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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프런티어 해양인 열전] <9> 해양건축 선두주자 조형장 건축사

파도 곡선 그리는 그의 손놀림…21세기 ‘바다의 문명’ 짓다

  • 김정하 한국해양대 글로벌해양인문학부 교수
  •  |   입력 : 2022-05-09 19:43:22
  •  |   본지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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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사 11년 차에 해양건축 관심
- 영도 연안발전플랜 설계 등 참여
- 행복한 도시어촌 청사포 만들기
- 경관디자인대전 대통령상 쾌거

- 해양도시 자처한 부산임에도
- 내세울 만한 해양건축물 없어
- 도시 재구축은 시대적 소명
- 발목 잡는 관련법 개정 필요

바다를 다시 만난다. 금년 4월 잇달아 발표된 부산·울산의 해상도시, 해저도시 건설계획에 나라 안팎의 관심이 뜨겁다. 나누고 가르는 육지문명이 아니라 잇고 어우러지는 21세기 해양문명 시대에 어울리는 기획이다.

■IMF 금융위기 이후 해양건축 ‘열공’

부산시 남구 감만동 건축사사무소 ‘메종’ 작업실에서 조형장 건축사가 펜으로 그리고 있다. 김정하 교수 제공
조형장(59) 건축사사무소 ‘메종’ 대표는 어려서 보아온 바다를 36세에야 다시 만났다. 11년간 건축사로 일하다가 ‘영도 연안발전 장기플랜’ 설계에 참여하면서부터였다. “부산의 건축사라면 응당 해양건축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프로젝트 책임자 한국해양대 이한석 교수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때마침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위기와 매너리즘, 무기력에 빠져있던 그에게 ‘해양건축’은 구원의 메시지였다. 다행히 바다는 언제나 곁에 있었다.

하지만 모처럼 재회한 부산의 바다는 실망스러웠다. 2003년 국제신문 연재물 ‘가고 싶은 해변’ 자문단으로 돌아본 해변 일부는 상가와 모텔에 점령된 채 쓰레기로 뒤덮여 있었다. 도처의 항만과 시장, 군사시설은 시민의 접근과 휴식, 사색을 방해했다. 절경을 훼손하고 전망을 사유화한 어떤 공간은 쾌적함과 심미성은커녕 안전이 염려스러울 정도였다.

뜻을 세운 조형장 건축사는 1999년 한국 최초로 해양건축 전공을 개설한 한국해양대 대학원의 늦깎이 대학원생이 되었다. 연구에 몰두하는 한편 한국해양대와 일본 대학의 국제워크숍에 참가해 곤도 타케오 교수 등 전문가와 토론해가며 안목을 넓혔다. 내쳐 해양건축 모델을 찾아 일본으로 건너가 30도가 넘는 여름날 발이 부르트도록 걸으며 도처를 둘러보았다. 요코하마 ‘미나토미라이21’ 건설 현장과 도쿄 구도심 해양 개발 현장에서 얻은 소감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바다와의 완충공간이자 친수공간으로 조성된 해양공원에 개항기의 적(赤)벽돌창고와 첨단 랜드마크 빌딩이 이루어낸 신구(新舊) 조화가 근사했다. 워터프런트 건설공사에서의 첫 삽질을 훗날의 트램과 자기부상열차 설치 절차와 일치시키는 작업 진행도 절묘했다. 이어 유럽을 찾아가니 네덜란드 독일 스웨덴의 수상가옥과 영국의 ‘피어 건축’이 줄지어 눈앞에 나타났다. 바다의 정취를 살린 그 건축물을 보니 “가장 멋진 건축은 자연에 녹아드는 것”이란 건축가 김중업의 말이 절로 떠올랐다.

조형장 건축사에게 창작 의욕이 솟구쳤다. 조경일과 도명자의 1남 2녀 중 장남으로 대구에서 태어나 부산으로 이주한 그는 다대포에서 게와 고둥을 잡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무엇을 하든 부친의 열렬한 응원을 받던 조형장의 장기는 만화 그리기로 초등학교에선 서예부, 중고등학교에선 미술부와 야구부, 대학에선 사진반을 드나들었다.

중학교 시절 기술 교사에게서 들었던 “대학에는 건축학과가 있다”는 말을 소중하게 기억했던 그는 동아대학교 건축공학과에 진학했다. 학과에서 배우는 내용마다 심취했던 그는 재학 중인 1987년 부산건축대전에서 ‘특선’ 수상의 실력을 발휘했다. 건축사 자격을 획득한 1995년엔 30대 초반에 소속 회사의 이사가 되었고, 2000년엔 건축사무소 ‘메종’을 설립했으며, 2013년엔 해양건축에 관련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동안 부산건축사회 미래전략위원장, 부산건축제 프로그래머, 건축사신문 편집주간으로도 활동했지만 그는 단연 ‘해양건축’ 신봉자이자 전도사였다. 그로부터 감화받은 후배들에 이어 최근 경성대 건축학과에 재학 중인 아들 조현호도 해양건축가가 되겠다고 나섰다.

