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도시철도 1호선 교대역 노포 방향 승강장에는 ‘동해선’이라고 쓴 표지가 21개 있다. 이 숫자는 내가 직접 세어 본 결과인데, 행여 부정확할 수 있다. 하지만 이보다 적지는 않다. 반대쪽 신평 방향 승강장에도 같은 표지가 이만큼은 있을 것이고, 엘리베이터 통로에도 있으니 부산도시철도 교대역에는 인근 동해선 교대역으로 가는 방향을 안내하는 ‘동해선’ 표지가 40개 넘게 붙어 있는 셈이다. 많다.
이렇게 된 이유가 뭘까. 도시철도 1호선 교대역의 구조가 다른 역과 다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좀 이상하다. 그 ‘이상함’을 글로 설명할 수 있을지 난감하기는 한데, 하는 데까지는 해보려 한다. 노포 방향이든 신평 방향이든 교대역 승강장 안에서라면 아무 문제가 없다. 당신은 앞쪽 개찰구이든 뒤쪽 개찰구이든 어디로든 나갈 수 있다.
하지만 일단 개찰구 밖으로 나가면, 복잡해진다. 만약 당신이 교대역 신평 방향 승강장에 내려 앞쪽 개찰구로 나왔다고 치자. 5번 출구로는 곧장 나갈 수 있다. 그러나 1번·3번 출구로 나가겠다고 마음먹고 주위를 둘러본다면 당황스러울 것이다. 교대역의 승강장 바깥 지하 공간은 ‘중간’이 막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하로는’ 갈 수 없다. 지상으로 올라가 1번·3번 출구 쪽을 찾아가야 한다. 그게 뭐가 문제냐 할 수도 있겠지만, 처음 오는 사람은 ‘중간이 막혀 있다’고 상상하지 못하기에 당황한다.
노포 방향 승강장도 이런 구조는 똑같은데 문제는 조금 더 심각하다. 2번·4번 출구로 나가야 하는 승객이 별생각 없이 6번·8번 출구와 가까운 개찰구로 나와 지하통로를 거쳐 2번·4번 출구로 나가려 하면, 가는 길이 막혀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혼란에 빠진다. 할 수 없이 6번·8번 출구로 올라와 2번·4번 출구 방향으로 가고자 하면, 지상에는 복잡한 부산교대 교차로가 기다린다. 건널목을 찾아 건너고 더 많이 걸어야 한다. 혼란과 불안이 마음에 깃든 채.
도시철도 교대역 곁에 동해선 교대역이 들어서면서 진짜 문제가 시작됐다. 도시철도 교대역에서 내려 동해선 교대역으로 간 뒤 기장·해운대 쪽으로 향하려는 국내외 관광객, 달리 말해 ‘처음 오는 사람들’이 날마다 쏟아지기 때문이다. 이들은 일단 교대역 구조를 모르며, 엄청나게 큰 여행가방을 여러 개 지녔고, 어린이나 어르신을 동반한 경우가 많다. 두 교대역을 곧장 잇는 지하연결통로가 있는데, 불행히 이걸 못 찾고 엉뚱한 출구로 나가는 순간 고생길이다. 이들 여행객에게 부산 이미지는 여기서 한번 꺾인다.
다행스러운 흐름이 있다. 부산교통공사가 좀 더 열심히 대처하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날마다 도시철도 교대역으로 출·퇴근하니 이런 정성을 피부로 느낀다. 안내원 배치도 더 체계를 갖춘 듯하고, 안내 표지도 늘렸다. ‘동해선’ 표지가 수십 개가 된 사연이 여기 있을 것이다. 시민으로서 고맙다. 그러나 또 한 가지 분명한 게 있다. 많은 사람이 여전히 헷갈리고 고생한다.
꿈이 하나 생겼다. 공공 디자인의 힘을 빌리고 싶다. 부산디자인진흥원도 좋고 디자이너 집단도 좋다. 공공 디자인의 힘으로 헷갈리고 고생하는 시민·여행객 숫자를 최소로 줄이는 프로젝트를 시도해 보면 좋겠다. 누구든 딱 봐도, 동해선 교대역으로 가려면 이리로 가면 되는구나, 저리로는 가지 말아야 하겠구나 하고 느끼게 하는 일을 공공 디자인은 할 수 있지 않을까.
다행히 그런 방향을 잡는다 해도 장벽은 있을 것이다. 교대역만 독특하게 디자인한다면, 부산도시철도 전체 디자인 원칙이 흔들리거나 행정에서 중요한 안정성이 깨질 수도 있다. 일정한 규제가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때 나서야 할 일꾼이 있다. 정치다. 지역 단위 정치도 좋고 국회의원 수준의 더 큰 정치도 좋다. 정치가 나서서 실태를 파악하고 수치로 정리하고 예산을 짜고 규제를 조정하는 협업이 된다면 교대역은 공공 디자인이 돋보이는 특별한 역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상상을 한다.
정치의 세계는 다양하다. 이념 논쟁도 하고 중차대한 국정 방향도 잡는다. 그렇다 해도 정치를 극도로 단순하게 정의하면 핵심은 ‘자원을 어떻게 늘릴 것인가’와 ‘그 자원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이다. 현장을 취재하면서 종종 느낀 게 있다. 시나 교육청은 예산이 모자란다고 자주 말한다. 그런데 담당자가 관심·애정을 갖고 달려들면 어디에선가 예산을 구해오곤 했다. 적극 행정은 시민이 정치와 투표의 효능을 느끼게 한다.
총선이 끝났다. 국회의원 월급은 국민이 준다. 이 글을 쓴 이유가 교대역 공공 디자인에만 있지 않다. 시급성·심각성이 떨어지는 사안이라는 판단이 서면, 안 해도 된다. 다만, 가려운 데를 찾아 긁어주고 작은 것이라 해도 문제를 해결하는 정성스러운 정치를 당부한다. 그게 하고 싶은 말이다.
조봉권 부국장 겸 문화라이프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