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격 소재·스타배우 거친 부담속
- 인물 트라우마에 역점 둔 연출
- ‘미투’로 시기적절… 차별화 성공

- 안성혜 “여배우 에너지 조화 덕”
- 강경숙 “원 없이 연기 펼친 무대”
- 정아린 재발견 “자신감 얻었다”
- 신인 신민경 “자성의 시간” 소회

‘수녀가 출산했고, 갓 태어난 아기는 목이 졸린 채 발견됐다. 성령 잉태를 주장하는 수녀원에 신을 믿지 않는 정신과 의사 리빙스턴이 방문한다’.

	최근 연극 ‘신의 아그네스’를 한 달간 함께 공연한 배우 정아린 강경숙 안성혜 신민경 씨가 지난 20일 카페에서 공연을 돌아보며 이야기하고 있다. 서순용 선임 기자 seosy@kookje.co.kr

연극 ‘신의 아그네스’는 파격적 소재로 인간과 신의 관계, 종교와 믿음에 대해 질문하며 1982년 미국 뉴욕 초연 이후 지금껏 무대에 오르는 작품이다. 국내에선 1983년 초연과 동시에 아그네스 역의 배우 윤석화를 스타로 만들었고, 이후 신애라 김혜수 차유경 등 유명 배우가 거치며 화제가 되어 왔다.

연극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보았을 작품. 그래서 무대를 만드는 연출자와 배우의 부담은 클 수밖에 없다. 묵직한 주제와 대사를 안고 가니 그 또한 도전이다. 지난 17일 극단 말과말사이가 마무리 지은 ‘신의 아그네스’(이호영 연출)는 그간의 공연과 달리 명쾌함과 강렬한 에너지를 앞세우며 자신들의 색을 선명히 드러냈고, 부산 연극계에서 반향을 끌어냈다. 선배 연기자들이 받치는 가운데 폭발적 연기력을 선보인 아그네스 역의 정아린 배우는 새로운 발견이었다. 한 달 공연을 끝낸 배우 정아린, 안성혜, 강경숙, 신민경이 한자리에 모여 연극을 돌아보며 ‘수다’를 떨었다.

“작품을 기획하던 지난 3월은 연극계에서 ‘미투’ 광풍이 불던 때죠. 이 작품이 아그네스의 기억이 만든 상처에 관한 이야기잖아요. 시기가 적절하다 생각했어요. 이호영 연출가의 방향에도 공감했어요. 종교에 대한 논쟁은 작품 속에 구조적으로 녹아 있으니 인물의 트라우마에 역점을 뒀거든요. 아그네스는 물론 원장 수녀, 리빙스턴 박사 모두 과거와 기억에 의해 깊은 상처를 받았고, 현재까지 영향받으며 살죠.”

공연 기획 담당이자 리빙스턴 박사를 연기한 안성혜 배우의 설명이다. 부산에서 30년가량 배우로 활동한 그는 ‘문화기획 ACTs’를 만들어 기획을 병행한다. 여성 배우는 나이가 들수록 역할과 무대가 제한적이다. 이른바 ‘러브콜’이 잦아들어 ‘연극을 직접 만들기로’ 했다. 그런 취지에서 ‘신의 아그네스’는 여성 이야기를 여성의 표현으로 담아낼 수 있는 작품이었다. 안 배우는 “네 명 배우의 각기 다른 색의 에너지가 적절하게 발산됐다. 여성 배우만의 고유한 개성이 조화로웠던 것 같다”고 소회를 전했다.

아그네스 역 정아린 배우는 ‘성장’을 이야기했다. 정 배우는 순수한 수녀의 모습과 어릴 적 상처에 따른 광기 어린 내면의 폭발을 오가는 연기를 강렬하게 선보이며 ‘좋은 배우의 발견’이란 평을 받았다. 아그네스에 깊은 연민을 느꼈고, 그것이 다채로운 표현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그는 스물일곱 살이다. 1년 전 극단 말과말사이를 창단해 직접 운영하고 있다. “연출의 힘이 컸습니다. 나이와 경력이 많지 않으니 저를 여리게만 보는 시선이 많은데 제 안의 다양한 것을 발견하고 끌어내 주셨죠. 작품이 호평받아 기쁘고, 연기나 극단 운영에서 더 자신감을 얻었어요.”

이번 ‘신의 아그네스’는 강렬한 에너지로 관객을 빨아들였다. 그 바탕엔 배우들의 팀워크가 있었다. 안성혜 배우는 연극 생활 30년 동안 원장 수녀 역을 두 번을 연기한 터라 리빙스턴 배역이 간절했다. 아그네스 역 정아린 배우는 물론, 원장 수녀 역 강경숙 씨에게 이번 무대는 연기 열정을 원 없이 펼쳤던 장이 됐다. 강 씨는 공연 15일 전 원래 예정된 배우가 사정으로 빠지면서 긴급 투입됐다. 그럼에도 많은 대사와 연기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며 극에 녹아들었다.

“배우가 오랜 꿈이었으나 여러 사정으로 실현할 수 없었어요. 시민극단에 있던 것 말고 프로 무대에 선 것은 1년이 채 안 됐죠. 이번 제안을 받았고 욕심이 나 무조건 하겠다 했습니다. 행복하고 좋았어요. 한 달을 숨 가쁘고 정신 없이 달렸죠. 제가 부족해 다른 분들이 힘들어할 것이 큰 걱정이었는데, 깊은 배려로 좋은 분위기를 유지했죠. 연출의 힘과 동료 배우의 소중함을 깊이 느꼈습니다.”

이번 ‘신의 아그네스’에서 ‘마리’의 출연은 매우 특별했다. 그동안 리빙스턴 박사의 대사에서만 등장하던 박사의 동생 마리가 무대에 등장했다. 이런 접근은 작품을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했다. 연기 경력 3개월의 19세 신민경 배우가 맑고 순수한 마리의 역할을 잘 해냈다. 신 씨는 “함축적인 작품이 아닐까 생각했다. 사회적으로 약자인 아그네스가 너무 많은 상처를 입었다. 나 또한 청소년이자 여성이라 약자가 될 수 있고, 한편으로 가해자가 될 수도 있겠더라.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극단 말과말사이의 ‘신의 아그네스’는 지난 5월 18일부터 지난 17일까지 부산대 NC소극장에서 한 달 동안 상연했다.

안세희 기자 ahnsh@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