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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 5·18 진압, 언론통폐합…역사에 상처를 남겼다

전두환은 누구

  • 박태우 기자 yain@kookje.co.kr
  •  |   입력 : 2021-11-23 19:58:09
  •  |   본지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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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사 출신 정치군인… 5공 독재
- 본지 폐간 등 민주주의 짓밟아
- 국민적 저항으로 백담사 유배
- 광주 발포명령자 영구미제될 듯
- 미납 추징금 956억 환수 어려워

1988년 11월 23일. 전두환 전 대통령은 백담사로 유배 길에 올랐다. 정치적 후계자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에 정권이 이양됐지만, 민주화의 역사적 흐름 속에 ‘5공 청산’의 국민 요구를 막을 수 없었다. 그리고 33년 전 백담사로 향했던 날과 같은 23일 사망했다. 전 전 대통령은 7년 재임 기간 대한민국 역사의 수레를 거꾸로 되돌렸다. 12·12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했고, 5·18이라는 현대사 최대 비극을 낳았다. 한강이남 최대 신문이던 ‘국제신문’을 희생시킨 언론통폐합 등 민주주의와 인권을 유린했다. 하지만 끝내 과오에 대한 사과나 참회는 없었다.
   
23일 사망한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95년 12월 2일 서울 연희동 자택 앞 골목에서 검찰의 소환에 불응하면서 ‘골목 성명’을 발표하는 모습. 전 전 대통령은 성명 발표 이후 고향인 경남 합천으로 갔다가 체포돼 구속됐다. 연합뉴스
■민주주의 짓밟은 정치군인

전 전 대통령은 1931년 1월 18일 경남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집안에서 성장한 그는 1951년 육군사관학교(11기)에 들어가면서 엘리트 군인 코스를 밟았다. 10·26 사태 합동수사본부장이 된 그는 각종 월권행위로 군내 비판이 일면서 교체 위기에 몰리자 영남 출신 동기·후배로 구성된 사조직 하나회 장교들과 군사반란을 도모했다. 이어 12월 12일 당시 최규하 대통령의 재가도 받지 않은 채 내란 방조 혐의로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강제 연행하고 전방 육군 병력을 서울로 출동시켜 군 지휘체계를 무너뜨리는 하극상을 저질렀다.

   
전 전 대통령 내외가 1988년 11월 23일 강원도 인제군 백담사에서 경내를 둘러보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군의 실권을 장악한 뒤 하나회 출신으로 군부를 재편한 그는 이듬해인 1980년 5월 17일 최규하 대통령을 겁박해 비상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하면서 김영삼·김대중·김종필 등 3김(金)을 정치규제로 묶고 권력을 일거에 장악했다. 5·17 조치 다음 날 광주 시민은 민주주의 복원을 외치며 거리에 몰려가 저항했으나 신군부는 공수부대를 투입, 유혈 진압을 감행했다. 1980년 6월 초헌법적 기구인 국가 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발족시킨 데 이어 국회를 해산시킴으로써 대통령 권좌를 확보했다. 1980년 8월 16일 최규하 대통령을 하야시킨 뒤 그해 유신헌법에서 만든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제1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고 5공 독재의 막을 올렸다.

정권을 잡은 전 전 대통령은 여론을 조작하고 호도하고자 언론 장악에 나섰다. 대표적인 조치가 1980년 11월 언론통폐합이다. 전국 64개 언론사를 신문사 14개, 방송사 3개, 통신사 1개로 통합한 사건을 말한다. 국제신문도 지방지 ‘1도 1사’ 원칙에 따라 폐간됐다. 이 과정에서 언론인 1000명 이상이 해직조치를 당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2010년 1월 국제신문의 강제 폐간은 ‘5공 신군부의 정권 장악 시나리오에 의해 자행된 불법 조치’라고 확인했다.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건 민주화를 염원하는 국민이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6월 항쟁이라는 국민적 저항을 불렀고, 전 전 대통령은 권력의 정점에서 떨어지게 된다. 그는 백담사 유배 중이던 1989년 12월 31일 야권의 요구에 국회 광주특위와 5공특위 합동회의에 출석, 증언대에 섰다. 1990년 12월 백담사에서 연희동 자택으로 돌아왔지만 그를 기다리던 것은 역사의 단죄였다. 문민정부를 연 김영삼 전 대통령의 하나회 해체와 12·12, 5·18 진상규명 및 관련자 처벌 등 과거사 청산 조치에 따라 심판대에 오르게 된 것이다. 12·12쿠데타를 주도한 지 16년 만에 이뤄진 심판이었다.

■단 한번도 반성은 없었다.

그는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가 승리한 1997년 12월 대선 직후 김영삼 대통령의 특별사면 조치로 구속 2년 만에 풀려났지만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진정성 있는 반성을 하지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5·18항쟁을 무력 진압하며 수많은 희생자가 나온 사건이다. 그는 수십 년 동안 이어진 추궁과 사과 요구에도 미안한 기색을 드러낸 적이 없다. 문민정부 출범 이후 내란과 5·18의 책임자로 처음 법정에 섰지만, 그는 진압의 당위성을 주장하며 당시 사건을 ‘좌파 세력의 준동’으로 규정했다. 재판 과정에서 “억울하다. 왜 나만 갖고 그래”라고 말한 것은 그의 태도를 단적으로 드러내준 대목으로 꼽힌다.

12·12 군사 반란에 대해서도 그는 회고록에서 “우발적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전 전 대통령의 측근인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5·18 사죄가 없었다’는 기자들의 지적에 대해 “기회 있을 때마다 (했다)”며 “33년 전 11월 23일 백담사 간 날에도 성명을 발표하고 피해자들에게 미안하다는 뜻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 전 대통령이 공수부대를 사실상 지휘하고 발포명령한 것 아니냐, 사죄하라는 것은 질문 자체가 잘못”이라며 “발포 명령은 없었다”는 주장을 이어갔다.

■5·18의 진실, 결국 미궁으로

5·18 최초 발포 명령자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당시 최고 책임자였던 그가 끝내 입을 다문 채 숨지면서 결국 이 문제는 영구 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

1997년 노태우 전 대통령과 함께 12·12 반란과 5·18 내란 살인 및 뇌물 등 혐의로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확정받았던 전 전 대통령은 또다시 5·18과 관련해 형사 재판에 회부됐다. 전 전 대통령은 재판 2년 6개월 만인 지난해 11월 30일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최종 확정판결이 나기 전 사망하면서 이번에는 역사적인 유죄만 인정되게 됐다.

이번 재판은 전 전 대통령이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한 것이 사자(死者)명예훼손죄에 해당하는지를 가리는 재판이다. 이는 실권자였던 전 전 대통령이 대국민 학살 책임과 5·18 당시 자국민을 향한 군의 헬기 사격을 부정한 것이기도 해 단순히 명예훼손 이상의 무게를 갖는다. 또한 공식 석상에서 단 한 차례도 광주시민에게 사과하지 않았던 전 전 대통령에 대한 사실상 마지막 처벌이자 사죄의 기회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5·18의 두 책임자가 잇따라 사망하면서 풀기 어려운 역사의 숙제로 남을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은 그가 아직 내지 않은 추징금 956억 원을 환수하기도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환수한 전 전 대통령의 재산은 1249억 원이다. 전체 추징금 2205억원 의 57%로, 미납 추징금이 956억 원이다. 현행 형사소송법상 미납 추징금 집행은 당사자가 사망하면 그 절차가 중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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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우 기자 yain@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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