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편지를 오거돈 시장이 읽긴 했을까요?” 얼마 전 회사 선배를 만난 자리에서 물었다. 올봄 육아휴직으로 ‘육아빠’가 된 나는 이 육아뒷담을 빌어 지난 6월 ‘오거돈 시장님, 다 같이 키우자면서요?’라는 제목의 편지를 썼다. 부산시가 내놓은 육아종합대책 ‘부산 아이 다(多)가치 키움’이 현장에서 외면받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부산 소재 어떤 어린이집에든 아이를 오후 7시30분까지 맡길 수 있게 하겠다는 야심만만한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이 정책에 기대했다가 크게 실망한 부모의 심정을 되도록 솔직하게 편지에 담았다.
“안 읽었을 리가 없다.” 내 질문에 가타부타 설명 없이 선배가 단언했다. 그런데, 정말 이 편지가 닿긴 했던 모양이다. 지난주에 답장이 왔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아이의 가방에서 가정통신문이 나왔다. 통신문에는 원하는 부모만 있다면 시내 어떤 어린이집(직장·협동조합 등 일부 제외)이든 오후 7시30분까지 운영되며, 비용은 시가 책임진다는 내용의 ‘부산 아이 다 가치 키움’의 정책 내용이 새삼 안내됐다.
눈 여겨 본 건 통신문 끄트머리의 단서였다. ‘종일반 이용 관련 불편사항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을 달라’며 관련 웹페이지 주소와 연락처가 함께 실렸다. 저녁 보육을 거부하는 어린이집이 있는지, 그렇다면 뭐가 문제인지 시가 보다 적극적인 감시역을 자처한 셈이다.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일단 고마웠다. “정책을 세우고 돈을 댈 테니 알아서 맡기라”던 데서 부모들 곁으로 한 발 다가선 조처인 건 분명하다. 앞으로 이 약속이 지켜지면 퇴근 늦은 부모들이 보육 시간만을 기준으로 어린이집을 고르고, 그러면서도 부모와 아이 모두 눈칫밥을 먹는 일은 면할 수 있다. 아이 맡길 곳 없는 부모들에게 이건 너무나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따지고 보니 겨우 제자리로 돌아왔을 뿐이다. 부산시가 육아종합대책을 발표한 게 작년 10월이다. 이 정책 안에 ‘오후 7시30분까지 의무 보육’이라는 약속은 기왕에 들어 있었다. 본래 내건 약속이 현장 사정에 맞지 않는다고 엎어지는 듯하다가, 다시 제대로 지켜보겠다고 다잡는 데 1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궁금한 건 ‘어떻게’다. 부산시의 말바꾸기 문제가 처음 제기(국제신문 지난 6월 17일 자 8면 등 보도)됐을 때 비용, 교사 수급 등이 어려움으로 꼽혔다. 시는 새삼 부모들에게 공문을 재발송하며 ‘부산 아이 다 가치 키움’의 약속이 지켜질 거라고 강조했지만, 2개월 만에 비용과 교사 수급 문제가 온전히 해결됐을지 의문은 남는다.
중요한 건 시가 파기되는 듯 하던 약속을 고쳐 잡고 시민들에게 알렸다는 점이다. 어린 아이를 둔 부모들은 미심쩍으나마 이 정책에 다시 기대를 건다. 이 약속이 다시 깨지는 날, 시정에 대한 믿음과 기대도 함께 산산조각 날 거다. 김민주 기자 min87@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