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뒤편에 있는 암반활주로 건설 대상 부지. 박수현 기자 parksh@kookje.co.kr |
- 쇄빙선 이용 땐 왕복 한 달 소요
- 겨울엔 해빙때문에 접근도 못해
- 연중 311일 운항해 피로도 누적
- 기지 인근 암반활주로 건설하면
- 연구기간 80일→145일로 늘어
남극 장보고과학기지는 우리나라와 달리 남반구 여름에 해당하는 11~2월이면 하계대원들이 몰려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남극에서는 여름이 아니면 혹한에다 해빙(海氷)이 녹지 않아 쇄빙연구선의 접근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1년간 상주하는 신·구 월동대(각 16명)가 교체하는 시기에는 장보고기지 숙소동의 방이 모자라 일부 대원은 일시적으로 비상숙소동에서 생활할 정도다.
문제는 연구자들이 여름을 이용해 남극에 가려고 해도 교통편이 원활하지 않아 연구 차질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남극 장보고기지에 갈 수 있는 교통편은 전세 수송기나 쇄빙연구선 아라온호를 타는 두 가지가 있다. 항공편과 배편 모두 남극의 여름 몇 달밖에 이용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쇄빙선은 겨울철 두꺼운 얼음을 깰 수 없어 11~3월에만 접근이 가능하고, 비행기 역시 바다 위의 해빙(海氷)활주로가 녹지 않는 11월 한 달가량만 이용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정부와 극지연구소가 극지 강국의 기치를 내걸고 추진 중인 빙저호(얼음 밑 호수) 연구와 남극점 인근 제3 내륙기지 건설을 실현하려면 제2 쇄빙연구선 건조와 암반(육상)활주로 건설 및 항공망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장보고기지 뒤편 암반활주로를 건설하면 언 바다 위의 해빙활주로나 계곡 빙판 위 빙원(氷原)활주로와 달리 사계절 이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남극 대륙에는 현재 암반활주로가 없어 우리나라가 이를 건설하면 남극 활동영역 확대는 물론 국제협력의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남극 가는 항공료 997만 원
기자가 장보고과학기지에 취재 가면서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공항에서 장보고기지 인근 이탈리아 마리오주켈리 해빙 활주로까지 가는 데 7시간20분가량 걸렸고, 요금은 1인당 997만 원(7500유로)에 달했다. 기내식이라고는 샌드위치 2개와 초콜릿, 음료수가 전부였다. 비행기 안의 소음이 너무 심해 귀마개를 착용해야 했다. 기내 서비스 수준을 고려하면 요금이 엄청나게 비싼 편이다.
이마저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없다. 이탈리아에서 수송기(L-100·좌석 60개)를 임대해 11월 한 달간 5, 6회가량 띄우는데, 우리나라 극지연구소는 연초부터 이탈리아 측과 협의해 자리를 배정받아야 한다. 이탈리아 대원이 많이 타면 우리는 좌석을 적게 배정받을 수밖에 없다. 극지연구소는 한정된 좌석을 놓고 연초부터 여러 차례 부서 간 조율을 거쳐 탑승자 명단을 확정한다. 연구를 위해 남극에 가고 싶어도 좌석을 배정받지 못해 못 가는 경우가 많은 게 현실이다. 올해는 하계대원 66명이 5회에 걸쳐 항공기를 나눠 타고 장보고기지를 찾았다. 나머지 하계대원은 아라온호를 이용한다.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나 호주 호바트에서 장보고기지까지는 열흘 정도 걸린다.
■기지 뒤편 암반활주로 부지 가보니
해양수산부는 (주)유신에 의뢰해 '남극 장보고기지 활주로 건설 및 항공망 구축 기본계획수립' 기획연구를 최근 진행했다. 연구 결과 2단계(1단계 1500m, 2단계 300m)로 나눠 530억 원을 들여 활주로를 건설하면 비용 대비 편익(B/C)이 1.19로 경제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장보고 기지 인근에 암반활주로를 건설하고 항공망을 구축하면 남극 장보고기지 인력 및 화물수송이 아라온호만 이용할 때보다 65일 확대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아라온호만 활용하면 하계활동 기간은 80일인데 비해 독자적인 항공망을 구축하면 145일로 늘어난다. 응급환자가 발생해도 비상수송이 가능하다. 게다가 항공기의 인력 및 물자수송 분담이 늘면 아라온호의 부담이 줄어들어 본연의 해양연구 활용 기간이 증대되는 것도 또 다른 이점이다. 현재 아라온호는 1년 365일 중 2013년 311일을 운항하는 등 쉴 새 없이 남북극 과학기지에 물자와 인력을 수송하느라 피로도가 심각하다.
본지 취재진이 장보고기지 뒤편 암반활할주로(길이 1800m, 폭 45m) 건설 대상 부지를 둘러본 결과, 약간의 경사는 있었지만 남극에서 보기 드물게 평평한 지반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도 기지에서 수백 m밖에 떨어지지 않은 가까운 거리였다.
극지연구소는 내부적으로 한정된 예산 탓에 제2 쇄빙연구선 건조와 암반활주로 건설의 우선순위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한국해양대 남청도(기관공학부) 교수는 "세계 5위권 극지 강국으로 진입하기 위해 제2 쇄빙연구선 건조와 암반활주로 건설을 통한 항공망 구축을 함께 추진해야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남극 장보고과학기지=오상준 기자 letitbe@kookje.co.kr
※이 기사는 극지 진출 30주년을 기념해 부산시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