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향에 귀농한 김호규 상임대표
- 농주 만들려 밀 재배한 것이 시작
- 농민 515명이 연간 900t 생산
- 조합, 합천군과 정부 공모에 도전
- 생산단지·출하처 등 확대 계획도
- 가공품 개발·재배 기계화도 나서
경남 합천에서 생산된 밀이 ‘우리 밀 살리기 운동’의 시작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국내산 밀이 사라지고 수입산 밀이 시장을 장악했던 1987년 합천군 초계면 대평마을 들녘에서 처음으로 국내산 밀 종자 확보와 함께 재배가 시작됐다. 이듬해 합천에서 생산된 밀은 경남지역 ‘우리 밀 살리기 운동’의 실마리가 됐고, 3년 뒤에는 전국적인 운동으로 이어졌다. ‘우리 밀’의 산실인 합천지역 재배농가는 2006년 합천우리밀영농조합법인을 설립, 지역의 대표적인 기업형 농업회사로 발돋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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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천우리밀영농조합 김호규 상임대표가 밀 종자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
■밀로 빚은 농주
국내 농촌 들녘에서 자취를 감췄던 밀이 합천지역에서 시작된 것은 우연이었다. 합천우리밀영농조합법인의 김호규 상임대표가 도시 생활을 접고, 고향인 초계면으로 돌아와 선배 부친이 즐겼던 밀로 빚은 농주를 만들기 위해 밀을 재배한 것이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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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천읍 ‘빵굽는마을’에서는 우리밀을 원료로 한 식빵, 밤식빵, 마늘빵 등을 만들어 시범 판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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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첫 수확으로 만든 밀가루는 생활협동조합인 경남 한살림에 전량 납품되면서 경남지역 ‘우리 밀 살리기 운동’으로 이어졌다. 합천에서 밀을 재배한다는 소문은 전국에서 종자를 구하려는 농민의 발길을 끌었다. 이후 합천에서 생산된 ‘우리 밀’은 1990년 본격적인 종자 보급 운동과 함께 1991년 11월 서울 명동성당에서 ‘우리밀 살리기 운동본부’ 창립의 결실을 맺게 된다.
이처럼 ‘우리밀’이 전국적인 호응 속에 확산한 배경은 ‘식량 안보’에 대한 경각심과 함께 1%에도 못 미치는 국내산 밀의 자급률에 있다. 2020년 기준 국민 1인당 연간 밀 소비량은 33㎏ 정도로, 하루에 한 끼 밀을 섭취하는 셈이다. 하지만, 국산 밀 자급률은 2020년 기준 0.8%에 불과하다. 반면 같은 해 식용 밀 수입량은 250만 t으로, 쌀 소비량(350만 t)을 턱밑까지 쫓고 있다.
낮은 자급률의 심각성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유럽의 빵 공장’이라고 불리는 우크라이나와 세계 최대 밀 수출국인 러시아 간의 전쟁은 국제 곡물 가격의 폭등을 일으켰다. 전쟁 전보다 밀 가격은 21%, 보리는 33%, 일부 비료는 40%가 폭등했다. 국내 사정도 마찬가지다. 지난 2월 기준 t당 수입곡물 가격은 2013년 5월(388달러) 이후 8년 9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밀의 경우 지난달 말 기준 수입량은 42만9000t으로 수입금액은 1억7245만 달러, t당 가격은 402달러에 달했다. 밀 수입단가가 400달러 선을 넘은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다.
■우리 밀의 산실 합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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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합천군 초계면 합천우리밀영농조합 산물처리장 전경. 합천군 제공 |
농가에서 개별적으로 재배된 합천의 밀은 1993년 합천군우리밀생산자위원회 창립과 함께 기업 형태를 갖추게 된다. 이후 1995년 우리밀 합천공장이 완공됐다. 이어 2006년 합천우리밀영농조합법인 출범과 함께 ㈜우리밀과 계약재배로 생산한 밀을 전량 수매 납품함으로써 농가는 생산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현재 합천우리밀영농조합법인에는 재배농 515명이 181㏊를 계약재배해 연간 900t의 밀을 정부 수매와 대형 판매처에 납품하고 있다.
‘우리밀’ 시배지인 초계면 들녘 한가운데 우뚝 선 우리밀 산물처리장은 2008년부터 2014년까지 사업비 38억 원을 투입해 만들었다. 밀 3000t을 건조·저온저장할 수 있는 시설이다. 부대시설로는 대형 사일로와 선별장 건조기 국수제조시설 제분시설 등을 갖췄다. 이 밖에 체험관 세미나실 숙소 등을 설치해 숙박과 체험이 가능한 게 특색이다.
합천 ‘우리밀’은 벼 후작으로 논에 재배함으로써 연중 물 관리가 가능해 단백질 함량이 높아 품질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농촌진흥청에서 개발된 우리밀 품종 ‘황금알’ 시범포를 지난해부터 1㏊씩 재배해 지역적응성 시험을 하고 있다. 황금알 품종은 기존 품종보다 단백질 함량이 14% 정도로 높아 제빵 특성이 우수하다.
■국내 밀 자급률 5%의 시작
정부는 2025년까지 밀 자급률을 5% 달성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지난해보다 41% 늘린 예산 238억 원을 들여 밀 종자부터 생육 관리 수확 수확 후 관리 소비 등 전반에 걸쳐 기반 확충에 나선다는 복안이다. 지난 2월에는 박병홍 농촌진흥청장이 합천우리밀영농조합을 방문, 재배 농가와의 간담회를 통해 ‘우리밀’의 계속 육성을 약속하기도 했다.
이 같은 정부 방침에 합천우리밀영농조합을 비롯한 합천군과 재배 농가도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합천군과 조합 측은 협력을 통해 올해 정부 공모 사업 3억 원을 유치해 산물처리장 건조기 교체와 품질분석기를 확충한다는 방침이다. 우리밀 계약재배 확대를 통해 생산단지도 늘린다. 이를 위해 우량 품종의 정부 보급종 종자를 확보하고, ㈜우리밀과 아이쿱생협 등 출하처도 늘려 나간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황금알 품종 재배단지 확대 조성과 함께 밀가루 빵 짜장면 국수 등 가공품 개발에도 나선다. 또 농가 고령화와 일손 부족에 대응해 파종부터 수확까지 기계화를 통한 노동력 절감 등 ‘우리밀’ 시배지 농업기업으로서의 입지를 굳힌다는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