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 러시아가 유럽연합(EU)에 대한 가스공급을 전면 중단하면 부산 울산 경남의 주력산업인 조선·자동차·철강 등의 생산에 차질을 빚을 것으로 우려된다. EU는 전체 에너지 소비의 약 24%를 천연가스에 의존하고 있는데, EU가 생산하는 핵심 자본재와 중간재를 대체 생산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천연가스 가격이 오르면 생산원가 부담이 급증하는데다 전기·가스요금 추가 인상으로 인한 물가상승 압력도 존재한다.

독일 등 유럽 주요국가로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파이프라인 ‘노드스트림1’. 연합뉴스

한국은행 조사국 동향분석팀 김남주 차장 등은 15일 ‘러시아 가스공급 중단 관련 EU 생산차질 및 국내산업 리스크 점검’ 보고서에서 “러시아의 EU 가스공급 전면 중단이 현실화될 경우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높고 해외 공급망 충격에도 상당 부분 노출된 우리 경제에도 상당한 리스크 요인이 될 것”이라며 “러시아의 가스공급 중단에 따른 경제충격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수급안정 노력을 강화하는 한편 우리 경제에 영향이 큰 수입 품목들을 중심으로 선제적인 재고 확보, 수입선 다변화, 해외 공급망 정보 확충·공유 등에 더욱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은 자료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 되면서 EU에 대한 러시아의 가스공급 차질이 심화될 경우 천연가스 의존도가 높은 유럽 경제의 생산차질 및 수요 둔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EU는 전체 에너지 소비의 약 24%를 천연가스에 의존하고 있으며, 천연가스 사용량의 36%가 러시아에서 들여오는 물량이다. 이달 1~12일 러시아의 EU 가스공급 규모(일평균)는 지난해의 20% 수준까지 감소하는 등 겨울철 러시아의 EU가스공급 전면 중단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서는 진단했다.

러시아로부터 가스공급이 끊기면 향후 1년간 EU 경제성장률은 0.4~2.6%포인트 하락하고, 산업 생산차질도 클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산업연관 분석에 따르면 EU성장률이 1%포인트 하락하면 우리나라의 EU에 대한 수출은 1.24%포인트, 총수출은 0.19%포인트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조선 산업의 경우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의 선박엔진·부분품, 자동위치유지장치(DPS) 등은 대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차량용 반도체 점유율 1, 2위 기업인 독일 인피니온과 네덜란드 NXP의 생산이 차질을 빚으면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 수급불균형이 심화돼 국내 완성차 생산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우려된다.

환율급등·수요부진에 이어 태풍 힌남노로 피해를 입은 철강 산업의 경우, 전기요금 인상이라는 악재까지 겹치면 원가 부담 증가가 불가피하다. 전기로를 사용하는 만큼 생산비용에서 전기요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국내 주요 반도체 기업이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반도체 제조용 장비(EUV, 극자외선 노광장비) 의 세계 유일 생산업체인 네덜란드 ASML사의 경우, 부품으로 사용되는 광학기기를 독일 칼자이스사로부터 독점 공급받고 있는 상황이다. 독일 부품이 공급차질을 빚으면 네덜란드 반도체 제조용 장비 생산 차질로 직결되는 셈이다. 반도체 장비 수입이 우리 경제의 생산능력(설비투자)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EU에서 생산차질이 발생하면 국내 설비투자가 제약을 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다만 EU 의존도가 높은 일부 기계, 의약품, 식품의 경우에는 대체하는 것이 비교적 쉬워 EU 공급감소의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EU국가별 수입규모, 수입대체 가능성, EU 역내 글로벌 가치 사슬(GVC) 노출 등을 감안할 때 EU국가 중 독일의 생산차질이 국내 산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