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컨테이너선으로는 처음으로 북극항로 시범운항에 나선 팬스타 아크로호가 지난달 31일 베링해협을 통과 북극해에 진입했다. 부산항을 출발한 지 9일 만이다. 수백 년 동안 수많은 탐험가들이 목숨을 걸고 개척하려 했던 북극항로가 이제는 탐험의 영역을 넘어 상업용 선박이 오가는 새로운 물류 항로로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팬스타 아크로호의 이번 항해는 북극항로가 실제 해상운송의 대안이 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첫 번째 본격적인 시험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팬스타 아크로호는 지난달 22일 부산항 신항을 출발한 뒤 한국시간 31일 오전 8시께 북위 66도30분 이북의 북극해역에 들어섰다. 베링해협을 통과해 북극해 관문인 축치해에 진입한 것이다. 당초 선박은 오는 7일께 북극해역을 통과한 뒤 9일 영국 펠릭스토우항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북극해의 기상과 해빙 상황을 고려해 선박 속력을 조절하면서 일정이 늦어지고 있다. 현재는 펠릭스토우항 도착 예정일이 14일께로 늦춰진 상태다. 다만 앞으로의 기상과 해빙 상황에 따라 일정은 다시 바뀔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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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한국해양대학교 하승현 교수가 제공한 북극항로 시범운항에 나선 팬스타아크로호의 항해로이다. (붉은선으로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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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도 늦추고 방향 틀고…북극항로의 현실 보여준 항해
이번 시범운항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팬스타 아크로호가 북극해에 진입한 이후 여러 차례 속력을 크게 낮추거나 사실상 정지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다.
지난 1일 국립한국해양대 하승현 해양공학과 교수는 위성정보 등을 통해 분석한 자료를 보여주며 팬스타 아크로호는 1일 자정께 선박 속도를 0에 가깝게 낮춘 뒤 항로를 크게 변경했다가 다시 운항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속도를 0.1~0.2노트 수준까지 낮춘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하 교수는 선박의 정확한 운항 상황을 직접 확인할 수는 없지만 해빙을 피하기 위해 속도를 줄이고 항로를 변경하는 과정이 반복된 것으로 추정했다. 러시아 연안의 수심이 깊지 않아 속력을 높이기 어려운 구간도 있지만, 이는 시범운항 과정에서 어느 정도 예상됐던 변수라는 설명이다.
특히 앞으로 2~3일간 강한 바람과 많은 유빙이 예상되면서 이 기간이 이번 항해의 최대 고비가 될 전망이다. 현재 선박 항로상의 해빙 자체는 운항에 심각한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닌 것으로 분석되고 있지만, 바람과 함께 이동하는 유빙은 위치와 규모를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려워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결국 이번 항해는 북극항로가 단순히 ‘거리가 짧은 항로’라는 이유만으로 상업성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보여주고 있다. 해빙과 기상에 따라 속도를 늦추거나 우회해야 한다면 항로 단축으로 얻을 수 있는 시간과 비용상의 이점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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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링해협을 통과해 북극해에 진입한 선박이 1일 자정께 선박속도를 0에 가깝게 낮춘 뒤 항로를 크게 변경했다가 다시 목표지점을 향해 항해하는 모습이 붉은 선으로 표기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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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에즈 운하보다 7000㎞ 짧은 길
그럼에도 해운업계가 북극항로에 주목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팬스타 아크로호가 운항하는 북동항로는 러시아 북쪽 해안을 따라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항로다. 이번 시범운항에서 북극해를 통과하는 구간만 약 6400㎞에 이른다. 부산에서 네덜란드 로테르담까지 북동항로를 이용할 경우 운항거리는 약 1만3000㎞로, 기존 수에즈운하 항로보다 약 7000㎞ 짧아진다. 과거 연구에서도 부산항에서 수에즈운하를 거쳐 로테르담으로 가는 약 2만100㎞의 항로가 북극항로를 이용하면 약 1만2700㎞로 줄어들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운항기간 역시 약 24일에서 14일 수준으로 단축될 가능성이 제시됐다. 거리가 짧아진다는 것은 단순히 항해시간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선박의 연료 소모량과 운항비용을 줄일 수 있고, 결과적으로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새로운 물류망을 구축할 가능성이 열린다는 의미다. 특히 부산항 입장에서는 의미가 더욱 크다. 북극항로가 안정적으로 상업화될 경우 부산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북극항로의 주요 출발·환적 거점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있다. 현재 수에즈운하를 중심으로 형성된 글로벌 물류망에서 부산항의 역할을 한 단계 더 확대할 수 있는 기회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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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극항로 시범운항에 나선 팬스타아크로호가 힘차게 항해하고 있다. / 해양수산부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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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의 항로’가 되기까지 500년의 도전
북극항로에 대한 인류의 관심은 최근에 시작된 것이 아니다. 유럽인들은 15세기부터 아시아로 가는 새로운 해상교통로를 찾기 시작했다. 오스만제국의 세력 확대 등으로 기존 육상 교역로 이용이 어려워지면서 인도와 아시아로 가는 새로운 바닷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콜럼버스는 서쪽으로 항해하면 아시아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고, 바스코 다 가마는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했다. 마젤란 역시 남아메리카 남단을 돌아가는 항로를 열었다. 하지만 이들 항로는 모두 엄청난 거리를 감수해야 했다. 유럽에서 아시아로 가는 가장 짧은 길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북쪽의 바다는 마지막 미지의 길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북극해는 쉽게 길을 내주지 않았다. 1879년 스웨덴 탐험가 아돌프 에리크 노르덴쇨드가 시베리아 북부 해안을 따라 항해해 베링해협에 이르면서 북동항로의 역사적인 첫 돌파가 이뤄졌다. 이어 노르웨이 탐험가 로알 아문센은 1903년부터 1906년까지 북아메리카 북쪽을 통과하는 북서항로를 항해해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오늘날 팬스타 아크로호가 따라가는 길은 바로 노르덴쇨드가 개척했던 북동항로의 현대적 형태다.
