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대선이 가시화하면서 정치권에 개헌 논의가 본격화했다. 12·3계엄사태 발생의 근본 원인이 제왕적 대통령제에 있는 만큼 권력 분산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여야 대권 잠룡 사이에서 활발하다.

국민의힘 잠룡인 오세훈 서울시장은 12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을 지자체에 과감하게 넘겨야 한다”며 지방분권 개헌을 주장했다. 서울시장으로 재임 중인 그가 수도권 일극체제의 폐해를 지적하며 지방소멸 위기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 것은 대선을 염두에 두고 국정운영 비전을 공개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12일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87체제 극복을 위한 지방분권 개헌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정록 기자

오 시장은 인구 600만 명에 국민소득이 10만 달러 가량인 싱가포르와 같은 거점을 전국에 서울을 포함해 5곳을 육성하자고 제안했다. 대통령은 외교 안보 국방 권한만 갖고 내치 관련 권한을 ‘광역화된 지자체’에 이양하자는 것이다. 그는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5대 5, 혹은 그 이상으로 지방에 재정을 넘겨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전날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개헌을 제안했던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도 토론회에 참석해 87년 헌법 체제 이후 성공한 대통령이 없다고 지적하며 “사람의 문제가 아니고 제도의 문제라고 보는 것이 대다수 정치인, 헌법학자들의 견해”라고 말했다. 이어 “인구에 의석수가 비례하다 보니 모든 것이 수도권 중심으로 되고 있다”며 “중앙과 지방이 상호 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분권형 개헌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11일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를 방문한 김두관 전 의원. 김 전 의원 페이스북.

더불어민주당에선 비명(비이재명)계를 중심으로 개헌 논의가 불붙었다. 김두관 전 의원은 ‘분권형 4년 중임 대통령제’로 개헌을 주장한다. 대통령은 외교·안보 분야에 집중하고, 국회에서 선출한 총리가 내치를 담당하는 ‘책임총리제’ 또는 ‘이원집정부제’로 권력 구조를 개편한다는 것이다. 초광역 지방정부에 자치법률제정권, 재정조정권, 치안권 등을 부여한다는 의제도 포함됐다.

전날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은 김 전 의원은 “4년 중임제로 권력을 분산하고 지방소멸을 막을 수 있는 분권형 개헌에 앞장서겠다”며 “원포인트 개헌을 통해 권력 구조를 바꾸고 내년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에 부쳐 7공화국 헌법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달 중 ‘넥스트 코리아’ 포럼을 본격 출범시켜 개헌 논의에 박차를 가한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는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이번 탄핵의 종착지는 이 땅에 내란과 계엄이 다시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드는 개헌이 되어야 한다”며 “내란 이전에는 대통령제·책임총리제·내각제와 같은 권력구조에 관한 것이 개헌의 주요 쟁점이었다. 내란 이후는 불법적 계엄을 어떻게 원천적으로 방지할 것인지가 더 시급한 과제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앞서 전직 국회의장·국무총리·당 대표들로 구성된 ‘나라를 사랑하는 원로모임’도 지난달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 또는 ‘내각제’로의 개헌을 촉구한 바 있다. 다만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는 개헌 논의에 소극적이다. 이 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도입을 주장했지만 개헌보다는 입법을 통해 추진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