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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서 출산한 아내와 대원, 코로나 탓 먼발치 상봉만

장보고기지 김일찬 월동대장 남극 여정·연구활동 인터뷰

  • 임은정 기자 iej09@kookje.co.kr
  •  |   입력 : 2021-02-08 19:38:35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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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라온호 중간 하선 없이 항해
- 18명 체류 기후·대기 등 연구
- 보급 안돼 상한 귤조차 그리워
- 7주년과 설 겹쳐 명절음식 준비
   
지난해 10월 31일 아라온호를 타고 남극으로 향한 장보고과학기지 8차 월동연구대원들이 최근 기지 앞에서 단체 촬영을 하고 있다. 김일찬 월동연구대장 제공
남극과학기지(장보고과학기지·세종과학기지) 월동연구대가 국내 유일의 쇄빙연구선 아라온호를 타고 지난해 10월 31일 전남 광양항을 출발(국제신문 지난해 11월 3일 자 14면 보도)한 지 100일이 됐다. 항공기를 통해 월동연구대 교대가 이뤄지던 예년과 달리 이번에는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아라온호를 타고 남극으로 들어갔다.

   
오는 12일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설립 7주년을 맞아, 장보고기지 8차 월동연구대 김일찬(사진·53) 대장과 지난 7일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남극 항해의 여정과 코로나로 달라진 남극 연구의 어려운 점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출항 20여 일 만에 인후통을 앓은 승무원 때문에 혼비백산했던 일, 뉴질랜드 친정에서 아이를 출산했다가 코로나로 발이 묶인 아내와 아이를 배가 잠시 정박했던 뉴질랜드 항에서 멀리서나마 상봉했던 대원의 사연 등. 인터넷 연결이 원활하지 못해 6차례에 걸쳐 답변을 보내온 김 대장은 그간의 여정을 생생하게 전해 주었다. 인터뷰는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장보고기지 대원들이 남극에서 해양조사를 하고 있다.
-배를 타고 남극에 가는 첫 항해길이었다. 얼마 만에 도착했나.

▶지난해 12월 4일 장보고기지 앞바다에 정박했으니, 35일 만이었다. 이곳에서 7차 월동대원들을 태운 아라온호는 칠레 푼타 아레나스를 경유해 20여 일을 더 항해한 뒤 세종과학기지에 닿았다. 세종기지 인근에서 보름간 연구항해를 한 뒤, 세종기지에서 교체하는 월동대원을 태운 배는 45일 정도 항해를 마치면 광양항에 도착(3월 18일 예정)하게 된다.

   
남극으로 향하는 아라온호에서 대원들이 선상 음악회를 열었다.
-중간 하선이 없었다고 들었다. 오랜 선상 생활에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 있는 리틀턴 항에서 유류보급과 연구장비·일부 신선식품을 선적하기 위해 정박했지만 하선 금지와 현지인 접촉 통제 등이 철저했다. 이번 여정은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월동대원에게 인생의 첫 경험일 만큼 긴 항해였다. 멀미가 심한 대원들은 식사를 못 하고 며칠씩 누워서 지내기도 했다.

-아찔했던 순간이 있었나.

▶출항 후 20일쯤 지나 승조원 한 명이 열이 나고 인후통 증세를 호소해 서둘러 코로나 검사를 했다. 확진 판정이 나면 즉시 인접국가로 뱃길을 돌려 의료시설로 옮겨야 하고, 최악의 경우 전원이 국내로 돌아가야만 했다. 다행히 음성이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전경.
-긴 항해 동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세종기지에 파견되는 월동대원 중 뉴질랜드에 처가를 둔 대원이 있었다. 부인이 처가에서 둘째를 출산했는데, 코로나로 한국에 오지 못한 상황에서 천만다행으로 아라온호가 유류 선적을 위해 뉴질랜드 항에 정박했다. 신생아를 태운 차가 나타나자 대원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아빠 대원은 배 위에서 엄마 품에 안겨 먼발치에 있는 둘째를 처음 마주했다. 조금이라도 가까이에서 자식을 보고픈 아빠는 배의 제일 끝단에서 몸을 한껏 앞으로 숙였지만, 아이의 손도 못 잡아보고 아쉬운 상봉을 마쳐야만 했다. 그 장면을 본 대원 모두가 울컥했다.

