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라노는 이번 주 ‘이거 아나’에서 소개할 시사상식 용어를 ‘양곡관리법’으로 정했습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지난 19일 양곡관리법 등 야당이 통과시킨 6개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한 권한대행은 잠시 대행일 뿐 대통령이 된 게 아니다. 국회가 통과시킨 법에 거부권을 행사할 생각은 접길 바란다”며 탄핵까지 불사하겠다고 압박했는데도 끝내 수용하지 않았죠.
양곡관리법은 ‘쌀값이 폭락하거나 폭락이 우려될 때 정부가 남는 쌀을 의무적으로 매입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합니다. 양곡의 시장 가격이 ‘기준 가격’에 미치지 못하면 차액의 일부 혹은 전부를 정부가 지급하자는 것. 민주당은 농민 생계 보호, 양곡의 적정한 가격 유지, 농업의 지속가능성, 식량안보를 위해 양곡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죠.
하지만 정부는 강경하게 반대했습니다. 사실 양곡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닌데요.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4월 이미 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습니다. 양곡법 개정안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1호 법안’이죠. 당시 윤 대통령은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라며 “시장의 쌀 소비량과 관계없이 남는 쌀을 정부가 막대한 혈세를 들여 모두 사들여야 한다는 ‘남는 쌀 강제 매수법’”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식습관 변화로 국민의 쌀 소비량이 지속적으로 감소해 매년 쌀이 과잉 생산되는 형국에, 양곡법 개정안 통과로 정부가 쌀을 사들이면 상당수 농가가 다시 벼농사로 유입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인데요. 또 당장 쌀 매입과 보관에 들어갈 막대한 예산도 문제로 삼았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양곡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2030년에는 쌀 매입비로만 2조7000억 원, 보관비까지 합하면 3조 원이 넘는 재정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했죠.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자 민주당은 폐기된 양곡법 개정안의 내용을 조금 고쳐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했습니다. 기존 개정안에는 ‘초과 생산이 3~5% 이상이거나 쌀값이 지난해보다 5~8% 하락했을 때 정부가 농협을 통해 매입해야 한다’고 돼 있었는데요. 이를 ‘기준 가격에서 폭락하거나 폭락이 우려되는 경우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매입하는 등 대책을 수립, 시행해야 한다’고 바꾼 겁니다. 민주당은 쌀 생산량이나 시세를 기준으로 정부 매입을 의무화한 앞선 개정안에 비해 ‘의무 규정’을 완화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쌀값이 어느 정도 낮아졌을 때 정부가 매입할지 근거가 모호하다는 점에서 기존 법안보다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죠.
그런데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통과되고 한 권한대행이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서 야당이 갑자기 ‘이전에 이미 거부권을 행사했던’ 법안을 다시 들고나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야당이 한 권한대행의 직무 수행 범위를 확실히 한 것이란 해석이 나옵니다. 한 권한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한 만큼 국회가 청문 절차를 거쳐 추천한 헌법재판관 후보 임명을 거부할 근거가 약해졌기 때문입니다. 거부권이란 적극적 직무 수행을 한 상황에서 소극적 직무 수행을 거부할 명분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