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유튜버가 온라인에서 북한 해커의 정체를 알아내는 영상이 화제가 됐다. 상대방의 가상사설망(VPN) 접속 오류를 지적하며 “평양 아니냐, 북한이냐”고 묻자 당황한 상대가 “뭐? 북한?”이라며 말을 얼버무린 것이다. 북한에서는 일반 주민의 인터넷 접근이 사실상 차단돼 있어 이런 온라인 활동에 군인이나 소수 엘리트가 동원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의 위장 취업 수법이 갈수록 대담해지고 있다. 이제는 AI로 가짜 이력서를 만들고 영어 음성까지 합성해 외국 기업의 채용 문턱을 넘는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최근 기업 관계자와 전문가들을 인터뷰한 뒤 북한이 영국을 새로운 취업 대상국으로 노리고 있으며, 위장 취업 수법도 한층 정교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IT 공작원들을 해외 기업에 위장 취업시켜 내부망에 침투하게 하고, 정보를 탈취하거나 랜섬웨어를 유포하는 등 사이버 범죄를 벌이도록 한다.
이들의 목표는 단순히 월급을 챙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국제 제재로 외화벌이 통로가 좁아진 북한은 사이버 공간을 새로운 돈줄로 삼았다. 2016년 북한 해커 조직 라자루스는 방글라데시 중앙은행을 해킹해 미국 뉴욕 연방준비은행에 보관된 자금 9억5100만 달러를 빼내려 했다. 이 가운데 약 8100만 달러가 실제로 빠져나갔다.
가상자산 시장은 북한 해커들에게 또 다른 노다지다. 북한의 가상자산 탈취를 주도하는 조직으로는 정찰총국 산하 121국이 꼽힌다. 소속 해커만 7000~1만2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9일 발생한 바이낸스 해킹 사건에서는 63억 달러(약 8조4000억 원) 상당의 가상자산이 무단 인출됐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지난달 31일 북한 해킹 조직 트레이더트레이터(TraderTraitor)를 공격 배후로 지목했다. 이 조직은 지난해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비트에서 약 15억 달러를 탈취한 사건의 배후로도 지목된 바 있다. FBI는 이들이 탈취한 가상자산을 이더리움 등으로 전환해 자금 세탁을 시도한 정황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북한 해커들에게 국경은 더 이상 장애물이 아니다. 채용 시장에서는 가짜 신분으로 기업에 침투하고, 금융시장에서는 가상자산을 빼돌린다. 우리 기업과 금융기관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AI로 무장한 해커에 맞서려면 방패가 달라져야 한다. 국가 차원에서 AI 기반 탐지·대응 기술을 고도화하고, 금융기관과 기업을 아우르는 공동 방어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은정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