■바다 곡선미 살려 토목기술과 조화

부산항대교 부근 공유수면에 해양건축물 설치를 설계한 ‘거점형 부산 하버마리나 항만개발 마스터플랜’. 이 설계는 여러 제약으로 아직 실현되지 못했다. 조형장 건축사 제공
지난 4월 21일, 감만동 작업실에서 만난 조형장 건축사는 인터뷰 내내 손에 든 펜으로 뭔가를 그렸다. 종이와 연필로 아이디어를 디자인하는 ‘그림으로 사고하기(graphic thinking) 훈련’의 버릇이었다. 그즈음 그는 송도부터 남항을 지나 영도다리에 이르는 해역에서의 아트공원과 수상문화체험공간, 역사문화존 등을 구상한 ‘부산 남항 수변공간 계획 마스터플랜’을 마무리하는 중이었다. 그 손놀림에 그의 머리에 떠올랐던 해안선과 파도의 곡선, 바람의 움직임, 조개의 형태가 지면을 채워나갔다. 푸르고 흰 색조 위에 숲과 대지를 연상시키는 올리브그린과 짙은 브라운으로 악센트가 덧입혀지자 우아하면서도 참신한 해양건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조형장 건축사가 설계한 작품이 ‘부산 남천항 마리나복합시설 기본계획’과 ‘부산항 거점형 마리나 복합시설 마스터플랜’, ‘북항 조형등대 실시설계’, 광안리해수욕장의 소라 화장실 등이었다. 그 작품으로 그는 바다가 만들어낸 곡선을 잘 살리면서도 토목과 기술을 두루 조화시켜 안전성 조형성 기능성을 갖춘 해양건축을 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런가 하면 부산대 우신구 교수 등과 함께 참여한 ‘행복한 도시어촌 청사포 만들기’ 사업에서는 주민과 공무원, 연구자와의 협치(協治)를 성공적으로 이루기도 했다. 어항시설 설치와 어촌경관 보존이 돋보이는 이 사업은 “커뮤니티를 회복하고 접근성 인지성 접근성 편의성을 증대한” 공로로 ‘2017 대한민국 국토경관디자인대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

■랜드마크 만들려면 법 고쳐야

조형장 건축사가 심혈을 기울여 설계한 ‘부산시 플로팅 아일랜드 조성계획’ 등 상당수 작품은 마스터플랜 단계에만 머물러 있다. 그러고 보니 서울에는 ‘세빛둥둥섬’, 제주에는 선상 호텔이 들어선 다음인데도 ‘해양도시’를 자처하는 부산에선 내세울 만한 해양건축물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에 대해 지역의 건축전문가들은 “모처럼 해양건축의 기회가 와도 비전문가와 외지건축가의 중구난방에 행정기관의 간섭으로 좌절, 왜곡되기 일쑤”라고 입을 모았다.

이한석 교수는 해양건축을 ‘시대적 소명’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바다의 소중함과 가치를 재발견하고 워터프런트, 친수공간, 해상·해중주거 개발로 해양관광 활성화와 도시 재구축을 이뤄야 한다. 빈발하는 해수면 상승 등의 재난에서 연안 도시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해양건축 발전은 한시바삐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해양대 이명권 교수 역시 2030년 부산엑스포를 유치할 경우 그 개최 부지 50% 이상은 해상에 마련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아울러 그는 녹과 부식 염려가 없는 유리섬유 신소재(GFRP) 함체(艦體) 개발 등이 해양건축을 새로운 산업으로 부상시킬 것이란 전망도 내놓았다.

하지만 그런 요청과 기대에 비해 해양건축은 아직 법적 토대가 부실하다. ‘건축물’을 “토지에 정착하는 공작물”로 보는 한국의 현행 건축법상 해상·해저 도시에는 지번(地番) 부여가 불가능하다. 그로 인해 재산권이 없으니 금융계나 산업계도 관심을 두고 지원하기 어렵다. 물에 띄우는 플로팅 건축물마저 항만법, 공유수면관리법, 선박법을 총동원해야 가까스로 ‘공유수면 점사용’이 가능하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해양건축이 부진한 만큼 관련법 개정을 비롯해 지역사회의 관심과 지원, 인력 양성 등 과제가 쌓여 있다고 지적한다.

“바다가 돌아왔다!” 지난 5일 부산항 북항 재개발 현장의 시민휴식 공간 일부가 개방되자 부산시민이 터뜨린 환호성이다. ‘부산’하면 ‘바다’를 떠올리던 외지인은 의아했을 터이다. 난데없이 바다가 돌아왔다니, 그러면 예전 ‘바다’는 무엇이고 돌아온 ‘바다’는 무엇인가. 이제라도 지역 정체성을 담은 그럴듯한 해양건축물을 랜드마크로 지닌 해양도시의 출현을 기대해본다.

▶도움말씀 주신 분 = 이한석 한국해양대 교수, 이명권 한국해양대 교수, 우신구 부산대 교수, 박창록 ㈜OCEANIC 대표, 유상훈 애드아키건축사사무소 대표

※ 공동 기획=국제신문·한국해양수산개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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