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고물가로 찾는 사람 급증
- 후원사·중간 플랫폼 기관 늘어야

“나눔냉장고를 채울 식자재가 부족합니다.” 민간에선 처음으로 부산에 나눔냉장고를 도입한 지상협(60) ㈔생명푸드쉐어링 이사장은 25일 만난 자리에서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소외계층을 위한 식자재 공급이 어렵다는 말부터 꺼냈다. 코로나19가 지속하는 데다 물가까지 오르면서 나눔냉장고를 여닫는 수요자가 눈에 띄게 늘었다는 설명이다. 식자재가 버려지면 처리 비용과 환경 오염이 발생하는 만큼 식자재를 공급하는 업체의 참여와 관심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지상협 생명푸드쉐어링 이사장이 나눔냉장고 설치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여주연 기자

지 이사장이 나눔냉장고를 처음 접한 건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오다겸 사하구의회 의원의 소개로 매스컴을 통해 독일의 음식공유운동(Food Sharing)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 상품성이 떨어지는 과일이나 음식 재료를 나눔냉장고에 넣어두면 홀몸 어르신 등 소외계층이나 지역주민이 가져가는 시스템이다. 식자재 폐기 비용을 아끼는 데다 폐기 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등을 줄여 환경도 보호된다. 게다가 식자재가 필요한 소외계층까지 도울 수 있다는 점에서 1석 3조인 셈이다.

이런 이유로 지역에 뜻이 맞는 40, 50명이 모여 생명나눔푸드쉐어링이란 민간회사를 설립했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나눔냉장고를 설치하고 유통회사에 식자재를 후원받아 취약계층에 전달하는 중간 플랫폼 역할을 하기 위해서다.

지 이사장은 처음에는 후원회원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부산 사하구 다대1동(몰운대종합사회복지관 앞), 다대2동(다대사회복지관 앞), 장림1동(쌈지공원 내) 등 3곳에 나눔냉장고를 설치했다. 냉장고를 놓을 자리와 전기를 써야 해 각 기관에 협조를 받았다. 문제는 식자재를 냉장고에 채우는 일이었다. 그는 “식자재를 후원해줄 업체를 찾는 일을 했는데, 냉장고를 채우는 게 쉽지 않았다. 친구가 운영하는 식품 회사에 찾아가 술 한 잔 사주고 식재료를 받아오기도 했다. 사비를 털어 냉장고를 채우는 일이 허다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나눔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1년 뒤엔 후원회장을 맡았다. 지 이사장은 “음식 재료를 챙겨가면서 활짝 웃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면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난다. 살아계실 때는 경제적인 여력이 안돼 효도하지 못한 아쉬움이 컸다. 봉사활동도 중독이 되더라. 조금 더 많은 이웃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멈출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사단법인 설립을 추진했다. 기부 영수증 발급이 가능한 사단법인을 만들어 안정적인 식자재 공급 체계를 만들기 위해서다. 2020년 초대 이사장을 맡게 된 그는 지난 2년간 발품을 팔아 식자재 공급 업체를 3곳에서 10곳으로 늘렸다. 나눔냉장고 설치 요청도 들어와 사하구 장림2동과 서구 서대신1동에 추가 설치했다.

공급 업체가 늘었지만 폭발적으로 늘어난 수요를 감당하긴 어려운 상태다. 냉장고를 채우는 날이면 긴 줄이 생긴다. 그는 “지난달엔 50, 60명이 줄을 섰는데 이젠 120명을 넘어섰다. 코로나에 고물가 사태까지 겹치면서 어려운 이웃이 많아진 걸 체감하고 있다. 마련된 식자재가 부족해 필요한 분이 받아 가지 못할 때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지 이사장은 나눔문화가 더 확산되길 기대했다. 그는 “살기 좋은 나라가 됐다고 하지만 우리 사회 곳곳에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이 많다. 지역 곳곳에서 플랫폼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기관이 많이 생겨났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