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돌이와 포순이. 1999년 만들어진 경찰의 마스코트다. 이 중 포순이가 치마를 벗는다. 최근 몇 년간 급변한 젠더(성별) 감수성에 발맞추겠다며 경찰이 내놓은 개선안이다. 포순이는 앞으로 치마 대신 바지를 입은 모습으로 시민 앞에 선다. 이 내용은 대부분 매체가 기사로 다뤘다. 흥미롭다는 논조였고 독자 반응도 비슷했다.
이걸 보면서 때가 왔다고 느꼈다. 사람들은 이제 현실뿐 아니라 가상의 성차별도 문제로 인식한다. 대단히 보수적인 경찰 조직이 마스코트 성차별 문제에 알아서 개선책까지 내놓는 시절이다. 그렇다면 이런 이야기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러니까 ‘국민 만화’ 뽀로로가 너무 성차별적이어서 불편하단 썰을 풀어도 망상꾼 취급은 면할 수 있을 분위기인 것 같다.
뽀로로는 국민 만화다.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캐릭터다. 친구들이랑 뽀롱뽀롱숲에 산다. 뽀로로가 태어난 2003년 이후 육아를 경험한 부모는 대개 뽀로로 친구들의 이름도 꿴다. ‘개구쟁이 뽀로로. 장난꾸러기 크롱’이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엔딩곡을 기억하는 이들도 많다. ‘우람한 포비. 조그만 해리. 영리한 에디. 우직한 로디. 수줍은 루피. 발랄한 패티’. 이렇게 이어지는 노래다.
아들과 함께 이 노래를 처음 들을 때부터 위화감을 느꼈다. 주요 인물 중 루피랑 패티가 여캐다. 수줍음과 발랄함은 통상 여성에게 기대되는 성격이다. 유서 깊은 기대는 일종의 강요다. 그런데 이 여캐들은 그런 성격이랑 거리가 멀다. 루피는 확고한 철학과 강한 웅변으로 작중 다른 인물의 행동을 교정할 수 있는 유일한 캐릭터다. 충고를 무시하고 설산에 올랐던 친구들이 폭설에 고립된다. 루피는 울거나 기도하는 대신 중장비를 몰고 산에 올라 애들을 구한다. 수줍은 기색 없이.
짐작이 맞다면 패티(Petty)는 이름부터 딱하게 설정된 인물이다. 예쁘다(Pretty)는 데서 한 글자(r)가 빠진 게 이름이다. 사전적으로 petty는 ‘하찮다’는 뜻을 가진다. 재주 많고 운동에도 능한 패티의 스펙 중에 항상 ‘하찮은’ 것으로 묘사되는 건 이 아이의 요리 실력이다. 요리도 유서 깊은 강요의 목록에 수록돼있다. 패티는 자기 자신이 아니라 (남자)친구들이 맛있게 먹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요리를 연마한다. 그리고 늘 실패해 실망한다. 하지만 모든 남캐들은 패티를 좋아한다는 설정이다. 예뻐서다. 뽀로로를 포함한 6명이 “패티는 사실 날 좋아해”라고 주장하며 다투는 에피소드는 애들 만화라기보다 희비극에 가깝다.
내가 아이들 만화를 놓고 너무 죽자고 덤비고 있나? 모든 문학은 수용자의 사고 형성에 영향을 끼친다. 탐독한 작품일수록 그 영향은 짙게 드리울 것이다. 아들을 포함한 아이들이 뽀로로에 열광하는 걸 귀엽게만 여기기 어려운 개인적인 사유다. 이 만화의 거의 모든 에피소드에서 주동적 역할은 남성(뽀로로·에디 투톱)에게, 보조역은 여성에게 배당된다. 왕자가 된 남캐들은 늘 ‘예쁜’ 패티 공주를 향한다. 결국 저 강고한 루피조차 ‘늘씬하고 키가 큰, 챙 넓은 버킷햇이 잘 어울리며 말 없는 웃음으로 남자를 호리는’ 미래를 꿈꾸곤 한다. 이런 구도의 작품을 몇 번이나 반복학습하는 아이들이 어떤 젠더 감수성을 체득하게 될지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초면의 상대에게 예쁘다거나 몸매가 좋다고 말하지 않으면 좋겠다. 상대에 따라 이 말은 면전에다 추하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은 실례가 될 수 있으니까. 여기다가 쓸 수 있는 말인진 모르겠는데 꽃으로도 때리지 않는 게 좋다고 한다. 분명 더 많은 사람이 그걸 구별하고 폭력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거야.” 21개월 된 아들이 내 말을 이해할 수 있다면 해주고픈 두서없는 말이다. 아, 좀 더 괜찮은 국민 만화도 생겨나길 바란다. 김민주 기자 min87@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