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얼빈’이 여전히 인기다. 지난해 12월 24일 개봉한 이후 30일 만인 1월 22일 누적 관객수 455만 명을 기록했다. 설 연휴 치열한 흥행 경쟁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주연 배우 현빈은 안중근 역을 맡아 외로움과 결단력을 아우르는 섬세한 감정 연기로 눈길을 끌었다.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일본 제국주의 우두머리인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독립운동가 안중근을 연기하는 데 그만큼 진심이었다. 국제신문과 인터뷰에서 현빈은 ‘안중근 장군’을 강조했다. “안중근 장군은 철저히 군인이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대한의군 참모중장이셨고, 재판에서도 군법으로 재판받고 싶다고 하셨다. 군인으로서 나라를 지키고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살아오셨던 거다. 그런 지점에서 장군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얼빈’을 연출한 우민호 감독은 1908년 안중근이 이끄는 대한독립의군부(대한의군)가 일본군에 승리한 함경북도 신아산 전투에서 시작해 1년 후 하얼빈 의거까지 다루며 목숨을 걸고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한 독립군 모습에 초점을 맞췄다. 안중근의 내면 연기를 위해 현빈을 삼고초려한 까닭을 짐작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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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하얼빈’에서 안중근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현빈. 영화에서 안중근은 지금 대한민국은 어떤가를 되짚게 한다. CJ EN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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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하얼빈’을 보면서 김훈 작가의 소설 ‘하얼빈’을 떠올렸다. 영화와 소설은 각각의 울림으로 관객과 독자에게 감동을 전한다. 분명한 건 안중근이 지금 대한민국은 어떤가를 되짚게 한다는 점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는 대한민국에 큰 생채기를 안겼다. 그 여파는 현재진행형이다. 불확실성은 그동안 국민이 피땀으로 쌓아온 대한민국 위상을 허물고 있다. 그나마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힘은 국민의 민주 회복력이다. 국회 탄핵으로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심판을 받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은 여전히 자신의 세계에 갇혀 있는 듯하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내란죄 수사가 윤 대통령 측 비협조로 공회전하자 지난 23일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 대통령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윤 대통령은 “종북 세력을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했지만 헌재 심판과 법원 재판이 동시에 받아야 하는 처지다. 자유민주주의라는 신념 하나로 공직 생활을 했고, 이것이 계엄 선포 이유라고 하나 지금 대한민국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정치의 정도를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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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난해 12월 3일 밤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으로 계엄군이 진입하고 있다. 탄핵 정국은 정치인이 국민을 무서워 할 줄아야 한다는 사실을 재확인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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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민지’(大畏民志), 백성의 뜻을 크게 두려워한다는 말을 떠올리는 이유다. 동양 경전 사서(四書)의 하나인 ‘대학’(大學)에 나온다. 정치인이 국민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대학’은 유교 정치의 교과서로 불린다. 개인의 수양이 국가 통치로 연결되는 경로를 명쾌하게 밝혀놓았기 때문이다. ‘대학’ 구절인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동양 경전 ‘예기’(禮記)에 있던 ‘대학’을 떼어 내 ‘사서’의 하나로 만든 이는 송나라 유학자 주자였다. 주자가 ‘대학’에서 ‘수기치인’(修己治人)이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했다. 나를 닦아 나라는 다스린다는 의미다. 그 대상은 새로운 송나라였다. 이를 본받은 나라가 조선이다. 왕조를 교체하며 새 왕조의 기틀이 필요했던 신진 사대부들에게 필요한 사상체계로 받아들여졌다. 바로 주자가 주창한 성리학(性理學), 주자학이다.
조선의 성군으로 칭송받는 세종은 ‘대학’으로 정치를 배웠다. 세종은 즉위한 1418년 10월 첫 경연에서 ‘대학연의’를 강론했다. 왕이 된 지 두 달만이다. ‘대학연의’는 송나라 학자 진덕수가 쓴 ‘대학’ 해설서다. 세종대왕이 100번 이상 탐독했다고 전한다. ‘대학’의 8조목(격물·치지·성의·정심·수신·제가·치국·평천하)을 풀이하고 왕의 마음가짐, 인재 발탁 및 간신 구분 방법 등을 설명한다. 세종 뿐만 아니다. 영조는 직접 ‘대학집주’ 서문을 썼다.
그래도 어쩐지 ‘대학’하면 아득히 먼 옛 일로 느껴질지 모른다. 김훈 작가 이야기를 빌려오면 ‘대학’이 생각보다 가깝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김 작가의 ‘하얼빈’ 출간 소식을 전하는 기사엔 ‘필일신’(必日新)이란 내용이 있다. 주자의 ‘근사록’(近思錄)에서 따왔다. ‘군자의 배움은 반드시 날마다 새로워야 하니, 날로 새롭다는 것은 날마다 나아가는 것이다’(君子之學 必日新 日新者 日進也)의 일부다. 새 작품을 쓸 때마다 집필실 칠판에 ‘必日新·날마다 새로워져야 한다)’ 세 글자를 써두고 창작의 산고를 겪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집필이 시작되면 ‘必日五’(필일오)로 바꾼다고 한다. 하루에 반드시 원고지 다섯 장은 쓰자는 각오다.
‘必日新’은 ‘대학’의 탕왕(湯王) 이야기에서 비롯한다. 중국 은나라 건국 시조인 탕왕이 스스로 경계하기 위해 세숫대에 새겨놓았다는 훈계의 글, ‘구일신(苟日新) 일일신(日日新) 우일신(又日新)’이다. 진실로 새로워지려면 날마다 새로워지며 또 날로 새로워져야 한다는 의미다.
이 정도면 ‘대학’이 어쩌면 우리 곁에 있었는데, 미처 그 뜻에 맞춰 제대로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는지 반성할 여지가 충분하다. 주자 말처럼 ‘책의 가르침 따로, 나의 행동 따로’가 오늘 우리가 겪는 탄핵 정국일 수 있어서다.
설 연휴를 맞아 김훈 작가의 ‘必日五’에 빗대 ‘대학’ 주요 내용을 다섯 번에 나눠 정리해본다. 대한민국 정치인의 반성을 촉구하며. 정상도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