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세협상이 지난 29일 극적으로 타결됨에 따라 그동안 통상 불확실성에 휩싸였던 우리 경제가 일단 한숨은 돌릴 수 있게 됐다.

0%대까지 낮아진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불확실성 일부 제거 등과 맞물려 1%대로 상향 조정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다만 대미 투자액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등 남아있는 과제도 만만치 않다. 미국에 대한 투자가 어느 분야에 집중될지도 관심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무궁화 대훈장을 수여한 후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제공

●구윤철 “대미 수출 불확실성 완화”

30일 대통령실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전날 한미 양국은 총 3500억 달러(약 502조 원)의 대미 투자 패키지 중 한국 정부가 2000억 달러를 ‘연간 200억 달러’ 한도로 현금 투자하고 나머지 1500억 달러는 한국이 자율권을 갖는 조선 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에 할당(투자)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합의에 따라 미국은 대한국 자동차 관세율을 25%에서 15%로 낮추기로 했다. 상호관세는 지난 7월 말 한미 무역 합의가 큰 틀에서 이뤄진 이후 이미 15%가 적용 중이다.

이들 내용은 우리 정부가 꼽은 최대 성과다. 지난 29일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브리핑한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양국 간 합의 내용과 관련해 “일본이 (우리보다 먼저) 미국과 합의한 5500억 달러 금융 패키지와 유사한 구조지만 우리는 연간 투자 상한을 200억 달러로 설정했다”며 미일 합의와 한미 합의 간에 차이가 있음을 강조했다.

‘투자’라는 이름에 걸맞게 원리금을 일정 부분 보장하는 안전장치를 담았다는 점도 성과로 꼽힌다. 양국은 원리금을 회수할 수 있는 상업적 합리성이 있는 프로젝트에만 투자금을 넣기로 업무협약(MOU)에 명시하고 원리금 상환 전까지 수익을 5대 5로 배분하기로 했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30일 국정감사에서 “이번 협상 타결로 대미 수출의 불확실성이 완화되고 일본·유럽연합(EU) 등 주요국과 동등한 수준의 관세율을 확보한 만큼 우리 기업의 미국 시장 진출과 점유율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평가했다.

전날 기재부는 올해 3분기 국내총생산(GDP)이 1.2% 증가하며 1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분기 성장률을 기록한 것과 관련해 “한·미 관세협상의 불확실성이 있지만 기존 전망(0.9%)보다는 1% 성장률을 달성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밝힌 바 있다.

●美 “반도체 관세, 무역합의 일부 아냐”

다만 정부는 통화스와프(국가 간 통화 교환) 없이 ‘200억 달러’를 매년 마련하는 과제도 동시에 안았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우리가 보유한 외환자산의 운용 수익으로 대부분 충당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총 4220억 달러(약 601조 원) 규모다. 이 가운데 IMF(국제통화기금) 특별인출권(SDR)과 금(47억9000만 달러)을 제외한 국채·회사채 등 유가증권은 3784억2000만 달러다. 유가증권에서 연간 5.3% 수익을 내야 200억 달러를 조달할 수 있다는 의미다.

만약 운용 수익이 부족하면 국내 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는 선에서 정부보증채를 발행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한국에서 매년 30조 원에 가까운 돈이 빠져나가는데 외환시장과 산업에 충격이 없을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김 실장은 “국내 외환시장에 신규로 충격이 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관세 타결 이후 미국 측이 우리 정부의 발표 내용과 다소 차이가 있는 내용을 언급하는 것도 향후 양국 간 조율이 더 필요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한미 관세협상에 ‘키맨’으로 참여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은 이날 SNS에 “한국은 자기 시장을 100% 완전 개방하는 데 동의했다”고 말했다. 무역 성과를 자국민에게 홍보하고자 과장한 표현일 수 있으나, 쌀과 소고기를 포함한 농산물 시장에서 ‘추가 개방을 막았다’는 한국 정부 설명과는 차이가 있다.

아울러 러트닉 장관은 이번 합의로 한국산 제품에 적용될 관세율을 소개하면서 “반도체 관세는 이번 합의의 일부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국 정부는 반도체의 경우 주된 경쟁국인 대만에 비해 불리하지 않은 수준의 관세를 적용받기로 미국과 합의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한편 우리 정부가 미국에 직접(현금) 투자하기로 한 2000억 달러는 앞서 일본의 사례를 볼 때 인공지능(AI) 혁명을 뒷받침할 핵심 인프라인 원전과 소형모듈원자로(SMR)를 포함한 에너지 인프라 구축에 상당 부분 투입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 정치 상황에 따라 추가 관세 카드를 꺼내들 것이라는 우려도 여전히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