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은 다 자라서도 주기적으로 허물을 벗는다. 바닥에 쓸리고 쓸려 딱딱하게 굳어가는 허물을 제때 벗지 못하면 그 안에 갇혀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푸른뱀의 해’ 을사년을 맞은 부산 경제는 두터운 허물을 벗어내야 할 시기에 놓였다. 부산은 2007년 연간 수출 100억 달러를 돌파한 후 아직까지 150억 달러 박스권에 갇혀 있다. 인구가 고령화하고 감소하는 추세라 내수 시장 확대 역시 기대하기 어렵다. 새로운 활로를 뚫어줘야 할 정치권은 커다란 장애물이 돼 있다. 경제 위기가 닥칠 때마다 가장 먼저 나서서 과감하게 투자하고,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적극적으로 도전한 주체는 언제나 ‘기업’이었다. 국제신문은 숱한 위기를 돌파하고 기업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경제계 원로에게 어려움을 이겨내고 활로를 뚫는 지혜를 듣고자 연속 인터뷰를 마련했다.
- 부산경제 국내외 변수들로 심각
- 가덕공항·글로벌허브·산은이전
- 부산 ‘미래형 산업생태계’ 구축
- 장기적으로는 올바르게 항해 중
- 지역기업 강해져야 경제 나아져
- 디지털시대 맞춰 체질 변화 절실
- 글로벌 시장 적극적으로 공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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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재생 부산상공회의소 회장이 “위기에 처한 현 상황을 부정적으로만 볼 게 아니라 ‘변화와 도전의 시기를 맞았다’는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새로운 기회를 찾아야 한다”며 도전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
지역 경제를 대표하는 부산상공회의소 양재생(68·은산해운항공 회장) 회장은 여러모로 녹록지 않은 국내외 여건 속에서도 ‘된다. 된다. 잘 된다. 더 잘 된다’며 이른바 ‘초긍정 에너지’를 내뿜는다.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위기 상황을 직시해야 그 안에 숨어 있는 기회를 볼 수 있음을 강조했다.
-신년 지역경제 전망은 어떤가. 지금 지역경제 상황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변화와 도전의 시기가 도래했다. 지금 지역경제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여건이 예기치 못한 국내외 변수들로 심각하게 어려워지고 있다. 경기 침체와 고금리로 지역의 많은 기업이 자금난을 겪고 있으며, 최근 급등한 원/달러 환율로 원자재를 수입해서 내수시장에 주력하는 지역 기업은 손실이 늘어 비상이 걸렸다.
어떤 기업인들은 ‘올해 최대 화두는 생존이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경영 여건이 좋지 않다. 신규 투자를 통한 이윤 창출이 가장 큰 목표인 기업인이 생존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것은 어려운 상황의 단면을 보여준다.
더군다나 인공지능(AI)과 같은 디지털 기술이 주도하는 혁신의 파도가 몰려오고 있다. 조선기자재 자동차 기계 철강 등 지역의 주력 업종은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팩토리와 같은 신규 생산설비에 투자해 생산효율을 높이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분명 위기지만 이에 대응해 기업 체질을 변화시키고, 기술 혁신을 위한 과감한 도전에 나선다면 현재의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호황기는 짧고 침체기는 긴 게 물류시장이다. 이 때문에 30년 넘게 버텨내는 물류기업이 드물다. 은산해운항공도 그동안 많은 위기를 겪었다. 침체기에 부정적으로 미래를 봤다면 사업을 지속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부산 경제에 다시 호시절이 올까.
▶지역경제가 당면한 상황이 엄중하다. 다만 미국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금리 인하 기조가 올 하반기에는 다소 긍정적으로 작용해 기업의 자금난 해소와 내수경기 진작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부산 경제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확신한다. 가덕도신공항이 개항하면 하늘 물류 길도 열려 첨단복합물류 시스템 구축이 가능해진다.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 제정과 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시작으로 2차 금융공기업 이전까지 본격화하면 부산은 미래형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게 된다. 현재 육성 중인 파워반도체 이차전지 소형모듈원자로(SMR)와 같은 첨단 제조업이 본궤도에 오르고, 북항재개발사업과 연계한 관광·마이스산업 분야가 제 모습을 갖추게 된다면 부산은 첨단 제조 물류 관광 금융이 발달한 글로벌 허브도시로 거듭날 것이다.
