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기자재업체 오후 5시께 퇴근
- 잔업 없어 산단 거리엔 적막감
- "정부 3년뒤 호황" 버티기 힘들어
지난 21일 오후 5시, 땅거미가 내려앉기도 전부터 공장들은 활기를 잃었다. 부산 강서구 미음산업단지의 상당수 조선기자재업체는 해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공장의 문을 닫았다. 일부 업체가 용접 작업을 이어갔지만, 오후 6시가 가까워지면서 거대한 기계음은 어둠 속에서 숨을 죽였다. 연신 스마트폰을 보면서 퇴근길 노선버스를 기다리는 공장 직원들의 어깨는 축 처졌다.
| |  |
| 지난 20일 오후 5시께 대부분의 조선기자재업체가 작업을 마무리해 썰렁한 부산 강서구 미음산단 일대 모습. 산단에 입주한 20여 조선기자재업체 중에서 극히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 공장의 직원은 오후 6시 이전에 퇴근길에 오른다. 민건태 기자 |
미음산단에서 조선기자재 업체를 운영하는 A 씨는 "2년 전 미음산단 조성 이후 입주했을 때는 업체들이 거의 매일 밤 9시, 10시까지 야간 잔업을 하면서 내는 기계소리와 함께 활력이 넘쳤다"며 "지금은 보통 오후 5~6시면 공장의 불이 꺼지고 말 그대로 휑한 적막함만 가득하다"고 말했다.
상황은 인근 녹산국가산업단지도 마찬가지다. 한국산업단지공단 자료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조선기자제 업체가 포함된 운송장비 부문의 고용 인원은 지난해 8월(3985명)과 비교해 19.8% 감소한 3195명으로 나타났다. 수출액 역시 862만 달러가량으로 지난해 8월(972만 달러)보다 11.3% 급감했다.
STX조선해양의 부도에 이어 불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조선 빅3'가 '수주 절벽'으로 치달으면서 부산지역 조선기자재 업체들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대형 조선사들이 따냈던 수주가 잇달아 취소되고 있다. 원래 16척이던 삼성중공업의 수주 물량은 현재 4척에 불과하며, 대우조선해양 역시 목표 물량의 15% 수주에 그쳐 그 여파가 조선기자재 업계로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 |  |
| 오후 5시가 넘자마자 공장 전등을 끄고 출입문을 잠근 미음산단 내 조선기자자재 업체. |
조선 경기가 다시 활황을 이어갈 것이라는 기대감도 지역 중소 조선기자재업체에는 현실에 와 닿지 않는다. 원양 선박 연료를 2020년까지 LNG로 대체해야 한다는 국제 규제안이 마련됐고, 국제해사기구(IMO)는 내년부터 선박평형수 관리협약을 시행할 방침이다. 이 협약이 시작되면 선박 내부로 들어온 선박평형수에 대한 처리설비를 모든 선박이 갖춰야 한다. 하지만 조선산업에 신기술이 적용되기까지 중소 조선기자재업체들은 버틸 여력이 없다. A 씨는 "정부는 조선산업이 3년 뒤 호황을 되찾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곳 업체 중 3년이나 버틸 수 있는 곳은 없다"며 "특히 은행권은 최근 '기술 평가'라는 것을 도입해 대출 문턱을 더욱 높였다"고 하소연했다.
미음산단의 조선기자재 업체들은 2014년 입주를 시작했다. 일반산단에 입주한 공장은 5년의 산업용지 매매 제한 기간에 묶인다. 불황에 빠진 조선기자재 업체들은 이 규제에 막혀 공장 문을 닫지도 못한다. 현행 규정은 5년 내 용지 매매를 하려면 용지를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과 같은 산업단지 관리기관에 넘긴 뒤 새로운 입찰자를 찾도록 하고 있다. 조선기자재 업종의 불황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기존 업체의 뒤를 이을 새 분양자가 나타나지도 않는다. 이에 따라 부산 강서구 일대 조선기자재 업체들은 '휴업'도 고민해야 할 처지다. 비용 절감을 위해 업체 측은 인력 구조조정도 서두르고 있다.
이에 대해 부산경제진흥원은 산업단지 용도의 중복 지정 등을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산단 내 특정 업종 지구 규제를 풀어 조선기자재 이외의 업종도 용지를 분양받을 수 있도록 허용하자는 의견이지만, 자칫 또 다른 '땅장사'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어 쉽지만은 않다. 부산경제진흥원 관계자는 "최근 계속되는 불황에 매매 제한 기간을 5년에서 3년으로 낮춰달라는 요구까지 쇄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민건태 기자 fastmkt@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