■ 탐험가들의 항로에서 상업항로로
북극항로의 역사는 수많은 도전과 희생의 역사이기도 하다. 스웨덴의 탐험가 노르덴쇨드 이전에도 수많은 탐험가들이 북극해에 도전했다. 바이킹들은 일찍부터 북극해와 북대서양을 누볐으며, 비투스 베링은 아시아와 북아메리카 사이의 해협을 확인했다. 이후 존 프랭클린은 북서항로 개척을 위해 탐험대를 이끌었지만 129명의 대원이 모두 실종되는 비극을 겪었다. 프리드티오프 난센은 아예 배를 북극해의 얼음 속에 가둔 뒤 얼음과 함께 이동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북극해의 해류를 연구했다. 그가 사용했던 프람호는 이후 아문센의 탐험에도 활용됐다. 이러한 탐험의 역사를 생각하면 이번 팬스타 아크로호의 북극해 진입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과거 탐험가들에게 북극해는 생존 자체를 걸어야 하는 미지의 공간이었다. 반면 오늘날에는 위성항법과 위성통신, 해빙 관측기술 등을 이용해 컨테이너선이 상업 운항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다. 북극해가 ‘탐험의 바다’에서 ‘물류의 바다’로 성격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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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극항로를 개척하고자 했던 탐험가들에게 가장 큰 고난은 얼음바다였다. 얼음바다에 갇히게 되면 다음해 여름 얼음이 녹을때까지 기다려만 했다. 얼음이 얼면서 부피가 팽창하면 배는 파손되어 침몰에 이를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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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후변화가 열어준 새로운 길
아이러니하게도 북극항로의 상업적 가능성을 키운 가장 큰 요인 가운데 하나는 지구온난화다. 지구 평균기온 상승으로 북극해의 해빙 면적과 두께가 장기적으로 감소하면서 과거에는 사실상 통과가 어려웠던 북극항로가 여름철을 중심으로 열리는 기간이 늘고 있다. 현재도 여름철에는 여러 선박이 북극해를 통과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단순히 ‘기후변화가 만들어준 새로운 기회’라고만 볼 수는 없다. 북극해의 해빙 감소는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현상이다. 또한 얼음이 줄었다고 해서 북극항로가 언제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항로가 되는 것도 아니다. 갑작스러운 기상 변화와 유빙, 낮은 수온, 제한적인 구조·구난 인프라 등은 여전히 선박 운항에 큰 위험요소다. 이번 팬스타 아크로호가 속력을 낮추고 항로를 조정한 것도 바로 이런 북극항로의 특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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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극항로 시범운항에 나선 팬스타아크로호 선상에서 본 북극해 모습이다. 곳곳에 유빙이 떠 있어 북극해를 실감하게 해준다. / 해양수산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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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은 길’만으로는 부족하다
팬스타 아크로호의 이번 시범운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거리 단축 자체가 아니다.
북극항로가 실제 상업항로로 자리 잡으려면 안전성과 정시성, 비용 경쟁력을 함께 확보해야 한다. 해양수산부는 이번 왕복 운항을 통해 운항거리와 소요시간, 연료 소모량, 운항비용, 정시성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할 계획이다. 단순히 부산에서 유럽까지 몇 ㎞를 단축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화물을 싣고 운항했을 때 경제성이 있는지를 검증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정시성은 컨테이너선 운항에서 중요한 요소다. 수에즈운하 항로보다 수천㎞ 짧더라도 해빙과 기상 때문에 운항시간을 예측하기 어렵다면 화주 입장에서는 선뜻 새로운 항로를 선택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번 시범운항에서 확보되는 실제 운항 데이터는 향후 북극항로의 상업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전망이다.
