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6일 언론사 국장단을 초청해 '양적완화'를 언급했다. 박대통령은 이날 "이른바 '한국판 양적완화'를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야권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같은 날 "박 대통령이 양적완화가 정확히 뭔지 이해를 못하는 것 같다"는 날선 비판을 세우기도 했다.
1. 양적완화란
일반적으로 경기 부양 또는 시장에 낀 거품을 제거하기 위해 실시하는 정책으로는 통화 및 재정정책이 있다. 정부가 재정지출을 확대해 경기를 부양하는 방법이 있으며 '콜금리'라 일컫는, 중앙은행과 민간은행 사이의 금리를 조절해 시장의 통화량을 조절하는 통화정책이 있다. 또는 중앙은행이 지급준비율을 낮춰 민간은행이 중앙은행에 적립해야 하는 자금 규모를 줄여 민간의 통화량을 늘리는 방법 역시 전통적인 통화정책의 한 방법이다.
하지만 양적완화는 '시장을 통해' 자금이 풀어지는 전통적인 정책과는 차이가 있다. 대규모자산매입으로도 불리는 이 방법은 정부의 재정 여력이 받쳐주지 않는 상황 속에서 기준금리가 0%대에 근접해 더이상의 통화정책을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용하는 정책으로 통용된다. 중앙은행이 국채 또는 민간의 채권을 대량으로 매입하는 대신 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상 자산과 부채는 늘어난다. 이때 중앙은행이 대규모로 사들인 채권 이자가 변동하면서, 민간의 돈 흐름은 채권 이외에 주식이나 부동산 등으로 흘러 들어간다.
벤 버냉키 저서 '연방준비제도와 금융위기를 말하다'에서는 양적완화와 관련 다음과 같은 언급이 나온다.
"연방준비제도(FRB)가 국채나 정부지원기업의 증권을 사들여 대차대조표 상에 보유하게 되면 시장에서는 이들 증권의 공급이 줄어든다. 투자자들이 그 증권을 원한다면 낮은 수익률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결국 실제로 해당 증권의 이자율은 낮아지며, 투자자는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조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렇게 되면 회사채 등 증권의 가격은 올라가고 그 수익률은 낮아집니다. 결국 다양한 증권 전반에 걸쳐 수익률이 인하되는데, 이것이 대규모 자산매입 조치의 순효과다. 낮은 금리는 흔히 그렇듯이 경기 부양 및 진작 효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2. 양적완화를 시작한 국가는
양적완화의 출발지는 일본이다. 1990년대 호황기를 누렸던 일본은 이후 자산에 낀 거품이 급격하게 빠지며 디플레이션을 동반한 극심한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이에 따라 일본은 양적완화를 천명하며 경제를 살려보려 안간힘을 썼다.
2001년을 시작으로 2006년까지 40조엔의 채권을 일본중앙은행이 매입했다. 이후 '골디락스'라 불리는 세계적인 호경기가 시작되며 2006년 채권매입을 중단했다. 하지만 2008년 미국 주택시장의 거품이 빠지면서 불어닥친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번지자 일본은 다시 한 번 양적완화 카드를 꺼내들었다. 2010년부터 2011년 사이 101조엔 규모의 채권을 매입했다. 이어 2012년 채권 매입 규모를 확대한다는 방침을 정했으며, 아베정권이 들어서며 또다른 형태의 양적완화를 추진했다.
아베정권은 '무제한 통화공급'을 토대로 기업 구조조정을 주문했다. 통화량을 극적으로 늘려 경기를 부양하는 동시에 기업들은 임금을 올려 소비를 부양하자는 취지다. 단기적으로 경기 부양의 효과를 누리는 듯 하던 일본은 현재 정책 효과가 거의 사라지며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도입했다.
3. 양적완화, 미국 통해 알려지다
2007년 미국 주택시장에 대한 거품 우려는 2008년 현실로 이어졌다. 주택을 담보로 한 부실채권이 시장 전반에 퍼진 가운데 미국 주택 가격의 거품이 빠지자 대규모 금융 위기가 불어닥쳤다.
미국은 금리를 지속적으로 인하해 0%대 금리를 만들어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이어 미국은 대규모자산매입 카드를 꺼내들었다. 목표는 경기 '연착륙'. 불황을 타개하고 경기가 성장세로 전환하는데 자금을 쏟아부었다.
1차 양적완화는 2008년 11월 25일에 이뤄졌다. FRB는 1000억 달러 규모의 정부보증모기지채권(GSE direct obligations)과 5000억 달러 규모의 모기지유동화증권(MBS)을 매입했다. 본격적인 양적완화는 한 달가량 뒤인 12월 국채와 모기지 채권을 대규모로 매입한다고 밝히면서 이뤄졌다. 1차 양적완화는 2010년 1분기까지 이어졌으며 총 1조7000억 달러가 투입됐다.
2차 양적완화는 2010년 11월 6000억 달러의 추가 양적완화를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3차 양적완화는 2012년 9월 400억 달러의 주택담보부증권(MBS)를 사들이기로 결정하면서 시작됐다. 이어 같은해 12월 FOMC는 매달 450억 달러규모의 미국 국채를 추가로 사들여 매달 채권매입 규모를 850억달러로 확대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4. 한국형 양적완화?
박근혜 대통령은 언론사 간담회에서 '한국형' 양적완화를 언급했다.
정부가 아닌 중앙은행을 통한 채권 매입으로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양적완화를 통해 부실기업 구조정 자금을 마련하려는 것으로 분석된다. 새누리당은 앞서 총선 공약에서 산업은행이나 주택금융공사의 채권을 한국은행이 직접 사들이는 유럽 방식의 양적완화를 주장한 바 있다. 산업은행이 발행하는 산업금융채권으로 부실기업 구조조정 재원을 마련하는 동시에 주택금융공사가 발행하는 주택저당증권(MBS)으로 3~5년 수준의 가계부채 만기를 20년 이상으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우려의 시선이 적지 않다. 우선 1.5%대의 기준금리를 유지하고 있어 통화정책에 여유를 가졌다는 게 첫 번째 이유다. 또 양적완화 추진 자체가 경제가 어려움에 빠졌다는 '신호'를 줄 수 있어 대외 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다. 특히 산업금융채권 자체가 초우량채권으로 시장에서 원활히 유통되며 자금 조달 여력이 충분한데, 굳이 정부가 나서 이를 사들이는 것은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5. 한국형 양적완화, "넘어야 할 산 많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언급했던 양적완화 방법을 추진은 실현되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현행 한국은행법에서는 산업금융채와 MBS를 직접 사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은행법 개정이 필요하나, 야권에서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한은법 개정은 여야 기획재정위원들의 '협의'로 결정할 문제다"고 밝혔으며, 정부와 한은 사이의 독립성을 강조하며 "양적완화는 결국 현재의 책임을 미래에 떠넘기는 조처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정치권의 경제적책 전문가 사이에서는 양적완화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해칠 수 있으며 대외 신인도 하락을 불러올 수도 있다고 경계하고 있다. 이들은 양적완화보다는 추경예산 편성으로 산은과 주금공에 출자하는 게 더 나은 방법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민건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