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이 지하철이나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고, 스스로 자료를 찾아 법안을 발의하고 정책 제안을 한다. 또 국내외 어떤 활동에서도 '의전'을 받지 않고 외국 출장을 갈 때는 이코노미 항공 좌석을 이용한다. 스스로 밝히지 않는 한 신분을 알 길도 없다. 스웨덴 국회의원의 일상적인 모습이다. 이런 모습은 우리나라 일반 국민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치 1번지 여의도에서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이들이 한결같이 '권세'를 과시하듯 '금색 배지'를 가슴에 달고 있는 것은 천편일률적인 모습이다. 국제신문은 우리나라 국회의 특권 내려놓기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스웨덴 의회를 현지 취재했다.
- 유류비 대신 교통카드 지급
- 해외출장 땐 이코노미석
- 의회 앞 고급차들 상상 못해
- 月세비 수당 없이 800만 원
- 한국은 1140만 원에 더해
- 명절휴가비, 각종 수당까지
- 보좌진 도움없이 법안 만들어
- 발의 건수 세계 최고 수준
기자가 스웨덴 스톡홀롬 감라스탄에 있는 스웨덴 국회를 찾은 것은 지난달 28일 오전. 국회는 당시 오후에 열리는 본회의 투표로 분주했다. 출입문 보안 검색을 통과한 뒤 서성이자 한 남성이 반갑게 기자를 맞았다. 한스 엑스트롬. 스웨덴 여당인 사회민주당(사민당)의 재선 의원이다. 국회의원이 직접 보안검색대까지 와서 기자를 맞이한 것도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장면인 데다 국회의원임을 알 수 있는 어떤 부착물도 하지 않은 것이 우선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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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웨덴 사민당의 한스 엑스트롬 의원이 자신의 집무실에서 본지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멜커 달스트란드 촬영 |
■ 지하철·자전거 타는 스웨덴 의원
엑스트롬 의원의 사무실은 우리나라 의원회관 사무실(45평)의 9분의 1도 되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한쪽 벽면을 채운 책꽂이와 책상, 그리고 4명 정도가 겨우 앉을 수 있는 소파가 전부였다. 엑스트롬 의원은 특별한 외부 일정이 없는 한 이곳에서 모든 업무를 본다고 했다.
엑스트롬 의원의 일상은 우리나라 국회의원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월·금요일에는 외부 기관 방문이나 당내 모임 등 정당 활동을 한다. 토요일에도 외부 활동을 한다. 스웨덴 의원들은 예외 없이 회기 중 화·수·목요일에는 반드시 스톡홀롬에 거주하면서 상임위나 본회의에 참석해야 한다. 그가 보여준 수첩에는 한 달 치 일정이 빼곡했다. 그런데 그를 도와줄 보좌진은 그와 함께하는 내내 보이지 않았다. 엑스트롬 의원은 "당에서 파견된 보좌 직원 1명이 같은 당 소속 의원 4명을 보좌한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공무원 신분인 보좌직원 7명과 인턴 등 평균 9명이 국비로 월급을 받으며 1명의 국회의원을 보좌한다.
스톡홀롬에 거주하는 엑스트롬 의원은 통상 오전 8시30분 무렵 출근해 업무를 본다고 했다. 지하철이 그의 교통수단이다. 교통비는 국회에서 발급되는 교통카드를 통해 지급된다. 당연히 우리나라처럼 유류비가 별도로 지급되지 않는다. 엑스트롬 의원은 "다른 스웨덴 의원들도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사실상 '나 홀로 의정활동'이지만 입법 활동이 저조한 것도 아니다. 엑스트롬 의원은 연평균 20건의 법안을 발의한다고 했다. 스웨덴 의원들의 평균 발의안은 4년 임기 동안 평균 100여 개로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정치인'으로 알려졌다. 법안 발의 건수로 의정활동의 충실도를 판단할 수는 없다. 다만, 보좌진의 도움 없이 스스로 법안을 만든다는 점에서 '보좌진 발의'가 상당수를 차지하는 우리 국회와는 사뭇 달랐다.
엑스트롬 의원이 받는 세비는 월 6만2400크로나, 원화로 환산하면 800만 원으로 적지 않다. 물론 스웨덴의 높은 세금(대략 월급의 30% 정도)은 국회의원 세비라고 예외는 아니다. 세비 외 회기 중 스톡홀롬에 머물렀다는 것을 증명하면 하루 1만 원이 조금 넘는 식비를 받지만 특별수당은 없다.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의 세비는 스웨덴 국회보다 훨씬 많은 월 1140만 원 수준이다. 여기에 회기 하루당 3만 원 이상의 특별활동비를 받고 정근수당 및 명절휴가비 명목으로 매년 네 차례 일반수당의 50~60%도 추가로 받는다. 배우자와 자녀 수에 따라 가족 수당이 추가되고 자녀학비보조수당도 지급된다.
2015년 국가경쟁력 보고서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대비 우리나라 국회의원 보수 수준은 3위이지만 스웨덴 의원 보수 수준은 24위다. 그런데 보수 대비 의회의 효율성은 스웨덴이 2위, 우리나라는 26위로 조사됐다.
엑스트롬 의원이 꺼낸 호주 출장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이틀간 이코노미석을 타고 가면서 함께 간 의원들이 고생했다는 것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의 일부 의원이 "앞으로 해외 출장 갈 때 이코노미석을 타겠다"고 선언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은 해외 출장 시 비즈니스석을 기본으로 받는다. 스웨덴에서는 당연한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뉴스가 된다.
■ 같은 듯 다른 '의원 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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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웨덴 국회의사당 주변을 거닐고 있는 시민들. 스웨덴 국회행정처 제공 |
엑스트롬 의원을 인터뷰하는 내내 '국회의원 배지'의 행방이 궁금했다. 그는 "잃어버렸는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원실을 나가 배지를 단 의원 한 명을 겨우 찾아 배지를 보여줬다. 은색 바탕에 우리나라 국회의원 배지와 비슷한 원형 모양이었다. 엑스트롬 의원은 "배지보다는 국회를 출입할 수 있는 신분증이 더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배지는 금색으로 도색한 지름 1.6㎝의 작은 원형이다. 돈으로 환산하면 3만5000원정도 된다. 그런데 4년마다 4월이 되면 이 작은 배지를 차지하기 위해 이전투구가 벌어진다. 금배지 속에 담겨있는 200여 가지로 알려진 특권이 쟁탈의 대상이다.
엑스트롬 의원이 스웨덴 국회의원 전부를 대표한다고 볼 수는 없다. 선거제도와 역사적·사회적 배경이 다른 스웨덴과 우리나라 국회를 단순 비교하기에 무리가 있는 것도 사실. 하지만 양국 국회의원의 대조적인 특권 의식은 '배지'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은 분명해 보였다.
스톡홀롬=박태우 기자 yain@kookje.co.kr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