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 독립의 영웅 안중근 의사의 유일한 여동생 안성녀(安姓女·세례명 누시아·출생연도 불명~1954년) 여사의 묘지가 세인들의 무관심 속에 부산에서 50년 이상 방치돼 있는 것으로 본지 취재진에 의해 확인됐다.
특히 안 여사 묘지의 국내 존재 여부는 안 여사의 시댁 후손 극소수만 알고 있을 뿐 안중근 의사 가문과 국가보훈처에선 실태 파악조차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학계에서도 안 여사의 독립운동 및 행적에 대한 연구가 전무한 상태다. 따라서 최초로 외부에 공개된 안 여사의 묘지 및 후손들로 인해 안중근 의사 가문과
안성녀 여사에 관한 연구가 활기를 띨 것으로 예상된다.
본지가 광복 60주년을 맞아 최근 독립운동가와 후손들의 생활실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독립지사 오항선(95) 할머니를 통해 독립운동가 안성녀 여사의 묘지를 확인했다.
오 할머니는 안 여사의 며느리이다.
1954년 부산 영도구 신선동 2가2 자택에서 사망한 안 여사는 현재 부산 남구 용호동 천주교 교회묘지에 안장돼 있다. 안 여사의 장손 며느리 이용순(56·부산 남구 대연동)씨의 도움으로 찾은 묘지는 1m가 넘는 수풀로 뒤덮인 채 방치된 상태였다. 독립운동의 거목인 안 의사 여동생의 묘라고 하기엔 너무도 초라했다.
장대 수풀을 걷어 헤치자 '안누시아성여지묘'라고 쓰인 비석이 주인의 안식처를 외로이 지키고 있었다. 출생과 사망연도도 기록돼 있지 않은 비석은 금방이라도 시멘트 부스러기가 떨어져 나갈 듯 훼손된 상태였고, 봉분도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을 받지 못한 듯 곳곳이 파인 채 흙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묘지는 오륙도가 보이는 전망좋은 곳에 있지만, 바로 앞에 있는 남구 재활용품선별장에서 나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또 바로 옆에는 컨테이너 300여개가 적재된 야적장이 들어서 있었다.
안 여사의 묘는 당초 부산 영도구 청학동에 있었다. 그러나 묘지 자리에 부산체고가 들어서는 바람에 1974년 이곳으로 이장됐다.
안 여사 장손인 권혁우(61)씨는 "해방후 김구 선생의 주선으로 서울에 살던 할머니가 한국전쟁으로 피란을 내려왔다. 당시엔 부산시장이 직접 챙겨줄 만큼 신경을 많이 썼다"며 "그러나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50년 이상 세인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고 안타까워했다.
건설 일용직으로 힘겹게 살고 있는 권씨는 또 "독립운동가였던 아버지(권헌·1980년 사망)께서 생전에 '대가를 바라고 독립운동을 한 것이 아니다. 독립운동가 집안이라고 세상 사람들에게 떠들지 마라'고 유언을 남기셨다"고 설명했다.
안 여사의 장손 며느리 이씨는 "살기가 빠듯해 묘지 관리를 제대로 못해왔다"며 "매년 추석에 맞춰 벌초를 하지만 묘지 관리인이 없다 보니 방치되고 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최근 기력이 많이 쇠약해진 안 여사의 며느리 오항선 할머니는 "시어머니는 안 의사 여동생이라는 이유로 일제의 감시와 갖은 탄압을 받으면서도 독립군을 몰래 도왔다"며 "한번은 일본놈들에게 잡혀 9일 동안 감금돼 있다가 구사일생으로 탈출했다"고 회고했다.
안중근 연구의 태두로 불리는 최서면(79) 국제한국연구원장은 "안중근 의사 가족에 관한 연구에서 안성녀 여사는 빠져 있다. 역사적 사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출생 및 사망연도도 불분명하다"며 "만약 안 여사의 무덤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영원히 역사 속에 묻혔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사회1부 광역이슈팀 issu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