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밀저장대 없으면 더 빨리 포화 전망
- 한수원, 규모 늘려 급한 상황 완화시도
- 고준위특별법 국회 처리 늦어질수록
- 건식저장시설 운영 기간 늘어나지만
- 탈핵단체 “법 통과땐 영구 핵폐기장화”
- 법안 폐기론 제기하며 첨예한 대립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추진 중인 ‘고리원전 내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 설치’ 사업이 우려 속에 본격화했다. 특히 한수원이 시설 규모를 애초 계획보다 더 확장하려는 방침을 시사해 탈핵·환경단체 반발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특별법(이하 고준위 특별법)’ 제정을 둘러싼 찬반양론도 엇갈린 상황이어서 한동안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던 원전 이슈가 부산 울산을 중심으로 다시 커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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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리원전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
■핵연료 포화에 시설 확장 시사
9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한수원은 지역 시민단체 반발에도 지난 2월 이사회에서 ‘고리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 건설 기본계획안’을 의결했다. 이후 주민 설명회 등을 개최했고 8개월 만에 용역 입찰을 마치며 본격적인 설계 절차에 돌입했다. 현재 고리원전 습식저장시설(수조에서 사용후핵연료 냉각)에 보관 중인 사용후핵연료가 포화 상태에 이르고 있어 추가로 건식저장시설(공기 중 냉각) 건설을 서둘러야 한다는 게 정부와 한수원 판단이다.
국민의힘 정동만 의원과 산업부 자료를 보면 고리원전 내 전체 사용후핵연료 포화율은 지난 6월 말 기준 88.4%에 달했다. 이는 국내 원전 중 가장 높은 수치다. 이 비율은 2032년 100%가 된다. 이는 사용후핵연료를 더 촘촘히 배치하도록 돕는 조밀저장대 설치를 가정한 전망이다. 설치하지 않으면 불과 5년 뒤인 2028년 꽉 차게 된다.
한수원이 건식저장시설 부지 규모를 애초 3만3000㎡에서 4만6000㎡까지 확장할 가능성을 내비친 것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다. 한수원은 “미국 원전 부지 내 건식저장시설의 구조물이나 기기, 계통 등을 참조해 (고리원전 건식저장시설을) 건설할 것”이라며 ‘안전 최우선’ 방침을 재차 강조했다. 중간저장시설이 건설되면 건식저장시설에 있는 사용후핵연료를 지체 없이 반출한다는 게 정부 계획이다.
하지만 탈핵·환경단체는 중간 및 영구저장시설 부지 선정이 지난 수십 년간 풀지 못한 국가적 난제여서 고리원전이 사실상 ‘영구 핵폐기장’이 될 것으로 우려한다. 이런 상황에서 건식저장시설 규모마저 확대되면 반발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고준위 특별법 제정 최대 변수
고리원전 건식저장시설 설치 문제는 정치권이 추진 중인 ‘고준위 특별법’ 관련 이슈와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법 처리가 지연될수록 중간 및 영구저장시설 부지 선정 절차가 늦어져 건식저장시설 운영 기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국회에는 총 3개의 고준위법(국민의힘 김영식·이인선 의원, 더불어민주당 김성환 의원 각각 발의)이 계류돼 있다. 사용후핵연료 안전 관리와 영구저장시설 부지 선정 절차 등 내용이 공통으로 담겼다. 그러나 일부 각론에서는 여야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린다.
김영식·이인선 의원은 고리원전 부지 내 건식저장시설 용량을 ‘원전의 운영 기간 또는 운영 허가를 받은 기간 내 발생량’으로 정의했다. 이는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을 전제로 한 것이다. 반면 김성환 의원은 ‘원전의 설계 수명 기간 내 발생량’으로 한정했다. 설계 수명이 끝나면 저장시설 용량도 늘릴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3개 법안 모두에 ‘사용후핵연료 영구 처분을 위한 부지 선정 절차 및 일정’이 담겼다는 점이다. 이는 여당 법안이든 야당 법안이든 국회 통과가 이뤄지지 않으면 고리원전 건식저장시설 운영 기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의미한다. 다만 탈핵단체는 특별법 제정 자체에 반대한다. 중간 및 영구저장시설 부지 선정 문제의 어려움을 고려할 때 법이 제정되면 오히려 ‘고리원전=영구 핵폐기장화’ 근거만 확고해진다는 이유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