-호시절을 맞으려면 지역 경제 주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는 모두 같은 어려움을 겪는다. ‘잘 된다!’는 긍정의 마인드로 현상을 바라보면 반드시 길이 열리고, 방법이 찾아진다. 어차피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라면 머뭇거리지 말고 미래를 위해 빠르게 변화를 모색하고 도전을 이어가야 한다.
알리바바 창업자인 마윈은 “오늘은 힘들고, 내일은 더 힘들겠지만, 모레는 아름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패와 고난의 연속이라도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에는 빛나는 날이 온다는 뜻을 담고 있는데 지금 꼭 어울리는 말이 아닌가 싶다. 기업인도 현 상황에 위축되지 말고, 적극적인 투자를 바탕으로 당당하게 글로벌 시장 공략에 나서달라는 주문을 하고 싶다.
또한 기업은 시민의 응원을 받아야 생존할 수 있다. 어려울 때일수록 베풀 수 있는 게 무엇인지도 고민해야 한다. 가령 각 사옥의 화장실 문을 전면 개방하는 등 이런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건 어떨까.
-지난해 취임 일성으로 ‘더 나은 부산, 더 뛰는 상의, 더 강한 기업’을 내세웠다. 성과가 있었나.
▶기업이 강해져야 부산 경제도 나아진다는 분명한 목표를 갖고 기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신규 사업들을 적극 추진해 왔다. 고금리 고물가 내수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 기업의 경영애로 해결을 가장 우선순위에 뒀다. 박형준 부산시장에게도 관련 내용을 직접 건의해 시청에 있던 원스톱 기업지원센터를 부산상의로 확대 이전해 운영 중이다. 전 직원이 참여하는 기업애로현장방문반 활동을 통해 총 300개 기업을 방문했고 130건의 애로사항을 접수, 이 중 64건을 관계기관에 건의하는 성과를 냈다. 또 자금난으로 고생하는 회원사를 돕고자 지난해 9월 BNK부산은행과 업무협약을 맺고, 총 대출 규모 3000억 원에 최대 1.6%의 우대 금리와 한도 확대를 지원하고 있다.
-복합리조트 유치 사업에도 의지를 보였다. 현재 상황은 어떤가.
▶부산이 글로벌 허브도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관광·마이스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랜드마크가 될 수 있는 대규모 복합리조트 유치가 중요하다. 일본도 내국인 출입이 가능한 ‘오픈 카지노’를 갖춘 대규모 복합리조트를 2030년 오사카에 개장할 계획이다. 다만 국내법은 원칙적으로 내국인의 카지노 출입을 불허해 대규모 복합리조트 유치를 위해서는 특별법을 도입하는 등 규제 완화가 선행돼야 한다. 현재 국회의 통과를 기다리고 있는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 제정과 연계한 추진 전략이 필요하다.
-대기업을 지역에 유치하는 것 못잖게 있는 기업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그간 의지를 보여온 HMM 본사 유치는 어떻게 진행되는가. 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으로 진에어에 흡수될 위기에 처한 에어부산 문제도 큰 관심사다.
▶HMM 본사 이전은 대기업 유치 차원에서 취임 초기 본사 임원 및 노조위원장을 만나 조율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 HMM은 부산항 신항을 거점으로 하는 해운 대기업이며, 현재 지분의 71.7%를 소유하고 있는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의 관리 아래 있는 만큼, 부산으로 본사가 이전하면 국가균형발전과 부산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다만 이 문제는 기본적으로 개별기업의 이슈인 만큼 이해당사자들과의 긴밀한 소통을 통해 시간을 갖고 이해 관계를 풀어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특히 에어부산은 지역 기업인과 부산시가 힘을 모아 설립한 지역 기업이다. 가덕도신공항이 성공적으로 운영되려면 거점항공사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 역할은 당연히 지역에 본사를 두고 있는 에어부산이 맡아야 한다. 최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기업 결합이 성사되면서 자회사인 에어부산과 진에어 그리고 에어서울에 이르는 통합 저비용항공사(LCC) 출범에 대한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해졌다.
양 사의 기업결합 초기만 하더라도 국토부는 통합 LCC 본사가 부산으로 갈 것이라고 밝혔으나, 현재는 기업이 결정할 문제라며 선을 긋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 기업결합이 완료된 만큼 산업은행 국토교통부 대한항공 지역 경제계 부산시 등 이해관계자가 논의 채널을 가동해 통합 LCC 본사 이전 혹은 에어부산 존치 여부에 관해 결정을 내려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