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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성녀 여사의 며느리인 오항선 할머니가 보관중인 사진들. 맨 윗 사진은 안중근 의사의 조카인 안봉생(왼쪽)과 안성녀 여사의 아들 권헌이 1970년대 초반 안성녀 여사의 묘에서 찍은 것이다. 가운데는 오항선 할머니(왼쪽), 김좌진 장군의 둘째부인 나혜국 여사와 그 아들. 아래는 안중근 후손의 대부격인 안춘생 전 독립기념관장(왼쪽)과 안성녀 여사의 장손 권혁우씨가 1981년 권헌의 묘비 앞에서 찍은 사진. |
안중근 의사의 여동생 안성녀 여사가 역사의 베일에 가려졌던 이유는 뭘까.
안 여사의 며느리이자 독립지사인 오항선(95·부산 남구 대연동) 할머니는 "시어머니는 일본군의 삼엄한 감시 속에서도 독립군들을 도왔다. 일본군에 끌려가 조사를 받기도 했다"고 증언한다. 안 의사의 동생인 동시에 독립운동가였던 것이다.
▲ 역사가 외면한 안성녀의 삶 = 안 여사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못한 이유는 사료의 부족에서 비롯됐다. 국가보훈처가 독립유공자로 인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일본의 재판기록이나 광복군 명단이다.
하지만 어떤 기록에도 안 여사에 대한 자료는 없다. 심지어 안 의사에 대한 일제의 심문 및 공판기록에도 안 의사 남자 형제들만 언급될 뿐 안 여사는 빠져 있다.
안 여사는 중국 각지를 떠돌아 다니며 일본의 철저한 감시 속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드러내 놓고 독립운동을 할 수 없었다.
특히 안 여사가 국가보훈사업이 시작되기도 전인 1954년 사망하는 바람에 학계나 정부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것으로 추정된다. 국민대 장석흥 교수는 "안 여사의 생년월일조차 확인이 안될 정도로 기록이 전무하다"고 했다.
안중근 의사의 후손들도 안 여사의 해방 전후 행적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고 있었다. 안중근 의사의 동생인 안정근의 며느리 박태정(75)씨는 "시고모님(안성녀)이 1920년대 중국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진술할 정도. 현재 안 의사 가문의 대부 역할을 하고 있는 안춘생(93) 전 독립기념관장도 안 여사에 대한 이야기를 외부에 드러내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안 여사의 아들인 권헌(1980년 사망)과 친했던 안봉생(1908~1980·안춘생의 형) 선생마저 1980년 사망하면서 두 가문의 교류는 거의 단절되다시피 했다.
국가보훈처의 무관심도 한몫을 했다. 안 여사의 손자 며느리인 이용순(56)씨는 "1974년 시할머니(안성녀) 묘를 천주교 묘지로 이장한 뒤 부산지방보훈청에 관리를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10년 전에도 똑 같은 요구를 했지만 묵살당했다"고 말했다.
만약 국가보훈처가 당시 안 여사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었다면 현재는 상당한 연구성과가 나왔을 것이라고 이씨는 덧붙였다.
안중근 의사 가문에 대한 연구도 부족하다. 현재 안 의사 일가의 독립운동 연구는 대부분 안 의사 개인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안중근 가문 중에서는 동생 정근과 공근에 대한 연구 논문이 1편씩 나왔을 뿐 안성녀 여사에 관한 연구는 전무한 실정이다.
▲ 국가적 차원의 연구 필요 = 전문가들은 안성녀 여사의 독립운동을 비롯해 총체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안 여사의 독립운동 기록을 밝혀내는 것은 안중근 가문의 독립운동사와 연결된다는 점에서 역사적 중요성을 갖는다.
안 여사는 1909년 큰 오빠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한 뒤 둘째오빠 정근(1885~1949)의 인솔로 연해주와 만주 등지로 망명길에 올랐다. 안 여사와 결혼한 권승복(1920년 사망)도 독립운동가였다. 안 여사의 며느리 오항선(95) 할머니는 "시어머니는 몰래 독립운동했다. 하지만 일제의 감시가 워낙 심한 탓에 전면에 나서기 힘들었다. 이사도 밥먹듯 했다"고 말했다.
안중근 의사 연구의 1세대로 꼽히는 최서면(79) 국제한국연구원장은 "안 의사 가문에 대한 일본의 탄압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며 "당시 독립운동을 하지 않으면 친일파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만큼 안 여사도 독립운동에 헌신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안성녀 여사의 출생 및 사망연도도 정확히 밝혀져야 한다. 사망연도는 후손들의 기억에 의해 어느정도 드러났다. 1941년생인 안 여사의 큰 손녀 권혜영씨는 1954년 4월8일 안 여사가 사망한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때 한국전쟁이 터지고 중학교 1학년때 서울 동구여중에 진학했어요. 입학식(4월2일 또는 3일)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연락이 왔어요. 나는 참석하지 못했지요."
출생연도는 오리무중이다. 안 의사의 동생인 공근이 1889년생인 점으로 미뤄 안 여사는 1890년대 초반 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안 여사의 며느리인 오항선 여사도 시어머니 생년월일과 띠를 기억 못하고 있다.
안중근 의사의 조카며느리인 박태정(75)씨는 "아무도 모르고 있던 시고모(안성녀)의 묘가 부산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너무 기쁘다"면서 "앞으로 안성녀 여사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회1부 광역이슈팀
신수건기자 giant@kookje.co.kr
이노성기자 nsl@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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