   
남극 장보고과학기지에서 한 대원의 생일 파티 모습.
-기지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나.

▶여느 해 같았으면 남극 하계기간인 지금 수십 명의 국내·외 연구자가 기지를 방문하는데, 이번에는 최소의 필수연구자 6명이(1년간 머무르는 월동대원과의 접촉을 막기 위해) 기지가 아닌 비상숙소에서 현장연구를 하고 철수했다. 현재는 18명의 대원만 기지에 체류하고 있다. 월동대에는 총 6명의 연구대원(이외 총무반, 유지반)이 있으며, 기후, 대기, 생물, 천문, 지구물리, 해양연구활동을 수행한다.

기지 인근의 멜버른 활화산과 테라노바만 근처에서 발생하는 지진활동 관측, 태양활동 변화가 고층대기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기 위한 고층대기 및 전리권 관측, 극지역 고층대기 빙하 연구를 위한 빙하 추적모니터링, 조류와 해양포유류 및 육상 지의류의 생태계 연구와 동물행동 연구, 전 지구적 기후변화 원인물질들의 남극 유입 양상을 분석하기 위한 모니터링 등을 수행한다.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8차 월동연구대원들의 단체 사진.
-남극의 환경변화 중 특별히 눈에 띄는 게 있나.

▶기후변화로 인해 기지 주변에서도 많은 변화가 관측되는데, 특히 기지 앞바다에 길게 늘어져 있는 캠벨 빙하(Campbell Glacier)가 쉴새 없이 녹아내려 매일 모양이 바뀌고 있다.

-일과는 어떤가.

▶오전 8시30분 회의로 하루가 시작되는데 수시로 급변하는 기상 때문에 야외 활동은 탄력적으로 운용된다. 날씨가 좋으면 휴일에도 근무하고, 여름에는 해가 지지 않기 때문에 야간근무로 이어진다.

일과 후에는 운동을 하거나 가족들과 연락을 주고받기도 한다. 요즘같이 해가 지지 않는 시기에는 주변 산책도 한다. 인터넷이 자주 끊겨 실시간 TV 시청은 안 되고, 다운로드된 영상물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대원들이 시설 보수작업을 하고 있다.
-극지방에서의 식사는 어떻나.

▶냉동 식재료가 대부분이다. ‘무얼 먹는가보다는 얼마나 맛있게 요리된 것을 먹느냐’가 큰 관심거리라 조리대원의 부담감이 엄청나다. 과일, 채소 등 일부 신선식품은 월동 초기 다 먹지 않으면 상해서 버린다. 추가 보급도 없는 지금은 상해서 버린 귤 한 개가 사무치게 그립다.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인근에 있는 이탈리아 기지 관계자들이 철수하면서 기지 물품을 장보고기지로 실어나르고 있다.
-오는 12일이 기지 준공 7주년이다. 행사가 계획돼 있나.

▶보통은 이웃기지 사람들을 초대하고 많은 하계연구원도 함께 하겠지만, 올해는 월동대원들만의 잔치가 될 것 같다. 7주년 기념일이 마침 설이어서 설음식을 준비하고 준공기념 얼음 조각을 만들어 조촐하지만 뜻 깊게 보낼 계획이다.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전경.
-남극에서의 많은 활동이 남아 있다. 각오를 말씀해 달라.

▶내년에도 아라온호를 이용한 교체가 된다면, 8차 대원들은 11개월 후에나 철수해 한국에 내년 3월에 도착하게 된다. 운 좋게 비행기를 타면 11월 말이면 돌아갈 수도 있다. 머지않아 남극은 해를 볼 수 없는 극야가 시작되고 영하 30도 이하가 돼 야외 활동이 거의 불가능해진다. 해가 없는 데서 제한된 생활을 하는 탓에 대원들의 건강과 심리상태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걱정이 많다. 지금으로서는 악천후에서도 연구활동과 필수시설 유지 및 보수를 해야 하는 대원들의 안전사고 발생을 막는 것이 가장 큰 과제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장보고기지의 월동대원으로서 자긍심과 사명감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해 임무를 완수하겠다.

임은정 기자 iej09@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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