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산 참모들도 몰랐던 극비 상황
- 계엄군 헬기 동원 280여 명 투입
- 진입 막으려던 보좌진과 몸싸움
- 일부 의원들 담넘어 회의장 집결
- 새벽 4시27분께 해제돼 軍 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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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서부터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4일 새벽 계엄군이 탑승한 헬기가 서울 여의도 상공을 지나고 있다. 무장한 계엄군이 국회 본청으로 진입하자 국회 보좌진들이 소화기를 뿌리며 대치하고 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경찰에 의해 출입이 통제되자 담을 넘어 본회의장으로 들어간 뒤 의장석에 앉아 개회를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국회의장실 제공 |
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비상계엄’을 전격 선포하고 국회가 4일 새벽 ‘무효’를 선언할 때까지 걸린 시간은 155분, 이어 윤 대통령이 새벽 4시27분께 계엄을 ‘해제’할 때까지는 6시간이 걸렸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대통령의 한밤 계엄 선포와 국회 내 무장 군인 투입 등은 2024년 12월 대한민국의 모습을 의심하게 할 정도로 국민에게 극도의 충격을 안겼다.
윤 대통령은 지난 3일 밤 10시25분께 긴급 대국민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여러 대통령실 참모조차 모른 채 극비리에 준비된 것으로 알려졌다. 비상계엄 선포 한 시간 만에 계엄 지역의 모든 행정사무와 사법사무를 관장할 계엄사령부가 설치됐고, 계엄사령관에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이 임명됐다. 박 총장은 당일 오후 11시부로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는 내용의 ‘계엄사령부 포고령(제1호)’을 발표했다. 같은 시간 우원식 국회의장도 “모든 국회의원은 지금 즉시 국회 본회의장으로 모여달라”고 공지했다. 계엄을 해제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방법인 국회 표결을 위해서다. 계엄 해제를 요구하기 위한 요건인 ‘재적의원 과반 찬성’을 위해선 최소 150명의 국회의원이 시급하게 본회의장에 모여야 했다.
이 무렵 국회에 진입하려는 계엄군과 이를 막아서는 국회 보좌진 간 대치와 충돌이 시작됐다. 이미 경찰이 국회의사당 정문과 측문을 막은 상태에서 많은 여야 의원은 담을 넘어 본청에 진입했다. 이 장면은 TV와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되면서 국민에게 충격을 안겼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선포된 비상계엄에 전신을 무장하고 소총을 두른 계엄군이 국회에 무력으로 진입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국회 로텐더홀에서 보인 국회의원은 4일 0시께 약 60명이었지만,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본회의에 상정돼 표결에 들어간 1시께에는 의결정족수를 넘은 190명으로 늘었다. 계엄군이 국회 본청 유리창까지 깨고 건물에 진입한 상황에서 의원들은 우 의장에게 “빨리 상정해 표결하라”고 고성으로 항의했으나 우 의장은 “국회가 정한 절차에 오류가 없도록 진행해야 한다”며 10여 분간 안건 상정을 기다리기도 했다. 결국 표결에 참여한 의원 190명 전원 찬성으로 계엄 해제 요구안이 계엄 선포 155분 만에 가결됐다.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후 20여 분이 지난 3일 밤 10시50분부터 경찰이 국회 외곽문을 폐쇄하고 국회의원과 직원 출입을 막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어 국방부는 밤 11시48분부터 4일 새벽 1시18분까지 24차례 헬기를 동원해 무장한 계엄군 230여 명을 국회 경내에 진입시켰고, 이와 별도로 계엄군 50여 명이 추가로 국회 담장을 넘어 경내에 들어왔다고 국회는 설명했다.
계엄군은 국회의사당 정현관과 후면 안내실을 통해 의사당 진입을 시도하다가 불발되자 망치와 소총 등으로 유리창을 깨고 의사당 안으로 난입했다. 다만 국회 보좌진들과의 몸싸움 등에서 적극적인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계엄군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하면서 비상계엄 선포가 법적 유효성을 잃은 것으로 판단되자 국회에서 물러났다. 이어 윤 대통령은 새벽 4시27분께 용산 대통령실에서 비상계엄을 해제하면서 “계엄군을 철수시켰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