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위 78도. 북극권 최북단에 위치한 노르웨이 스발바드 제도의 롱이어비엔(Longyearbyen)은 한때 탄광 노동자들의 거친 숨결이 흐르던 탄광 도시였다. 이곳은 1906년 미국인 존 먼로 롱이어(John Munro Longyear)가 설립한 광산 회사에서 이름을 따왔다. 혹한 속 석탄 채굴을 위해 세계 곳곳에서 이주한 노동자들이 모여들었고, 롱이어비엔은 북극의 산업 전초기지로 성장했다.
 |
| 북극권 최북단에 위치한 노르웨이 스발바르 제도의 롱이어비엔(Longyearbyen) 번화가 모습. 장호정 기자 |
석탄 산업의 쇠퇴와 함께 롱이어비엔은 기후 변화, 환경 보호, 지속가능성이라는 새로운 가치 속에서 탄광의 검은 연기 대신 하얀 눈과 맑은 하늘 아래에서 과학 연구와 생태 보존 중심지로 변모하고 있다.
롱이어비엔은 현재 전 세계 극지 과학자들이 모이는 국제 북극 연구의 허브다. 노르웨이 극지연구소, 유엔 기후 관련 기구, 각국 대학의 연구팀들이 이곳에서 기후변화, 빙하, 생태계를 연구한다. 도시 전역이 하나의 ‘야외 실험실’로 주민과 과학자가 함께 공존하는 독특한 환경을 갖췄다. 롱이어비엔은 대한민국의 다산 북극기지가 있는 니알슨 지역과 가까워 양국 협력의 실질적 교차점 역할을 하고 있다.
롱이어비엔은 북극이 경제 에너지 항로의 요충지로 주목받으면서 군사적·외교적 상징성도 갖게 됐다. 러시아와의 국경에서 가까워 북극권 국가들의 정책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북극 평화 외교의 척도로도 간주된다.
이 마을은 ‘지구의 시간 캡슐’이기도 하다. 지구의 종말을 대비해 씨앗을 보관하는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가 이곳에 있다. 인간의 활동과 자연, 과학과 미래가 교차하는 이 지점에서 롱이어비엔은 인류의 보루로 존재한다.
롱이어비엔은 최근 북극항로의 관문이자 전략적 거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북극해의 얼음이 빠르게 녹으며,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새로운 해상 길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기존 수에즈 운하 대비 운항 거리를 30~40% 단축할 수 있는 북극항로는 물류혁신의 핵심 축이 되고 있다. 대한민국도 쇄빙선 아라온호를 북극에 보내 장기 해양조사를 수행하고, 노르웨이와의 협력을 통해 북극항로에 필요한 과학 기반과 해상 안전 시스템을 마련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