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검은 사제복을 입은 한 이탈리아 신부가 뉴욕의 IBM 본사를 찾아갔다. 그의 제안은 당대 최고의 기술자들이 듣기에도 당황스러웠다. 13세기 스콜라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남긴 방대한 라틴어 저작을 낱낱이 조사해서, 거기에 등장하는 모든 단어를 분류하고 상세 색인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신부의 이름은 로베르토 부사(Roberto Busa). 예수회 사제이자 중세철학 연구자였던 그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현존’ 개념을 연구하다가 상세 색인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한 사상가가 어떤 개념을 무슨 뜻으로 사용했는지 정확히 알려면 유명한 문장 몇 개만 읽어서는 안 된다. 그의 저작 전체를 걸쳐 그 단어가 언제, 어디서, 어떤 말들과 함께 나타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문제는 토마스 저작에 사용된 단어가 1000만 개가 넘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부사는 기계를 찾아 나섰던 것이다.
IBM의 기술자들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부사는 회장 토머스 왓슨을 만나 IBM의 표어를 들이밀었다. “어려운 일은 즉시 해드립니다. 불가능한 일은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뿐입니다.” 시도도 해보지 않고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당신 회사의 표어와 맞지 않다는 부사의 말에 왓슨은 설득됐고, 그렇게 시작된 작업은 34년이 지나 1980년 56권짜리 토마스 색인(Index Thomisticus)으로 결실을 맺는다.
부사의 업적은 단순히 인문학에 컴퓨터를 적용한 것이 아니라, 질문의 범위와 형식을 바꿔놓았다는 데 있다. 예컨대 어떤 소설가가 ‘사랑’이라는 말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궁금하다고 해보자. 예전 같으면 그의 소설을 한 장씩 살펴보며 ‘사랑’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곳에 표시를 해야 한다. 운이 좋으면 책 뒤에 붙은 색인을 뒤질 수도 있다. 그런데 작가의 모든 작품을 컴퓨터에 넣고 검색하게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몇 초 만에 수백 개 문장이 눈앞에 나타난다. 그러면 궁금증의 수준도 달라진다. 초기 소설과 후기 소설에서 ‘사랑’이라는 말을 똑같은 뜻으로 사용했을까. ‘사랑’이라는 말 곁에는 ‘행복’이 많이 나올까, ‘상실’이 많이 나올까. 이성 간의 사랑을 말할 때와 부모의 사랑을 말할 때 표현은 어떻게 달라질까. 이것이 디지털 기술이 인문학의 질문을 바꾸었다는 말의 뜻이다.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다. 찾는 데 쓰던 시간이 줄어들자, 찾아낸 것들을 비교하면서 더 큰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여기서 새로운 문제가 생긴다. 숲 전체를 볼 수 있게 됐다고 해서 나무 한 그루를 더 잘 알게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봐야 할 것은 오히려 많아졌다. 검색 결과가 세 개일 때는 세 문장만 읽으면 된다. 그런데 컴퓨터가 관련 문장을 3000개 찾아주면 이제 3000개의 문맥을 비교해야 한다. 처음에는 비슷해 보였던 문장들 사이에서 작은 차이가 눈에 들어온다. 같은 낱말인데 여기서는 이런 뜻이고 저기서는 조금 다른 뜻이다. 어떤 경우에는 앞 문장을 읽어야 하고, 그래도 알 수 없으면 그 장 전체를 읽어야 한다.
AI의 속도는 우리가 할 일을 줄여주지 않는다. 자료를 찾는 노동은 줄지만, 그 자료가 무엇을 뜻하는지 판단하는 일은 남기 때문이다. 아니, 더 많은 자료를 볼 수 있게 됐으니 판단할 것은 오히려 많아진다. 부사의 작업도 그랬다. 토마스가 사용한 라틴어 단어들을 컴퓨터가 일정한 방식으로 분류할 수 있었지만, 같은 낱말이 문맥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는 경우까지 기계가 판별해주지는 못했다. 결국 사람이 문장을 읽으며 하나하나 판단해야 했으니, 이것이 그의 작업에 34년이 걸린 이유다.
모두가 말한다. AI 시대에는 ‘좋은 질문’의 능력이 중요해진다고. 그런데 좋은 질문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빨리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질문은 읽기의 결과다. 처음 책을 펼쳤을 때 품었던 질문이 100쪽을 읽은 뒤에는 엉뚱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반대로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한 문장이 어느 순간 마음에 걸리면서 새로운 질문이 생겨나기도 한다. 정보를 찾는 시간은 놀랍도록 짧아졌다. 그런데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절약한 그 시간을 읽고 생각하는 데 써야 한다.
부사는 새로운 기술을 두려워하지 않고 누구보다 먼저 그것을 붙잡았다. 그러나 그가 디지털 기술을 사용했던 이유는 덜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잘 읽기 위해서였다. 그는 대단히 겸손했다. 때가 무르익으면 자신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를 최초로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발전시키고 실현하는 일이라고도 말했다. 이렇게 부사는 하나의 생각을 30년 넘게 붙들었다. 그의 모습은 AI 시대에 지성인의 역할이 어떤 것인지 알려준다. 새로운 기술을 피하지 않고 기계가 잘하는 일은 기꺼이 기계에 맡기기, 그 덕분에 전에는 할 수 없었던 더 섬세한 질문을 끈질기게 던지기, 그러면서도 쉽게 결론 내리지 않고 마지막에는 다시 책임감 있게 문장 앞으로 돌아오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