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 히틀러는 독일 수상에 취임한 이듬해인 1934년 '20세기 최고의 엔지니어'로 꼽히는 페르디난트 포르셰 박사를 만나 폴크스바겐(국민차) 개발을 지시했다. 그가 원하는 차는 판매가 1000마르크(당시 미화 250달러) 이하에 성인 2명과 아이 3명을 함께 태울 수 있고, 최고 시속 100㎞, 연비 15㎞/ℓ이상을 만족시키는 4도어 세단이었다.
히틀러는 1936년 2월 15일 '폴크스바겐' 제조계획을 발표하면서 "전국민에게 차 한 대씩을 나눠주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그리고 직접 스케치 몇 점을 그려 포르셰에게 건넸다. 현재의 '비틀'과 비슷하게 둥근 지붕과 보닛을 가지고 있는 디자인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1938년 '카테프'라는 이름으로 견고한 자동차 폴크스바겐이 세상에 나왔다. 비틀이라는 이름은 딱정벌레를 닮았다고 해서 훗날 미국인들이 부르면서 붙게 됐다.
그러나 이듬해 2차세계대전이 터지자 폴크스바겐 공장은 로켓 전투기 폭탄 등 군수품을 생산하는 일에 참여하게 된다. 2만 명의 노동자는 강제노역에 동원돼 구타와 고된 노동으로 숨져갔다. 폴크스바겐은 내수용에서 군수용으로 전환됐다. 폴크스바겐은 나치 협력이라는 과거의 멍에를 안고 달리고 있는 셈이다.