 포식자를 발견한 개체는 몸을 숨기기 위해 안전한 무리 가운데로 파고 들것이고 이를 눈치챈 주위 물고기들의 몸 숨기기 동작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면서 무리 전체는 거대한 움직임을 얻게 된다. 거대한 움직임은 포식자에게 위압감을 줄 수 있다. 대부분의 포식자는 자기보다 덩치가 큰 대상은 공격하지 않는다. 포식자가 거대한 덩치의 실체가 작은 멸치나 정어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채고 공격을 시도한다 해도 폭발하듯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개체 중에서 공격목표를 정하기는 힘들 것이다. 포식자는 혼자 떨어져 있는 한 마리는 집중하여 쫓아가 잡을 수 있지만 한꺼번에 흩어지는 무리 중에서 한 마리에 집중하기는 어렵다. 또한 포식자에게 잡아먹히는 확률을 줄일 수 있다. 넓은 바다에서 홀로 헤엄치고 다니면 크고 빠른 포식자에게 쉽게 잡히지만 무리 속에 있으면 잡힐 확률이 낮아진다. 또 포식자가 한 번에 잡아먹을 수 있는 먹이의 수도 한정되기 때문에 무리를 이루는 개체의 수가 많을수록 잡아먹힐 확률은 더 줄어든다.
| |  |
| 매가오리는 사냥을 위해 무리를 이루어 다닌다. |
무리를 이룬 물고기들이 흩어지지 않고 하나로 뭉치는 것을 두고 영국의 생물학자 윌리엄 해밀턴은 그의 논문 <이기적인 무리의 기하학>을 통해 물고기의 이기적 행동으로 설명하고 있다. 즉, 무리 전체에서 가장 위험에 노출된 바깥쪽에 위치한 물고기들은 다소 안전한 지역인 무리 안쪽으로 파고들려 하는데 이러한 개체들의 이기적인 행동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면서 무리는 밀집한 집단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무리를 이루는 것은 위기탈출 뿐 아니라 포식행동에도 유리하다. 참치, 전갱이, 바라쿠다 등의 어류는 무리를 이루어 먹이를 찾아다니다가 작은 물고기 무리를 발견하면 포위망을 좁혀가며 바깥쪽의 물고기부터 잡아먹는다. 이외에도 무리를 이루면 번식에도 유리하다. 어류는 물속에서 알을 낳아 체외 수정하므로 체내 수정하는 다른 고등 척추동물에 비하여 수정될 확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 무리 전체가 같은 시기에 알을 낳고 정액을 뿌리면 수정확률을 높일 수 있다. 또한 앞서가는 동료가 물을 가르며 만들어주는 추진력에 몸을 맡기면 작은 힘으로도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점, 동료의 몸짓을 통해 살아가는 방식을 배울 수 있다는 점도 물고기들이 무리를 이루어 다니는 이유가 된다.
그러나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포식자 입장에서 볼 때 무리를 이룬 어류들은 엄청난 먹이들이 한곳에 모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구 상에서 가장 강력한 포식자인 인류는 어군탐지기라는 첨단장비를 가지고 무리를 이룬 어류들을 쫓는다. 어군탐지기를 이용해서 음파를 쏘면 물고기에 맞고 반사된 음파가 모니터 상에 물고기의 규모와 정확한 위치를 표시해준다. 어군탐지기의 성능이 발달할수록 무리를 이루는 어류는 좋은 어획대상이 되어 치명적인 단계까지 남획되고 만다. 포식자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무리를 이루게 된 어류들은 새로운 방어수단을 찾아내지 못하거나 인류 스스로 남획을 자제하지 못하면 멸종을 맞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다윈(C. Darwin)은 진화론의 근간이 되는 자연선택론을 통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개체는 멸종하게 될 것이라 역설하고 있다.
공동기획 : 국제신문·한국해양대학교·영남씨그랜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