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회장, 취임 직후 자동차사업 지시
- 1995년 삼성자동차 부산공장 착공
- IMF로 법정관리 완성차 꿈 못 이뤄
- 2000년 르노 품에…'삼성'이름 남겨
- 삼성전기, 부산서 고용 최다 사업장
- 부산아시안게임 유치 등 지원 사격
- 6·25때 부산교대 부설초 잠시 다녀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과 부산·경남은 ‘자동차’로 깊은 인연을 맺었다. 고인은 6·25 전쟁으로 인해 초등학교를 여러 차례 옮기면서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등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고 이때부터 자동차의 매력에 빠져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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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지난 1997년 5월 12일 삼성자동차 부산공장을 방문해 시험차량을 시승하고 있다. 연합뉴스 |
고인의 자동차에 관한 관심은 부산에 본사를 둔 자동차 회사 설립으로 이어져 부산이 ‘자동차 도시’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됐다. 고인의 뜻에 따라 설립됐던 삼성자동차 후신인 르노삼성자동차와 삼성전기 부산사업장(자동차 부품 생산)의 현재 고용 인원은 8000명을 넘어선다.
■회장 취임 직후 삼성자동차 설립 지시
삼성그룹 내에 자동차 부문이 없었던 것을 아쉬워했던 고인은 그룹 회장 취임 직후였던 1987년 12월 그룹 비서실에 승용차 사업 진출 방안을 지시했다. 정부의 반대 등 우여곡절 끝에 1995년 3월 삼성자동차가 설립됐다. 삼성자동차는 본사를 부산으로 하고 강서구 신호산업단지에 공장을 설립했다. 당시 부산과 대구는 삼성자동차 유치에 열띤 경쟁을 벌였고 고인은 부산 시민의 열망에 따라 삼성자동차를 부산에, 1년 뒤인 1996년 8월에는 삼성중공업 상용차 부문을 독립시켜 삼성상용차를 대구에 설립했다. 삼성상용차는 2000년에 파산했다.
삼성자동차는 1998년 3월 중형 세단 SM5 판매를 개시했으나 IMF 외환위기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1년 3개월 뒤인 1999년 6월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법정관리 이후 르노그룹BV(르노 자동차 계열사)와 삼성카드가 합작해 르노삼성자동차(주)를 설립했다. 이후 2000년 9월 르노가 삼성자동차 승용차 부문을 인수해 현재에 이르렀다. 르노삼성은 국내 고용 인원 4000여 명 가운데 부산에서만 2300여 명을 고용한다.
고 이건희 회장은 삼성자동차 부산 설립과 동시에 삼성전자 계열사인 삼성전기 부산사업장(공장)을 1995년 착공해 1997년에 완공했다. 삼성전기 부산사업장은 부품 조달을 위해 삼성자동차 부산공장(현재 르노삼성) 옆인 부산 강서구 녹산공단에 설립됐다. 삼성전기는 처음 자동차 부품에서 업종을 바꿔 기판, 카메라 모듈 등을 만들었는데, 현재는 MLCC(적층 세라믹 콘덴서·전자기기에 들어가는 전류 전달 부품)를 주로 생산한다. MLCC에 고인의 후계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깊은 관심을 보여 최근 삼성전기 부산사업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현재 삼성전기 부산사업장은 고용 인원이 6000명가량이다. 삼성전기에 따르면, 국내 업체로는 부산에서 고용 규모가 가장 큰 사업장이다.
■스포츠 마니아 이건희 부산에서도 ‘인기’
스포츠 마니아이기도 했던 고인은 1995년 부산아시안게임 유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고인이 이끌던 삼성그룹은 부산아시안게임 유치 활동에 필요한 경비 지원은 물론이고 1995년 5월 국내에서 열린 아시아올림픽평의회 총회 등 각종 행사에 필요한 인력·차량, 경기시설 지원 활동을 펼쳤다. 국내 대기업 가운데 처음 나선 곳이 삼성그룹이었다. 이는 삼성자동차 부산 유치 결정 당시의 약속을 이행하는 차원이었다는 게 그룹의 설명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현대자동차가 후원했다면,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은 삼성그룹이 지원한 셈이다. 앞서 2001년 부산지역 시민단체들은 부산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 새 위원장 인선에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이었던 고인을 강력 추천했다. 추대 작업은 무산됐지만 고인에 대한 부산지역의 열망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고인은 삼성중공업 상용차 부문을 기반으로 자동차 사업에 진출하려고 했을 정도로 삼성중공업에도 깊은 관심을 뒀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중공업보다 전자 부문에 주력, 삼성전자는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이달 기준으로 삼성중공업의 삼성전자 지분은 15.98%다. 고인의 삼성전자 10월 기준 지분은 3.68%다.
고인은 어린 시절 부산과 경남에서 교육을 받았다. 6·25 전쟁 때 북한군을 피해 경남 마산에서 초등학교를 잠시 다녔고 부산교육대학교 부설 초등학교를 5학년까지 다니다가 일본으로 유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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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옥재 기자 littleprinc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