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장애인올림픽이나 전국장애인기능경기대회 입상자들도 삶이 고단하기는 마찬가지다. 최고의 전문 기능인이라는 명성에도 불구, 사회에선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 전국 최고수 19명의 삶은 = 부산지역 전국장애인기능대회 입상자 동우회인 한국장애인기능협회 회원 19명 중 현재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장애인은 3명에 불과하다. 일정한 소득이 없는 기초생활보호대상자도 4명이나 된다.
월 150만 원 이상 수입을 올리는 회원은 단 1명이었다. 대다수 회원들이 창업으로 돌파구를 뚫었지만 얼마 버티지 못하고 폐업하거나 프리랜서로 전환했다. 시대가 변하면서 그들이 보유한 기술에 대한 수요가 감소했기 때문이다.
지난 2000년 양장 부문 2위에 오른 김광식(50·지체장애 3급) 씨는 최근 양복점을 접었다. 기성복이 쏟아지면서 양장·양복을 찾는 손님들이 극히 적어졌기 때문. 김 씨는 요즘 부산 국제시장에서 옷수선집을 운영하고 있다.
부산 부산진구 양정동에서 금은방을 하는 김경렬(46·지체장애 3급) 씨는 요즘 한 달 수입이 50만 원을 넘기 힘들다. 불경기에다 대규모 금은방 상가의 등장으로 동네 금은방은 '죽은 사업'이 돼 버렸다. 김씨는 "평생 배운 기술이 쓸모 없어지니 갑갑하다"며 2001년 전국대회에서 받은 금메달을 만지작거렸다.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부산지사가 최근 2년간 국제·전국대회에 입상한 부산·울산·양산지역 기술 장애인 42명의 현황을 조사한 결과 취업자는 7명에 그쳤다. 프리랜서와 미취업이 각각 9명과 6명이었고, 자영업이 9명이었다. 김 씨는 "현재 추세대로라면 기능을 배우는 후배들에게 차라리 '기술하지 말고,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라고 말했다.
▲ 세계대회 입상도 별 도움 안돼 =1981년 제1회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에서 은상을 획득한 권경국(49) 씨는 요즘 건축제도를 배운다. 전공분야인 라디오·TV 수리기술이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기 때문. 그는 "은메달을 따도 취업이 안돼 조그만 가게를 차렸는데, 요즘은 TV 고치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1995년 세계대회에서 시계부문 금상을 수상한 탁정호(48) 씨. 시계공장에서 6년간 근무하다 13년 전 부산 양지직업재활원 교사가 됐다. 그는 "장애인은 기술이 있어도 임금이나 승진에서 차별을 받는다"면서 "후배들에게 시계수리 기술을 가르쳐봤자 취업이 안되니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