■ 안전기술도 새로운 항로의 핵심
팬스타 아크로호는 북극항로 운항을 위해 상당한 준비를 갖췄다. 선장과 항해사 6명은 모두 극지해역 운항 전문교육을 이수했다. 여기에 국내 유일의 쇄빙연구선 아라온호에서 북극해 운항 경험을 가진 항해사가 1등항해사로 승선해 선장을 보좌하고 있다. 한국해운협회와 한국선장포럼은 해빙과 저온 등 극지해역의 특성을 반영한 운항 매뉴얼을 마련해 선사에 전달했다. 고위도 지역에서도 통신이 가능하도록 저궤도 위성통신 장비를 추가로 설치했고, 해양수산부와 선사, 선박관리사는 이를 활용해 24시간 연락·모니터링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이번 시범운항이 단순한 ‘한 번의 도전’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이러한 안전 인프라와 운항 경험을 축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부산, 새로운 북극 물류시대를 준비할 수 있을까
팬스타 아크로호는 펠릭스토우항을 비롯한 유럽 주요 항만에 기항한 뒤 다시 북극항로를 이용해 부산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이번 왕복 운항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면 우리나라 해운·항만업계에는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북극항로를 실제 상업용 컨테이너선이 운항하면서 얻은 데이터가 축적되기 때문이다. 북극항로의 미래가 반드시 장밋빛인 것은 아니다. 해빙과 기상에 따라 운항 일정이 바뀔 수 있고, 북극해의 혹독한 환경과 구조·구난 인프라 부족, 항로 이용과 관련한 국제정세 등 넘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이번 항해는 분명한 변화를 보여준다. 수백 년 전 탐험가들에게 북극해는 목숨을 걸고 통과해야 할 미지의 바다였다. 노르덴쇨드와 아문센 같은 탐험가들이 새로운 길을 찾아냈고, 난센과 수많은 극지 탐험가들이 그 바다의 비밀을 밝혀냈다. 이제 그 길에 컨테이너선이 들어섰다. 팬스타 아크로호의 북극해 진입은 북극항로가 당장 수에즈운하를 대체한다는 선언이 아니다. 오히려 이 길이 실제 상업항로가 될 수 있는지를 검증하는 첫 번째 현실적인 질문에 가깝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앞으로 며칠간의 운항과 이번 왕복항해에서 축적될 데이터가 상당 부분 결정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북극항로가 ‘탐험가들이 꿈꾸던 길’에서 ‘세계 물류가 이용하는 길’로 바뀔 수 있을지, 부산에서 출발한 한 척의 컨테이너선이 그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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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극항로 개척에 나섰던 탐험가들의 모습이다. 배가 유빙에 갇히면 탐험가들은 썰매를 이용 얼음바다를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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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링해협을 발견한 비투스 베링
비투스 베링(Vitus Jonassen Bering, 1681~1741년). 덴마크인으로 러시아에서 활약한 북극 탐험가이다. 첫 번째 캄차카 탐험에 나선 1728년 북위 67도 18분, 서경 167도 지점에서 아시아 대륙과 북아메리카 대륙 사이에 해협이 존재함을 확인하였다. (훗날 그의 이름을 따서 베링 해협이라 이름지어졌다). 1733~1743년에 이루어진 두 번째 캄차카 탐험에서 북아메리카 해안과 알류산 열도 일부를 발견했다. 귀환 길에 캄차카 반도 부근 코만도르 군도 아바차 섬(베링 섬)에 난파했으며 그 섬에서 최후를 맞았다. 베링에 의해 발견된 베링 해협은 북극해와 북태평양을 연결하는 길목으로 아시아 대륙과 북아메리카 대륙이 마주 보고 있다. 해협의 가장 좁은 곳의 너비는 88킬로미터에 불과하다. 베링 탐험대는 베링 해협 외에도 알래스카를 발견했다. 러시아는 베링이 발견한 알래스카에 1741년부터 지사를 보내 통치를 시작했지만 1867년 러시아 황실 재정이 어려워지자 720만 달러에 미국에 팔았다. 미국은 152만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미국에서 가장 넓은 주인 알래스카를 거저나 다름없는 헐값에 사들인 셈이다. 당시 러시아 사람들은 알래스카에서는 짐승 털가죽 외에는 얻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알래스카에서 쏟아져 나오는 석유 등 지하자원을 지켜보며 가슴을 쳐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