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의결되면서 조기대선 분위기가 무르익자 대권 잠룡들이 이른 기지개를 켜게 됐다. 탄핵 정국으로 수세에 몰린 여권에서는 ‘이재명 대세론’에 맞설 주자로 누가 나설지, 야권에서는 압도적 대권 주자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에 대비하는 잠룡들의 움직임이 주목된다.

왼쪽부터 한동훈, 홍준표, 오세훈, 유승민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과 이로 인한 탄핵소추로 여권은 직격탄을 맞았다. 윤 대통령 탄핵 책임을 둘러싼 내홍까지 겹치면서 여권에서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로 꼽혔던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대표직과 함께 정치적 존재감도 잃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다른 여권 잠룡들에게는 파고들 빈틈이 생겨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내부 경쟁이 예고된다. 차기 보수 권력의 ‘춘추전국시대’가 열렸다는 관측이 나올 정도다.

한 전 대표는 당내 보수 지지층에겐 ‘배신자’란 비판을, 중도층으로부턴 ‘탄핵 찬반을 놓고 오락가락 했다’는 지적을 동시에 받으며 입지가 흔들리는 분위기다. 당대표직에서 물러난 이후 잠행에 들어간 그가 목소리를 낸 것은 지난 29일 ‘무안 제주항공기 참사’ 애도 입장을 SNS에 올린 것이 전부다. 그의 정치활동 재개 가능성을 두고 갑론을박이 오가지만 조기대선이 본격화할 경우 한 전 대표가 어떤 식으로든 메시지를 낼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가 반윤(반윤석열)주자 간 합종연횡을 히든카드로 선택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정치권에서 흘러나온다. ‘한동훈 유승민 이준석’의 반윤 연대설도 이 가운데 하나다. 다만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하면 8년 전 분당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보수 잠룡 중 가장 적극적으로 몸을 풀고 있는 대권 주자는 홍준표 대구시장이다. 각종 현안마다 하루 2, 3건의 SNS메시지 정치에 몰두하고 있는 홍 시장은 “또 이사 가야 한다는 생각에 연말이 뒤숭숭하다”며 “어차피 대구시장은 4년만 하고 졸업하겠다는 생각으로 대구 혁신 ‘100 플러스 1’을 압축적으로 추진하고 있었는데 그 시기가 더 빨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조급해진다”고 얼마전 썼다. 그는 또 “박근혜 때 ‘탄핵 대선’을 치러봤기 때문에 경험이 있는 사람은 결국 나밖에 없다”고 했다. 조기 대선 출마 의지를 숨기지 않은 것이다.

또 다른 잠룡인 오세훈 서울시장의 행보도 주목된다. 그는 대선 전략으로 중도층과 수도권 민심을 공략한다. 국민의힘으로서는 가장 약한 고리를 우군으로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윤 대통령 탄핵에 반대했다가 찬성 입장으로 선회한 것이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소환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는 윤 대통령을 향해 “수사에 신속하고 당당히 임해야 한다”고 발언하는 등의 행보는 ‘민심 읽기’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2011년 무상급식 논란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했던 오 시장으로서는 차기 대선 출마를 위해서 또다시 중도 사퇴해야 한다는 점은 부담이다. 오 시장은 최근 SBS라디오에서 대선 출마에 대해 “심사숙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밖에 윤석열 정부의 강경 행보에 비판적 목소리를 내온 안철수 의원도 주목된다. 그는 이번 탄핵뿐만 아니라 ‘채해병 특검법’ 등도 당론과 반대로 찬성 입장을 밝히면서 소신의 정치를 부각했다. 그는 조기대선 출마에 대해 “솔직히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직 헌법재판소의 결정도 안 났다”며 신중한 입장을 견지한다.

개혁보수의 상징인 유승민 전 의원은 보수에서 중도 혹은 진보 성향으로 확장의 폭이 넓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여당은 아니지만 보수진영으로 분류되는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도 “조건만 맞는다면 대통령 선거에서 역할을 할 의향이 있다”며 출마 의사를 밝혔다. 1985년 3월생인 그는 헌법상 대통령 출마 나이 제한(선거일 현재 40세)에 따라 헌재 결정이 1월 31일 이후에 나오면 출마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