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羈心秋興一樽前·기심추흥일준전
갈대밭 너머 아득한 물이 하늘과 맞닿았고(蘆荻微茫水接天·노적미망수접천)/ 나그네 마음에 가을 흥취 일어 술잔을 마주하네.(羈心秋興一樽前·기심추흥일준전)/ 남은 생애에도 길이 천지의 은혜를 입었으니(餘年永荷乾坤惠·여년영하건곤혜)/ 넓은 바다에 삶을 맡기고 취하면 곧 잠드네.(溟海涵生醉卽眠·명해함생취즉면)
위 시는 조선 중종 때 문신인 자암(自菴) 김구(金絿·1488~1534)의 ‘정자 위에서(亭上·정상)’로, 그의 문집인 ‘자암집(自菴集)’ 권 1에 수록돼 있다.
가을날 정자에 오른 시인의 눈앞에는 갈대와 억새가 우거져 있고, 그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남해 바다가 하늘과 맞닿아 있다. 유배객의 마음에도 가을 흥취가 일어나 술잔을 기울인다. 비록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하고 먼 섬에서 귀양살이하고 있지만, 천지의 은혜에 감사하며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려 한다. 시의 마지막 구절에는 바다를 벗 삼아 시름을 달래려는 선비의 마음이 담겨 있다.
김구는 1513년 문과에 급제한 뒤 홍문관 부제학에 올랐다. 정암 조광조 등과 함께 유교적 이상정치를 실현하려 했으나 1519년 기묘사화에 연루돼 경북 개령(김천)으로 유배됐다. 이후 죄가 추가돼 남해로 옮겨졌다. 당시 그의 나이는 서른두 살이었다.
남해에서 약 12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한 김구는 처음에는 가족과 고향을 그리워하며 외로움과 울분을 시로 표현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남해의 자연에 친숙해졌다. 남해의 풍광과 풍속, 사람들과 어울리는 즐거움을 노래한 경기체가 ‘화전별곡(花田別曲)’도 이 시기에 지었다.
둘째 구의 ‘기심추흥(羈心秋興)’은 유배객의 마음에도 가을의 흥취가 일어난다는 뜻이다. 절해고도의 유배객이 됐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자신을 둘러싼 자연에서 위안을 얻고 있다.
그는 1531년 전북 임피(군산)로 유배지를 옮겼다가 1533년 풀려났지만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오백 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남해 바다에는 해마다 가을이 찾아온다. 필자는 엊그제 남해 창선의 한 카페에 앉아 바다를 보며 커피를 마셨다. 얼마 전 김구의 시를 분석한 논문을 읽어서인지 남해 바다를 바라보며 시름을 달랬을 그의 심경을 가늠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