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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준 편집국장 신문은 지식의 숲<19> 김진숙과 소금꽃나무에 핀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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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은 우리 사회에 많은 상징성을 지닌 인물임이 틀림없습니다. 1981년 대한조선공사(현 HJ중공업, 옛 한진중공업)에 입사한 우리나라 최초의 조선소 여성 용접공, 1986년 노조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해직, 2011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반발해 벌인 309일간 크레인 농성 및 이를 지지해 전국적으로 결성된 ‘희망버스’, 2022년 2월 25일 37년 만에 명예 복직 및 퇴직….

이런 김 지도위원의 상징성을 반영하듯 국제신문을 포함한 전국의 언론은 일제히 그의 복직과 퇴직 기사를 크게 다뤘습니다. 국제신문은 ▷2월 24일 자 2면 ‘37년 만에 복직…김진숙 명예로운 퇴직’ ▷25일 온라인판 ‘37년 만의 복직 김진숙 “더 이상 죽지 않는 미래로 거침없이 가십시오”’(https://n.news.naver.com/article/658/0000003055) ▷26일 온라인판 ‘소금꽃 김진숙의 마지막 소원 “누구도 울게 하지 마라”’(https://n.news.naver.com/article/658/0000003074)를 보도했습니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이 지난 25일 부산 영도구 HJ중공업(옛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서 열린 해직노동자 김진숙 명예 복직 및 퇴직 행사에서 울먹이며 발언하고 있다. 김 지도위원 뒤 현수막에 있는 젊었을 때 사진은 37년 세월의 흐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원준 기자 windstorm@kookje.co.kr
국제신문 2월 24일 자 2면 보도
●땀 속에 피어나는 소금꽃

김진숙 지도위원에게 따라다니는 수식어 중 대표적인 게 ‘소금꽃’, ‘소금꽃나무’입니다. 김 지도위원이 2007년 쓴 『소금꽃나무』(후마니타스)를 보면 구체적으로 설명돼 있습니다.

“한진중공업 다닐 때, 아침 조회 시간에 나래비를 쭉 서 있으면 아저씨들 등짝에 하나같이 허연 소금꽃이 피어 있고 그렇게 서 있는 그들이 소금꽃나무 같곤 했습니다. 그게 참 서러웠습니다. 내 뒤에 서 있는 누군가는 내 등짝에 피어난 소금꽃을 또 그렇게 보고 있었겠지요. 소금꽃을 피워 내는 나무들. 황금이 주렁주렁 열리는 나무들. 그러나 그 나무들은 단 한 개의 황금도 차지할 수 없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는 아시겠지요?” (책 앞표지)

소금꽃나무
‘소금꽃’ 김진숙의 고민은 이 책의 ‘책을 내며’에 담겨 있습니다.

“난 아직도 세상을 바꾸고 싶다. 인간이 돈에 왕따당하는 이 지리멸렬의 세상은 바뀌어야 한다. 이 땅 이 강산 공장마다, 사무실마다, 울울창창 흐드러지게 소금꽃을 피우며 서 있는 나무들. 그 나무들이 500년 전 남해 바다를 주름잡던 거북선을 만들었다. 배를 만들고, 차를 만들고, 길을 만들고, 집을 만들고, 기름을 만들고, 전기를 만들고, 전화를 만들고, ‘포크레인’을 만들고, TV를 만들고, 컴퓨터를 만들고, 빵을 만들고, 밥을 만들고, 옷을 만들고, 신발을 만들고, 김을 만들고, 우유를 만들고, 시계를 만들고, 종이를 만들고, 악기를 만들고, 술을 만들고, 술 깨는 약을 만들고….”

책의 곳곳에 경쟁과 효율성을 앞세운 신자유주의에 의해 소외되는 노동과 땀의 소중한 가치가 구체적인 현장 경험을 통해 녹아 있습니다.

“‘조선강국’을 위해 한 해 수십 명의 노동자가 골반 압착으로, 두부 협착으로 죽어 가는 나라. ‘물류강국’을 위해 수십 명의 노동자가 길바닥에 사자밥을 깔아야 하는 나라. 섬유 도시 대구, 전자 도시 구미, 자동차 도시 울산, 화학 도시 여수, 온산. 그 허황한 이름들을 위해 노동자의 목숨이 바쳐지고 그들의 뼈가 쌓여 갈수록 자본의 아성이 점점 높아지는 나라. 쉰이 넘은 농민은 남의 나라에 가서 제 심장에 칼을 꽂고 마지막 유언마저 영어로 남겨야 하는, 참으로 세계화된 나라. 전 자본주의가 정말 싫습니다. 이제 정말 소름 끼치게 무섭습니다. 1970년에 죽은 전태일의 유서와 세기를 건너뛴 2003년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두산중공업 배달호의 유서와 지역을 건너뛴 한진중공업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민주당사에서 농성하던 조수원과 크레인 위에서 농성하던 김주익이 죽은 방식이 같은 나라.”(122, 123쪽)

그러면서 김진숙은 “세기를 넘어, 지역을 넘어, 국경을 넘어, 업종을 넘어, 자자손손 대물림하는 자본의 연대는 이렇게 강고한데 우리는 얼마나 연대하고 있습니까?”라고 반문합니다. “비정규직을, 장애인을, 농민을, 여성을, 그들을 외면한 채 우린 자본을 이길 수 없다”고 노동자의 연대를 강조합니다. “저들이 옳아서 이기는 게 아니라 우리가 연대하지 않으므로 깨진다”고.

●노동 종말의 시대에 노동이 소중한 미래

김 지도위원은 지난 25일 부산 영도구 HJ중공업 영도조선소에서 열린 명예 복직 및 퇴임식에서 “탄압과 분열의 상징이었던 이 한진중공업 작업복은 제가 입고 가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미래로 가십시오. 더 이상 울지 않고 더 이상 죽지 않는, 그리고 더 이상 갈라서지 않는 그 미래로 거침없이 당당하게 가십시오”라고 밝혔습니다. 스물여섯 노조 집행부의 어용성을 폭로하는 전단을 배포했다가 대공분실에 끌려가 ‘빨갱이’로 몰려 고문당하고 ‘무단결근’을 이유로 해고당한 뒤 37년 만에 복직한 것은 때늦은 감이 있습니다.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대한민국으로서도 부끄러운 현실입니다. 노동자의 땀과 희생을 발판으로 경제적 번영을 이뤘지만 그들이 흘린 땀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명예 복직 및 퇴직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노동 존중 사회로 한 걸음 성숙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로봇과 AI(인공지능)가 사람이 하던 일을 서서히 대체하면서 인간의 존재와 노동의 가치가 크게 위협받고 있는 게 서글픈 현실이기도 합니다. 코로나19 시대 장기화로 음식배달기사(라이더) 같은 플랫폼 노동자가 크게 늘고 있지만 노동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일찌감치 1996년 자신의 저서 『노동의 종말(THE END OF WORK)』(민음사)을 통해 이런 사회를 예고한 바 있습니다.

김 지도위원이 간절히 바랐듯이 소금꽃(나무)이 소금꽃 숲을 이루려면 노동자가 서로의 손을 맞잡아야 합니다. 숲에는 키가 큰 나무도 있고, 키기 작은 나무도 있고, 다양한 꽃과 나무가 서로 어우러져야 아름다운 숲을 이룰 수 있는 법입니다. 노동 종말의 시대에 역설적이게 정규직·비정규직을 넘어 노동자의 연대가 절실한 이유입니다.

노동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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