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 독성이 모두 사라지기까지 무려 30만 년이 걸립니다. 국내 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된 사용후핵연료(수명을 다한 폐연료봉)는 영구처리시설이 없어 고리·신고리원전 수조에 임시보관 중입니다. 고리 1호기 임시저장소는 100% 꽉 찬 상태. 정부는 고리1호기 폐로가 확정된 2017년부터 영구처분시설을 추진했으나 5년이 지난 현재까지 입지조차 확정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원전 부지에 사용후핵연료를 영구 보관하는 내용이 담긴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을 발의했습니다. 특별법이 통과되면 부산 울산은 ‘영구 핵폐기장’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뉴스레터 ‘뭐라노’가 알아봤습니다.

부산 기장군에 위치한 고리원자력발전소 전경. 오찬영PD

지난 9월, 원자력안전위원회는 2017년 6월 19일 영구정지된 고리1호기 최종 해체계획서 심사를 무기한 연기했습니다. 고리1호기에서 발생한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할 관리계획이 수립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국내 저장된 사용후핵연료는 총 47만6729다발. 경주 월성원전의 임시저장소는 내년 상반기 포화상태에 이를 것으로 예상돼 현재 증설 중입니다. 고리 원전 역시 2024년 포화 예정입니다. 하지만 국내에는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해 보관할 영구처분시설이 없습니다.

고리원전 사용후핵연료 포화율 현황. 오찬영PD

사용후핵연료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정부는 2016년 7월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의 권고안을 바탕으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수립합니다. 2051년까지 영구처분시설을 건설한다는 내용이 핵심. 세월이 흘러 문재인 정부는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를 운영합니다. 박근혜 정부시절 수립한 기본계획이 지역주민과 시민사회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재검토위원회는 올해 4월 정부에 권고안을 제출했습니다.

[박종운 동국대 에너지전기공학과 교수] “공론화, 재검토위원회라는 게 거쳤는데 대안이 없고 그냥 허송세월 시간만 보냈다. 시간 벌기 게임을 한 거예요. 재검토위원회를 한 이유도 명쾌하지 않고, 권고안이라는 것 자체도 아무 소용도 없는, 우리가 이런 노력을 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식 그런 거밖에 안 되는 것을 한 거고...”

공론화위원회와 재검토위원회의 권고안은 대동소이합니다. 재검위가 권고한 ‘사용후핵연료 관리에 관한 특별법’ 제정과 ‘독립 행정위원회의 신설’은 과거 공론화위원회의 권고안에도 포함된 내용입니다. 영구저장시설 입지 검토나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대안 없이 5년이라는 아까운 시간만 흘려보낸 셈입니다.

최근에는 부산 울산을 ‘영구 핵폐기장’으로 전락시킬 수 있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김성환 의원이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을 상정한 겁니다. 이를 두고 최근 국회에서 난상토론이 벌어졌습니다.

[류호정 정의당 국회의원] “임시 저장 시설을 처음으로 정의를 하며 법제화 하는 것으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해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합의 과정 없이 임시 저장시설을 정의하고 건설 운영을 법제화시키는 것은 위험하고 또 다른 갈등을 일으킬 것 같은데요”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영구 폐기장이 대략 25년에서 30년은 걸릴 텐데, 현재 수조 안에 저장하고 있는 것을 그 기간 동안 어떻게 보관할 것인가가 쟁점입니다. 사전에 조율하고 법을 발의하기 어려워서 우선 특별법을 발의하고, 공청회와 입법과정에서 반영될 수 있도록 하면 되지 않겠나…”

지난달 23일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 중인 더불어민주당 김성환 의원. 국회영상회의록

김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서 논란이 되는 대목은 원전에서 발생한 핵폐기물을 기존 원전에 저장한다는 내용입니다. 법안대로라면 고리·신고리원전에서 나온 사용후핵연료를 영구처리시설이 완공될 때까지 계속 고리·신고리원전에 보관해야 합니다. 문제는 영구처분시설이 언제 완공될지 모른다는 점. 최악의 경우 고리·신고리원전이 사실상 영구처분시설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정수희 탈핵부산시민연대 활동가] “원전 부지 내에 핵폐기물을 꺼내놓을 수 있는 법안이 마련됨으로 해서 지역을 핵 폐기장으로 만드는 특별법이다 그렇게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기약 없이 핵폐기물을 쌓아놓는 방식으로 접근을 하는 것. 임시저장시설부터 법제화했다는 것은 사실상 주민들의 의향은 형식적인 절차를 통해서 무마하고 핵폐기물도 꺼내놓겠다. 그 이상이 아닌 거죠.”

[박종운 동국대 에너지전기공학과 교수] “발전소 내에 임시 저장을 늘리는 것은 끝이 언제인지 모르는 임시. 그게 문제이긴 하죠. 원전은 없어지더라도 사용후핵연료는 거기 100년 넘게 있을 수 있다는 거. 제일 먼저 중요한 거는 우리나라가 타당한 부지가 있느냐부터 조사를 해서 국민들한테 설득을 시켜야 돼요. 땅이 있어야 집을 짓는데 땅도 없는데 집지을 계획부터 세우고 있는 거예요 지금. 지금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사용후핵연료에 있어서는 제일 후진국이에요.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 원전을 운영하는 나라들은 모두 핵 인프라를 갖고 있어요. 프랑스도 뷔르 지역에 하고 있는 재처리하고 병합해서 장수명 핵을 분리해내는 기술과 함께 심층 처분하는 거, 그런 방안을 프랑스는 추진하고 있고,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원전 개수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없는 나라예요.”

프랑스는 2035년까지 고준위 방폐장 ‘시제오’ 건설을 마무리할 계획입니다. 1997년 ‘뷔르’를 영구처분 실험시설 용지로 선정한 뒤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꾸준히 설명회를 열고 재정 지원을 약속하며 설득한 결과입니다. 프랑스 정부에 대한 국민 신뢰는 오랜 시간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해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직 영구처리시설 부지조차 정하지 못한 우리나라의 상황과 대비됩니다.

세계 최대 원전 밀집지역인 부산 울산에선 “사용후핵연료마저 영구 보관해야 하느냐”는 불만이 커지고 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부처가 하루 빨리 영구처분시설 입지와 건립계획을 확정하는 것만이 근본적인 대안입니다. ‘뭐라노’가 계속 지켜보겠습니다. 오찬영 PD chxxyxx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