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백의 머리에 얇은 점퍼 차림으로 진료실로 들어선 노년의 남성은 한눈에도 대사 질환 관리가 시급해 보였다. “체중도 좀 많이 나가고, 콜레스테롤과 혈압이 높으시군요?” “알고 있습니다. 혈압약 10년 째, 먹고 있어요.” “네, 그런데, 혈압 조절이 잘 안되시군요. 이 상태에서 매일 음주 하시는 건 위험합니다.”
한숨을 내쉬며 그가 말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술을 줄이고 운동을 해서 좋아지다가…. 올해부터 매일 술을 먹는 바람에….”
“무슨 일을 하십니까? 올 해 어려운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70대 초반의 그는 수년 전부터 대형 빌딩에서 주차 관리를 하고 있었다. 근력이 필요한 일은 아니지만 고객차량 관리는 신경 쓸 일이 많아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2~3년 일하며 업무에 잘 적응하던 중 최근 빌딩 신축으로 주차난이 심해져서 매일같이 까다로운 차량 이동과 응대, 주차 안내, 급박한 요구와 무리한 요청을 조정하느라 스트레스를 주체하기 어려웠다. 매일 밤 한 병의 반주는 그에게 생명수와 같았다.
하지만 술과 직무 스트레스는 과체중과 고지혈증으로 연결되었다. 뇌심혈관계 10년 발생 위험도가 최고 위험군으로 분류될 정도의 상황이었다. 70대를 넘는 연령 자체가 위험 요소인 데다 고혈압과 고지혈증 당뇨 등 대사 질환은 심혈관·뇌 혈관 질환의 발병 위험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그에게 현재 직면한 위험을 잘 설명해 주었다. 현재 본인의 직무 스트레스 중 가장 힘든 점을 완화할 방법과 우선순위를 의논했다. 위험 수위에 찬 음주량을 줄일 수 있게 격려하고 다음번 검진까지 노력해 보기로 했다.
봄이 되면 정기적 건강 진단, 직장에 입사하거나 이직 하는 사람들의 검진이 늘어난다. 건설업 일용직으로 일할 계획이면서 난청을 가진 남성, 불면증으로 고민하면서 중환자실에서 3교대로 일하는 간호사, 요통과 고혈압 등의 지병을 가진 채로 일해야 하는 요양보호사 여성 등을 맞이하게 된다. 이들에게 일의 어려움과 예방을 의논하고, 건강하게 일할 방안을 찾아 1차의료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한 근로자 건강 진단의 중요한 목적이다.
일하는 사람의 건강검진은 질병이 있는지 진단하는 것과 함께 현재 하는 일이 영향을 주는지 찾아보고 해결 방법을 환자와 의사가 함께 찾는 작업이다. 근로자 건강 진단은 근로자가 하는 일을 검토하고, 일하면서 노출되는 위험을 분석해서 적절한 검사를 제공하고, 진단된 질병을 사후 관리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1차 의료가 취약한 우리나라의 의료 제도 아래서 근로자에게는 법정 건강진단이 1차의료의 역할을 상당 부분 커버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의 129, 130조에 의하면 사업주는 모든 근로자에게 일반건강검진을, 특별한 위험 요인이 있는 근로자에게는 특수건강진단을 제공해야 한다. 2022년에는 우리나라 근로자 1003만9345명이 일반건강검진을 받아 19.7%(1,979,703)가 고혈압 당뇨 등의 대사 질환을 진단 받았다. 특수건강진단을 받는 조건인 위험 요인에는 화학적, 물리적 위험 요인과 야간 작업이 포함되어 있다. 과거에는 중금속, 화학 약품, 시너 등 독성 물질을 다루는 제조업 근로자가 특수건강진단을 받는 사람의 대부분이었다. 산업 구조 변화에 따라 서비스업 근로자가 늘어났고, 이 근로자들의 야간 작업이 위험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증가했다. 2014년부터 야간 작업을 하는 보건 의료 종사자와 경비·운전 업무 등도 대상이 되었다. 2022년도에 특수건강진단은 245만3466명이 받았는데 야간 작업 때문에 특수건강진단을 받은 사람이 118만3863명으로 절반에 가까웠다.
일을 하는 것은 경제적 이득 뿐만 아니라 규칙적 생활, 성취감 같은 큰 장점이 있지만 일에 따른 위험도 동반하게 된다. 질병 발생 전에 위험을 예측하고, 조기에 진단하며, 진단된 후에는 관리를 제공하는 일하는 사람의 1차의료인 건강진단을 잘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상시근로자 50인 미만의 사업장 근로자에게 특수건강진단 비용을 지원하는 ‘건강 디딤돌 사업’을 실시하고 있으니 이를 활용 하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