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넘어갔다고? 그럼 호구 되는 거야. 애들 챙기기 바쁜데, 부모가 좋게 넘어가면 쌩깔 수밖에 없으니까.”
얼마 전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다쳐 왔다. 얼굴 왼편 광대뼈 부근에 붉은 두 이(二) 자가 선명하게 새겨졌다. 깨물린 상처였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어린이집 보내면 아프고 다치는 거 다반사야.” 육아 선배들로부터 여러 차례 들었던 조언이지만, 아이가 상처가 나서 돌아온 건 처음이었다. 그것도 얼굴을 물렸다니. 걷잡을 수 없이 화가 났다.
“친구가 물어서 조금 상처가 났습니다. 양치하러 가는 시간에 먼저 문을 나서겠다고 실랑이 벌이다가 물렸답니다. 약은 발라 놓았는데 아이가 좀 울었어요. 죄송합니다.” 하원 전 담임 선생님한테서 날아든 경위 설명이다. 깨물린 부위 상처 사진도 같이 왔었다. 실제로 본 상처는 사진으로 본 것보다 더 깊고 선명했다.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머릿속에 어린이집 구조를 그려 헤아리는 동안 온갖 가설(망상)이 떠올랐다. 다툼은 이를 닦던 중에 일어났다고 했다. 아들 경우를 토대로 말하자면 이 또래 아이들이 대개 가장 앙칼지게 저항하고 짜증을 내는 게 양치할 때다. 혹 아이 손에 칫솔을 쥐여줬다면, 칫솔을 입에 물고 엎어질 수도 있으니 유념해서 보살펴야 한다. 그저 때리거나 꼬집은 것도 아니고, 둘이 다투다가 한 아이가 다른 아이 얼굴에 입을 갖다대고 깨물 때까지 몰랐다면 보살핌이 소홀했을 수 있겠다. 선생님들은 뭘하고 있었을까? 점심을 먹은 뒤에 이를 닦여 낮잠을 재운다. 선생님들이 ‘양치조’와 ‘이부자리조’로 나뉘어 작업한 탓에 눈길이 소홀해진 사이 우리 애가 엉뚱한 상처를 입은 건 아닐까? 아 젠장, CCTV를 봐야겠다 나는.
하지만 나는 그걸 요구하지 않았다. “애들 섞여서 놀다 보면 그럴 수도 있죠 뭐” 정도로 정리하고 넘어갔다.
이게 얼빠진 짓이었다는 걸 일깨워준 건 현직 보육교사로 일하는 지인이었다. 종일 고함을 치면서 쏘다니는 애들이 모인 곳이 어린이집이다. 교사들의 신경은 분산될 수밖에 없다. 이 ‘악다구니’ 속에 아이들을 보살피는 교사들 사이엔 말로 설명하기 힘든 우선순위가 어쩔 수 없이 생겨난다고 했다. 어린이집의 지상과제는 ‘무사고’다. 무사고에는 두 종류가 있다. 실제 사고가 나지 않는 것. 그리고 사고가 났지만 일이 커지지 않고 무사히 넘어가는 것. 어린이집 입장에서 내 대처는 후자에 해당하는 ‘무사고’를 보증해준 것이고, 요란스런 부모가 되고 싶지 않았던 바람과 달리 우리 애는 이 ‘우선순위’에서 꽤 하위권을 맴돌게 될 거란 게 지인 분석이다.
하…. 그럼 어떡했어야 하나. ‘호구 부모’를 자처한 내게 그가 전해준 대처 요령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일단 흥분하면 안 된다. 얼굴처럼 예민한 곳을 다쳤거나 상처가 심하다면 반드시 CCTV를 보여달라고 해라. 어린이집 입장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부모의 요구다. 잘 안 보여주려고 할 수 있다. 다시 강조하는데 흥분하지 마라. 하지만 아이가 다친 건 가장 큰 명분이고 중요 사고다. 경위를 반드시 알아야겠다는 의지는 전달해줘라.
다치게 한 아이의 부모가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지도 채근해서 물어라. 다친 쪽에서 별 문제 삼지 않으면, 어린이집은 다치게 한 아이 부모에게 굳이 상황을 소상히 설명해줄 필요가 없다. ‘무사고’는 중요하니까. 이 질문에 선생님이 얼버무린다면, 그건 때린 쪽 애 집에 상황을 정확히 알려주지 않았단 뜻으로 봐도 좋다. 때린 아이를 탓하거나 낮잡아 이르지 말되, 그 아이에 의해서 우리 애가 어디를 어떻게 다쳤는지 정확히 전달되길 바란다는 뜻을 전해라. 입장을 바꿔 생각해봐라. 얼굴을 깨물어서 상처가 났을 정도라면, 상식 있는 집에선 사과의 말과 함께 연고 하나쯤 보내줄 거다. 너 그거 못 받았지? 그 집에선 아마 모를 거야.
뼈아픈 것은, 내 호구 대처 이후에 아이가 두 번이나 더 다쳐 돌아왔다는 점이다. 한 번은 이마, 한 번은 왼쪽 팔뚝이었다. 꼬집힌 것이 분명한 왼쪽 팔뚝의 경우엔 담임 선생님이 다친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뒤집어엎을 것인가. 여전히 고민이 깊다. 김민주 기자 min87@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