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12월말~2008년 1월초
- 조 전 비서관·백 전 실장 등
- 1급비밀 형태 문건 작성 거쳐
- 盧에 수정본 첨부 '메모 보고'
- 봉하 이지원에만 저장돼 남아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삭제되고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되지 않았다는 검찰 수사 결과가 15일 발표되면서 대화록 생성에서 삭제, 유출까지의 구체적 경위가 관심을 끈다.
■대화록 초본·수정본, 생성 과정
노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남북 정상회담은 2007년 10월 2일부터 4일까지 사흘간 열렸다. 당시 남북 정상회담에는 조명균 전 안보정책비서관이 회담 내용의 기록업무를 담당, 배석했다.
회담 종료 후 국정원은 정상회담 녹음파일을 인수해 대화록을 만들어 10월 5일 전산망을 통해 백종천 전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과 조 전 비서관, 김경수 전 연설기획비서관에게 보냈다. 조 전 비서관은 이튿날 국정원에서 받은 대화록 일부 내용을 수정·보완해 '2007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을 완성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를 10월 19일 확인한 뒤 사흘 뒤인 21일 문서관리카드의 '처리 의견'란에 "수고 많았습니다. 다만 내용을 한 번 더 다듬어 놓자는 뜻으로 재검토로 합니다"라고 기재했다.
조 전 비서관은 22일 대통령 지시에 따라 대화록을 수정하기 위해 전산망을 통해 전자결재된 대화록 파일을 국정원에 전송해 주면서 수정·보완 및 변경을 의뢰했다. 국정원은 조 전 비서관의 요청에 따라 내용 일부를 수정·보완하면서 동시에 회담의 격에 맞지 않는 말투를 고치는 등 일부 표현을 변경한 뒤 24일 전산망을 통해 다시 백 전 실장 등에게 전송하게 된다.
조 전 비서관은 국정원이 수정해 올린 대화록을 재차 수정해 1급 비밀 형태의 대화록 문건을 작성, 그해 12월 말부터 2008년 1월 초순까지 백 전 실장을 거쳐 노 전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보고를 받은 노 전 대통령은 국정원에서 대화록을 1급 비밀로 보관하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와 함께 '이지원에 있는 대화록 파일은 없애도록 하라. 대화록을 청와대에 남겨두지 말라'는 취지의 지시를 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조 전 비서관은 2008년 1월 2일 국정원 직원에게 '참고 후 파기해 달라'는 메모와 함께 '1급 비밀'로 표시된 대화록 사본을 건넸다. 김만복 전 국정원장은 사본을 보고받은 뒤 역시 1급 비밀로 만들라는 취지로 직원에게 지시해 '국정원 보관 대화록'을 생산하게 된다.
■대화록 삭제·봉하이지원 유출 경위
조 전 비서관은 2008년 1월께 기록관리비서관실로부터 결재 완료된 문서들은 '종료처리'를 해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될 수 있도록 조치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조 전 비서관과 백 전 실장은 그러나 노 전 대통령 지시에 따라 보안상의 이유를 들어 조 전 비서관이 별도로 보관 중이던 대화록 수정본 문건을 문서 파쇄기로 파쇄했다.
또 10월 9일 올린 대화록 초본의 문서관리카드는 이지원 시스템의 관리부서인 업무혁신비서관실에 삭제를 요청했다. 업무혁신비서관실은 '삭제 매뉴얼'대로 이지원 시스템의 데이터베이스(DB)에 접근, 대화록 초본 파일이 첨부된 문서관리카드 메인테이블 등에서 해당정보를 삭제했다. 결국 참여정부는 이 매뉴얼에 따라 대화록 뿐 아니라 다수의 대통령기록물을 비정상적으로 삭제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 전 비서관은 '봉하 이지원' 제작을 위해 2월 14일 업무혁신비서관실의 협조를 얻어 이지원 시스템에 접속했다. 조 전 비서관은 '대화록 수정 보고'라는 제목의 '메모 보고'를 작성해 대화록 수정본 파일을 첨부해 대통령을 수신인으로 해 이지원 시스템에 등재했다. 이 메모 보고에서 조 전 비서관은 이지원의 문서관리카드에서 대화록을 삭제했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업무혁신비서관실은 이 대화록 파일이 첨부된 메모 보고를 봉하 이지원에만 저장되도록 한 뒤 2월 18일 5t 탑차에 봉하이지원을 싣고 사저로 내려갔다. 이후 업무혁신비서관실은 청와대 내 이지원에서 시스템 운용에 필요한 최소한의 데이터만 남겨둔 채 나머지 데이터를 모두 삭제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